개 같은 내 인생 31화

-제대-

by 미스틱

2달 반 만에 돌아온 부대에서 재수는 말년 병장이라는 이유로, 아직 환자라는 이유로 모든 훈련과 내무 활동에서 열외 된 채 남은 세 달 군 생활을 채웠다. 재수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제대하고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는 일뿐이었다. 학력도 짧지,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수는 막막했다.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제대 날.

쫄따구들이 연병장에 모여 재수의 전역식을 열어줬다. 부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예비군 마크가 달린 군모를 쓰고 막사를 나서는 전역자에게 그저 대원들과 간부들이 박수나 쳐주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재수 앞에 전역 축하를 위해 부대원 전원이 도열했다. 그들은 고참으로써 개인적으로 얼차려나 구타 한번 안 하고 자신들을 따뜻하게 챙겨준 재수에게 전역식이라는 소박한 행사로 감사를 표했다. 또 부사수를 위해 난투극까지 벌여 온전히 의병제대 시키고 정작 본인은 병원신세를 진 고참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했다. 부대원들끼리 모의한 전역식인데 부대장까지 참석해 전역증을 직접 전달했다. 그리고 쫄따구 중 한 명, 간부식당에서 같이 라면 끓이다 들킨, 그때 이등병 녀석이 재수에게 은으로 된 군번줄을 목에 걸어줬다. 녀석은 부대원 모두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주문제작한 거라고 우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재수는 오랜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같이 전역을 하는 덕환은 부러운 듯 질투 난 듯 씁쓸한 표정으로 박수를 쳐줬다. 라면 끓이다 들킨 그때 이등병 녀석 가슴의 상병 계급장은 재수에게 지난 시간을 상기하게 만들었다. 입대할 때, 당장 오늘내일만 걱정하느라 감히 전역이라는 걸 생각도 못했는데, 녀석과 보초를 설 때도 남은 군 생활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어느새 전역식을 치르고 있으니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은 틀림없었다. 이등병 때 느낀 군대 시간은 한 시간이 하루만큼 느껴질 정도로 느렸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사실 엄청 빠르게 흐른 것 같았다. 희한했다. 매일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느낄 새 없이 빠르게 지나는 시간을 다만, 본인 의지가 아니라 강제로 해야 하는 군 생활이라, 툭하면 얼차려 당하고 얻어맞고, 매분 매초 긴장의 연속이라 느리고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낀 걸까?

쫄따구들은 마지막으로 재수를 헹가래 치려고 했다.

“야, 안 돼. 하지 마.”


재수가 겁에 질려 주춤주춤 뒷걸음치자 녀석들은 으레 그렇듯 사양하는 줄 알고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야!!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니까? 어쭈. 야!!”

재수는 진짜 겁에 질려 절규하듯 외쳤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재수의 하얗게 질린 얼굴은 아랑곳 않고 이제 재수를 에워쌌다. 그들이 재수를 붙잡는 순간,


“야, 이 새끼들아~~~ 동작 그만!!!!!”


재수는 진정 꼭지 돈 얼굴로 악을 썼다. 재수의 표정과 비명 같은 외마디 명령에 일동은 멈칫했다.

“얘들아. 나, 아직 환자라고. 아직도 갈비뼈 아프다고...”


그래도 자신을 위해 모인 쫄따구들이었다. 재수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 애원하듯 말했다. 그리고 통증을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갈비뼈를 문질렀다. 그제야 녀석들은 미안한 표정과 함께 입맛을 다시며 다시 대열을 갖췄다. 그리고 단체 경례로 전역식을 마무리했다. 위병소까지 따라온 쫄따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재수와 덕환은 그렇게 부대를 나왔다. 아니, 군대를 떠났다. 자대 배치 날 지프차를 타고 달려온 그 길을 걷다 뒤돌아 본 부대 막사는 처음 본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재수는 이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싸리라 다짐하며 침을 퉤 뱉고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재수는 대체 군대가 자신에게 남긴 건 무엇인가 문득 궁금해져 3년 동안 겪은 군 생활을 상기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군대가 자신에게 남긴 게 없었다. 사회에 진출해 땅 구덩이를 항아리 모양으로 팔 일도 없고, 무인도에 추락하지 않는 한 페트병을 목에 걸고 수영할 일도 없었다. 또한 손가락으로 상대를 할퀴고 불붙은 원형 굴레를 넘을 일은 더더욱 없으며, 낙하산을 탈 일도 만무했다. 혹여 그간 해 온 산악 행군이 등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재수는 자기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이제 산이라면 지긋지긋해서 산은 바라보기 위해 존재하는 걸로 이미 오래전에 규정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군대에서 배운 건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추억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위로라도 됐겠지만, 지난 3년의 세월은 추억이 아니라 악몽이었다. 결론적으로 재수는 군대 와서 첫사랑과의 생이별, 지독한 속앓이, 그리고 육체적 병까지 얻어 나가는 꼴 말고는 남은 게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창문을 열고 목구멍에 있는 가래까지 가능한 죄다 모아 부대를 향해 퉤 내뱉었다.

