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맨 4화

by 미스틱

#14

임 형사가 앉았던 자리에 앉은 석구는 박 사장과 마주하고 있고 한쪽에선 철규가 골프채를 휘두르며 연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월 주차비를 더 내라 이거야?”

“저... 그게 아니구요. 친구 분들 차만이라도 줄여주시면.. 종일 나가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니까..”

“지금 골목 짬밥 좀 된다고 나한테 들이대는 거야? 나도 이 골목 돌아가는 상황 다 알아. 자네, 그 건물주차장 이용해서 다른 업소 차 받는 거 홍 회장이 아나?”

박 사장 친구, 철규 친구랍시고 ‘고추’의 공짜 주차 대수만 5대다. 거기에 홍 회장, 화정, 지하 바 차까지 합하면 15대 가까운 차가 고정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석구는 홍 회장 건물의 차들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주차장을 쓰고 있고, 암암리에 그 주차장을 이용해 다른 업소 차들을 받으며 발렛비를 받아 수입원으로 쓴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암암리에 하는 일이다. 원칙은 건물 차만 받아 관리하고 소정의 월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 가지고는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들다. 게다가 다른 업소 차를 받느라 화정의 차가 견인까지 된 마당에 다른 업소 차를 받는 것이 주 수입원이라는 상황이 홍 회장의 귀에 들어가면 당장 밥줄이 끊길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석구의 눈빛이 흔들린다.


“나 다른 발레애들 알아볼 수 있어. 요기 뒤 건물 발레애들 써도 돼. 근데, 자네가 관리하는 주차장이 그나마 골목에선 제일 넓고 괜찮아서 그냥 쓰는 거야. 근데, 자네 밥줄이 거기잖아. 그럼, 조심해야지. 홍 회장하고 나하곤 이제 무시 못 할 사이니까 알아서 하란 말이야. 막말로 내가 그 주차장을 인수해 버릴 수도 있어.”

그때가지 골프채를 휘두르던 철규가 갑자기 싫증을 내며 골프채를 툭 던지고 나간다.


“자네 열심히 해주는 거 고맙지만 이젠 내가 자네 입장 봐주고 있다는 걸 알아야지. 무슨 말인지 알아?”


사실, 발레 주차도 가장 빠르고 가장 가까울뿐더러 가장 넓은 석구가 관리하는 주차장이 ‘고추’ 입장에서도 아쉬울 거라 예상하고 협상을 통해 효율적으로 발레 주차를 하려던 석구의 계획은 박 사장이 홍 회장과 친분을 내세우는 바람에 한방에 무산됐다.


석구가 박 사장과 밥줄을 놓고 씨름하는 동안 재용과 우석은 한가하게 술만 푸고 있다.

“니, 이 골목에서 홍 회장한테 손 안 벌린 놈은 우리 같은 빼박이 밖에 없다는 말, 뻥이 아니데이. 웬만한 가게에 연예인들이 와 들락거리는지 모르나? 그기 다 홍 회장이 대주는 거 아이가. 일단 연예인이 들락거려야 장사가..”

“씨발... 빼박이 소리 좀 하지 마 새끼야. 빼박이가 뭐야, 빼박이가... 빡빡이도 아니고..”

“빼박이 맞지 뭐, 임마.”

“그 벤츠 새끼. 한 번만 더 나타나 봐라. 아주 아작을 내버린다.”

재용이 이를 갈며 술잔을 채우는 동안 피에로가 소리 없이 와서 옆에 앉는다. 분장을 지운 피에로는 흔한 미인들과 달리 고전적이고 청순한, 맑은 눈을 가진 보기 드문 미인이다. 그런 피에로가 앞에 앉자 우석이 맨 얼굴의 피에로를 멍하니 본다.


“흐미~ 누나 맨 얼굴을 얼마 만에 보는 교?”

“왜 그래? 화장을 다 지우고?”


분장을 지운 피에로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기는 재용도 마찬가지라서 놀라 묻는다.

“그냥.. 답답해서.”

“누나. 분장하지 말고 다니라 캐도 와 꼬박꼬박 가리고 다니는데요? 혹시 압니꺼. 누가 연예인 시켜줄지..”