재수는 집 대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쳤다. 어머니께 늠름한 육군 예비역 병장의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리고 재수를 보자마자 아이구야, 아이구야 하며 눈물지을 어머니를 상상했다. 그때 누군가 재수의 팔을 붙잡았다.

“가만, 이게 누구냐? 재수 아니냐?”

위층 주인집 할머니였다. 재수는 모자를 벗고 꾸벅 인사를 했다.

“휴가 나왔구나. 근데 왜 여기 있냐? 집으로 안 가고?”

“네?”

“너 혹시 여기가 집이라고 온 거냐?”


재수는 어리둥절했다. 혹시 병원의 독한 약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져 기억을 잃어버렸나 싶어 이층 건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지만 비록 분명 자기가 살던 집이었다.

“니네 집 이사 한 거 모르고 나왔냐?”


주인 할머니는 이제 안쓰러운 표정으로 재수를 바라봤다.

“쯧쯧. 어떻게 아들한테 말도 안 하고 이사를 갔을까?”

“이사요? 언제요? 어디로 갔는데요?”

“글쎄다. 한 서너 달쯤 됐는데 저기 수서역 어디라 그러던데. 무슨 아파트로 간다고 한 거 같다만, 무슨 아파튼지는 모르겠다.”


재수는 허탈함과 배신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들은 군대에 있는데 말도 없이 이사를 가다니. 마치 골칫거리 아들을 피해 몰래 이사를 간 것 같은 상황이어서 기분이 묘했다. 그러다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도, 제대 날도 알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알리지 않았으니 군대 계급도 모르는 부모님이 재수의 제대 날을 짐작으로도 아실 리 없었다. 병원 얘기는 빼고 안부만 묻는 편지를 보내며 제대 날을 알릴 수도 있었는데. 재수는 무심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시장으로 갔다. 그러나 어머니가 장사하시던 곳엔 다른 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생선을 팔고 있었다. 그에게 물으니 먼저 장사하던 분에게 자릿세를 받은 게 서너 달 전이라고 했다. 이사 시기와 딱 맞아떨어지니 아마도 이사와 함께 좌판 장사도 그만두신 게 분명했다. 재수는 하는 수 없이 수서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서역 부근엔 몇 년 사이 아파트가 엄청나게 들어서 있었다. 단지 수만 해도 여섯 개나 됐다. 재수는 입을 쩍 벌리고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 많은 아파트들 중에 부모님 집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젠장.. 막막했다. 이러다 집 잃은 똥개 신세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들었다. 그러다 번뜩 떠오르는 게 있어 재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라면 단지마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걸 중학교 때, 분임토의를 위해 압구정동 아파트에 살던 조장 집에 갔다가 알게 됐었다. 재수는 단지별 관리사무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신분을 밝힌 뒤 몇 월쯤, 연세가 얼마쯤 되는 분 둘이 이사 온 기록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재수 가슴의 전역마크를 본 사무소 직원들은 의심 없이 친절하게 세세히 기록을 살폈다. 개중엔 그간 고생 많았다고 커피를 타주는 이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집 잃은 군바리라 여겨 안쓰러웠는지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박카스를 주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네 개 단지를 돌고 다섯 번째 관리 사무소에서야 겨우 확률 높은 집을 찾았다. 시기도 맞았고 연세도 맞았다.

저녁이 다 됐을 무렵, 재수는 아파트 앞 경비실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파트 경비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멀쩡한 놈이 군복 입고 아파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으니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제대해서도 풀리는 게 없구나.’


재수는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저녁을 훌쩍 넘겨 밤이 되도록 부모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평소 장사를 마치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재수는 불안해졌다. 엉뚱한 곳에 앉아 괜한 시간만 죽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고, 만약 그렇다면 날라리 학창 시절 때처럼 밤이슬 맞으며 난장을 까야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전역 마크를 달고 난장을 까다니. 차라리 친구네 집으로 갈까 어쩔까 갈등을 때리며 새 담배를 꺼내 무는 순간, 재수 눈에 저 멀리 축 늘어진 어깨로 걸어오는 어머니 모습이 잡혔다. 불안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역시 형사가 됐다면 범인 찾는 건 전국 최고가 됐을 거라고, 자신의 추리력과 탐문능력에 감탄했다.

“엄마!!”


기운 빠진 얼굴이던 어머니는 재수를 보자 금세 환한 얼굴이 되어 눈물을 글썽이며 재수를 끌어안았다.

“아이구야. 아이구야. 우리 재수 휴가 나왔구나.”

“아니야, 엄마. 휴가가 아니고 제대야. 제대 뭔지 알지? 군 생활 끝났다구.”

“그럼, 이제 다시 군대 안 가냐? 아이구야. 이제 우리 재수 고생 끝났구나. 이제 엄마도 마음 놓고 살겠다, 야. 아이구야.”


재수 어머니는 다시 한번 재수를 끌어안고 등을 문지르며 아예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사한 집은 코딱지만 했다. 그나마 방이 두 개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먼저 살던 집에도 방은 두 개였으나 방 하나가 누나 차지여서 재수는 늘 부모님과 같은 방을 써야 했으며 어머니 곁에 누우면 꼭 다 큰 사내놈이 엄마랑 붙어 자는 것 같아서 늘 불편했다. 해서 친구네 집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제 누나가 출가했으니 재수는 태어나 처음으로 제 방을 얻는 것이어서 어머니가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쓸고 닦고 옮기며 방 정리를 하느라 바빴다.


“근데, 여긴 어떻게 찾아왔다냐?”


저녁 밥상에서 재수 아버지가 물었다.


“그게.. 군대에서 독도법이라고, 지도보고 뭐 찾는 기술을 배웠어요.”


재수는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안부 편지 하나 보내질 않아 놓고도 왠지 집 찾느라 고생한 아까의 시간이 억울했다.


“독도 뭐? 지도 보고 생판 모르는 집을 찾는다고? 하이고. 그 참 신기한 기술이구만. 군대가 쓸 만하긴 한가 보다.”


군대가 쓸 만하단다. 한숨이 나는 걸 참으며 재수는 아버지의 잔에 두 손 모아 공손히 술을 채워 드렸다. 살면서 아버지 술잔에 술을 따르는 건 처음이었다. 재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술 마시는 게 싫었다. 술에 취해 술주정을 하고, 심할 땐 어머니와 싸우면서 폭력도 썼기 때문이었다. 그럴 땐 재수 마음에 증오가 활활 타올랐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쉬지 않고 일을 하는데 아버지란 사람이 툭하면 하루 목수 일당도 포기하고 종일 술을 마셔대니 답답하고 한심해서 아버지를 업신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 후 밥상머리에서 부모님과 마주 앉게 되자 문득 제 신분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는 건, 가부장 권력을 통해 가정이라는 개인 국가를 세운 가장의 권위를 세습할 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해서 재수는 이제 아버지와 동등한 자격이 주어지는 거라 오버한 탓에 이제 어른으로써, 가장으로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재수는 몸가짐을 다시 하고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이사한 김에 가까운 상가에 가게를 얻어 감자탕 집을 하고 계시며, 주위가 아직 개발 중이라 공사 인부들이 많아 그들에게 아침밥을 팔기 위해 아침 일곱 시면 문을 열고, 술손님 때문에 밤 열 시에나 문을 닫는다는 것을 재수는 밥상을 앞에 두고 들었다. 재수는 어머니가 꼬박 열다섯 시간을 일한다는 사실에 그새 폭삭 늙어 보이는 이유를 알게 됐다. 밥이 안 넘어갔다.