우석의 말은 진심이다. 말투만 아니면 피에로는 연예인 뺨치는 얼굴이다. 그러나 피에로는 피식 웃을 뿐이다.

“미친놈. 연예인은 무슨... 술이나 먹어 새꺄.”


그때 계단에서 내려오며 홀을 둘러보던 철규, 피에로를 발견하고 멈춰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다 그들에게 다가선다.


“오우~ 오늘 회식이야?”


박 사장 동생이 오자 재용과 우석이 어색하게 목례하며 자리를 열어준다.

“다들 알겠는데, 이쪽은 처음 보는 얼굴이네?”

“피에로 누난데 예?”

“진짜?”


철규가 믿기지 않는 듯 뚫어져라 쳐다보자 피에로가 얼른 시선을 피해 제 잔에 술을 따른다.

“아니, 가면 뒤에 이런 얼굴이 있었단 말이야?”

철규가 또 한 번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나타나내며 피에로의 얼굴을 훑는다. 재용이 그런 철규의 모습을 못마땅한 얼굴로 노려본다.


“근데 안주가 이게 뭐야. 힘들게 일하는데.. 야! 여기!”

구석에 앉아 있는 알바, 열심히 졸고 있다.


“저.. 괜찮은데요. 저희 다 먹었어요.”

“야, 임마!


재용이 만류하지만 철규는 들은 체 않고 알바를 부른다. 그래도 졸고 있는 알바.


“됐어요. 이제 일어날 거예요.”

재용은 자리에서 일어서고 싶지만, 어쨌거나 주 수입원인 ‘고추’ 박 사장 동생이다. 그러니 함부로 굴 수도 없다. 그리고 철규의 인상은 이미 험악해졌다.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철규가 졸고 있는 알바에게 병따개를 냅다 던진다. 병따개를 맞은 알바, 두리번거린다.

“야 임마!.. 일루 와봐.”


알바가 화들짝 놀라 달려온다.


“너 뭐 하는 놈이야.”

“예? 아, 예. 너무 졸려가지고.. 잠깐..”

“이것들이 긴장들이 다 풀려가지구. 내가 조금만 신경을 안 써도 가게가 이 모양이라니까.. 가서 안주 좀 괜찮은 걸루 갖구 와 임마.”

재용과 일행은 난감하다. 이때 철규의 친구가 벌건 얼굴로 다가온다.

“야. 여기서 뭐 해?”

“왜?”

“빨리 와 임마. 애들 기다리잖아.”

친구가 가리킨 한쪽에 남녀 일행들이 어서 오라는 시늉을 하며 앉아있다.

“오늘은 그냥 니들끼리 먹어라.”

“왜 임마. 빨리 와.”

친구가 철규의 팔을 잡아끌자 버럭 화를 낸다.

“아이 씨발. 오늘은 그냥 니들끼리 먹으라고.

“이 새끼가 왜 이래?”

철규 친구가 헛웃음을 지으며 돌아가자 피에로가 먼저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왜 일어나? 안주 좋은 거 올 테니까 더 먹어.”


철규가 따르는 술을 엉겁결에 받는 재용과 우석. 피에로가 체념하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내가 신경 좀 썼어야 하는데 말이야. 다들 힘들게 일하는데..”

그때까지 눈치 없이 서있던 알바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묻는다.

“무슨 안주로..”

“아이~ 씨발.. 알아서 갖구 와.”

알바생이 쭈뼛대며 가고 재용이 술을 마시려 하자 철규가 말린다.

“자, 자. 건배하자구. 뭐, 힘든 거 있으면 나한테 다 얘기하고..”

어색하게 잔을 부딪치는 세 사람. 이때 계단을 내려오는 석구, 재용과 눈이 마주치지만 무시하고 지나친다. 피에로는 그런 석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본 철규.


“어이. 석구! 이리 와 봐.”


철규가 부러 거만하게 손짓하며 석구를 부른다.

“너, 오늘 대리 좀 해줘야겠어.”

“예? 지금요?”

“아니, 있다가. 왜, 안돼?”

“그게 아니라... 취해도 늘 직접 운전하시더니..”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가까워, 우리 집.”

“..그러죠 뭐. 이따 가실 때 무전 주세요.”

석구가 일행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가면 피에로의 고개가 떨군다.

매거진의 이전글발레맨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