“어머니. 사람 하나 두시죠?”

“아이구. 그럴 돈이 어딨니. 한 푼이라도 아껴서..”

“사람 두라고!!!”


재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차. 이러면 안 되는데. 점잖고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하는데.’


평생 일밖에 모르고 살림살이 하나라도 늘리겠다고 억척스럽게 산 어머니였다. 그래서 초라한 전세지만 아파트도 얻고 시장 좌판을 벗어나 작은 가게도 연 것임을 재수는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덕분에 폭삭 늙어 할머니가 다 된 어머니를 보자 그 억척스러움이 미련해 보이기까지 해서 치미는 울화를 참지 못했다.

재수의 고함에 깜짝 놀라 재수 아버지는 먹던 술을 쏟았다.


“어머니. 그 사람 인건비 제가 벌어오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두시는 걸로 하시지요. 알았지요?”

재수는 짐짓 정중하고 공손하며 어른스럽고 다정하게 말했지만,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실제 어른스럽고 가장다운 역할만 하면 되지..’


재수는 제 말투와 행동이 간지러워 그냥 원래대로 굴기로 했다.


“엄마. 나도 이제 돈 벌 거야. 그러니까 사람 둬. 안 그럼 기껏 제대한 육군 예비역 병장인 내가 가서 종일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테이블 닦고, 바닥 쓸고.. 아니, 아예 감자탕도 끓여 버릴라니까.”

재수의 고집과 성질을 아는 재수 어머니는 그러 마하고 나지막이 웅얼거렸다.

“그리고 아버지도 술 좀 그만 드시고 하루라도 더 나가서 일하세요. 우리도 좀 사는 것처럼 살아봅시다.”

재수가 공손히 술잔을 채워주며 단호하게 힘주어 말하자 재수 아버지도 끙 소리 한 번 내더니 알았다고 웅얼거렸다. 재수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허구한 날 비디오나 틀어놓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군대를 다녀온 재수에게서 뭔가 꺾을 수 없는 기운이 풍기는 걸 감지했다.


말은 그럴싸하게, 마치 당장 어디서 돈을 들고 올 것처럼 호언했지만 재수는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 고민에 빠졌다. 미래를 위해선 어디 번듯한 직장이라도 잡아야 하지만 별 볼 것 없는 학력에 특별한 기술도 없었기에 재수는 당장은 어머니를 위해 일당 노가다를 뛰기로 마음먹고 야간 기술학원을 찾아 적당한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재수는 몰래 숨겨놓은 약을 게 눈 감추듯 삼키고 인력 사무소를 찾았다. 그리고 공사 현장에선 정신이 혼미해 휘청거리며 겨우겨우 오전 일을 마쳤다. 오후에도 벽돌 몇 장 나르고 숨이 가빠 헉헉 대고 또 몇 장 나르고 쉬고 하며 겨우 버텨냈다. 때문에 그날 저녁 현장 감독으로부터 이제 막 제대한 군바리가 왜 그리 허약하냐는 핀잔을 들었고, 인력 사무소로부터 다음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재수가 생각하기에도 현 상태의 몸으로 막노동은 확실히 무리였다.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재수는 제 어머니 가게로 갔다. 사람을 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가게는 예상대로 작았다. 그러나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은 다 차 있었다. 재수는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기가 호언한 것처럼 얼른 돈을 벌어야 했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였다. 유리문 너머로 주방에서 분주한 어머니와 홀 서빙을 하는 직원 아줌마를 엿보고 돌아서는 재수의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때, 바로 옆 가게에 ‘보조 구함’이라고 매직으로 휘갈기듯 써놓은 전단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간판을 보니 알루미늄 새시 집이었다.


‘가만. 알루미늄 새시면...’


재수는 공사현장을 떠올려 봤다. 용역 잡부나 벽돌공 등이 허리 부러지도록 일을 할 때 기능공들은 룰루랄라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일을 했다. 기술이 있으니 그 기술만 제대로 발휘라면 돼서 허리 부러지도록 몸을 쓸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중 알루미늄 새시공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조립한 새시 창틀이나 문틀을 가져와 툭툭 박아 넣고 휙 사라졌다. 게다가 철근도 아닌 알루미늄 새시는 무척 가벼운 것이다.

재수는 망설일 것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 밖에 전단 보고 왔는데요.”


작업장을 지나 반쯤 열린 방문 사이로 사장으로 보이는 땅딸만 한 사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가 문을 활짝 열고 나올 때 보니 아내와 어린 딸이 밥상에 앉아 있었다. 가게 겸 집이었다.

“경험은 있고?”


사장은 주섬주섬 슬리퍼를 신고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며 재수에게 물었다. 재수는 그 꼴을 보고 역시 노가다는 노가다구나 생각했다.


“없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


3년의 군 생활이 이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드나? 뭔가 씩씩하고 성실하게 보이기 위해 한다는 말이 ‘안 되면 되게 하라’ 라니. 사장은 이쑤시개를 문채 이상한 눈초리로 재수를 바라봤다.

“저.. 사실은 옆 감자탕 집 아들입니다. 어제 제대를 해가지고...”

재수는 더 이상 군바리 티를 안 내려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부러 머리까지 긁적였다. 군대에선 절대 허용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 자네가 그 친구구만. 자네 어머니한테 아들이 군대 있다고 얘기는 들었지.”

사장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알루미늄 새시 기술이 얼마나 정밀도를 요구하는지, 현장에서 얼마나 높은 대우를 받는지, 그래서 기능공들 사이에서 위상이 어떤지, 기술만 잘 배워 놓으면 먹고사는데 지장 없다는 둥 제 자랑과 함께 기술 자랑을 십여 분간 늘어놨다.


“알겠습니다. 열심히 배워보겠습니다.”


기술을 배우려고는 했지만 평생 노가다로 살긴 싫었다. 알루미늄 새시도 기술직이긴 했지만 험한 막노동판인 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목수인 아버지처럼 살기가 싫었다. 그래서 뭔가 좀 더 윤기 나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해서 재수는 면접 같지 않은 면접을 본 그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재수는 제대 이틀 만에 알루미늄 새시 보조공이 됐다.

예상대로 일은 기술을 필요로 하지 잡부와 같이 고강도 체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종일 새시를 자르고 나사를 박아 붙이고 현장에 나르고 시공하느라 고되긴 했지만, 그래도 재수의 몸 상태로 일하기에는 적합했다. 문제는 아침에 먹는 약이었다. 오전 내내 어질어질한 제 상태를 숨기느라 재수는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 결국 사장이 전날 밤 술 먹었느냐고 물었던 날, 재수는 약을 변기에 다 쏟아 버렸다. 늑막에 물이 남았든 말든 당장 제정신으로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했다.


알루미늄 새시 일을 하면서 재수는 늘 어머니와 함께 퇴근을 했다. 노가다 판은 다섯 시면 모든 일이 끝났다. 아무리 일이 밀렸어도 하루 일의 시작과 끝 시간은 칼같이 지켰다. 사장 역시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어도 새벽 다섯 시면 칼같이 현장으로 향하고 오후 다섯 시면 ‘시마이!!’를 외치며 다시 술집으로 향했다. 때문에 재수는 일이 끝나면 바로 옆 어머니 가게로 가 설거지를 돕고 가게를 정리한 후 어머니와 함께 퇴근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와 팔짱을 끼고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입대한 지 3년, 제대한 지 1달 만에 재수의 마음은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약을 안 먹어서 늑막에 물이 다시 차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던 재수는 어느 날 혹시 하고 간 내과에서 물이 차기는커녕 오히려 물이 다 말라 없어졌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일말의 불안감을 날려버리게 됐다. 희한한 일이었다. 군의관이 처방한 약이 혹시 가짜 약이거나 혹시 더 몸을 망가뜨리는 약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군대라면 모든 게 쓸모없거나 삐뚤어진 거라 생각하던 재수는 약조차 의심한 것이다. 그러나 곧 몸 쓰는 일을 하니 식욕이 돋아 밥도 더 잘 먹고 마음이 평온하니 걱정거리가 없어서일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군대 생각을 하면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착잡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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