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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ty 묘등 Apr 05. 2021

[벚꽃 엔딩]의 봄에 대한 위로

자발적으로 빼앗긴 2012년 나의 봄

[벚꽃 엔딩],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에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노래입니다. [벚꽃 연금]이라 불릴 정도로 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인데, 에게는 더욱 특별하게 기억되는 노래라 올해 벚꽃길에서 어김없이 그 시절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벚꽃 엔딩]은 딸의 탄생 3일 후인 2012년 3월 29일에 발표되어 출산과 육아로 빼앗긴 2012년의 봄을 기억하게 하는 곡입니다.  



내 안의 짐승의 존재를 확인한 출산기



2012년 3월 26일 딸이 우렁차게 울음을 뱉어내며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26일 새벽 2시 남짓 양수가 터졌고 병원에 머무르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해 느릿느릿 병원으로 향해 4시가 넘어 병원에 도착합니다. (그 사이 진통이 길어질 수 있을 거라는 앞 선 착각에 남편이 배고플까 봐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먹이는 여유를 부렸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출산의 고통을 혼자만 감당하는 억울함을 덜기 위해 가족분만실 사용과 통증을 유독 무서워하는 나였기에 병원 측에 무통 주사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하지만 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가족분만실은 이미 만석이라 기다렸다 자리가 나면 줄 수 있다 했는데, 이미 가족분만실을 차지하고 있던 산모들보다 나의 출산이 빨랐기에 나의 요구는 무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통주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게 자궁문이 열렸고 그때까지는 진통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동의서에 서명하기 위해 남편은 잠시 진통실 밖으로 이동하고 대신 친정어머니가 곁에 계시기로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나간 후 얼마 안 되어 진통이 갑작스레 시작됩니다. 간호사 선생님께 간절하게 묻습니다.


"무통주사는 언제 놔주세요?"

"자궁문이 너무 빨리 많이 열려서 무통주사를 맞을 수 없습니다."


허걱, 진통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전에 통증의 강도가 심해지기 시작합니다. 처음 느끼는 극한의 고통으로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짐승 소리 같은 울부짖음이 진통실 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 와중에 '왜 나만 울부짖고 있지? 다른 산모는 나만큼 안 아픈가? 아니면 나보다 통증에 대한 참을성이 좋은 건가?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나는 부끄러워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완전 짐승으로 변한 거는 아닌 듯합니다. 나의 울부짖음에 친정어머니가 애처로워하시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순간순간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남편이란 사람은 동의서 쓰러 나가서 감감무소식입니다.


그러기를 얼마 안돼 갑자기 분만실로 옮겨집니다. 자연 분만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통이 올 때 자연스레 힘이 주어집니다. 너무 아파 힘을 주지 않으면 더 아플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으로 자연스레 아래에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분만실에 도착하자마자 힘을 한 번 주니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힘주시면 아기가 다쳐요. 힘주지 마세요."  


'젠장,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요?'라고 속으로 주치의 선생님을 원망해보지만, 그래도 금쪽같은 내 새끼를 다치게 할 수는 없기에 주치의 선생님 힘주기 신호에 따릅니다. 분만실 입실 후 3번의 힘주기로 오전 8시 2분, 딸은 엄마의 배에서 탈출하여  신속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무통주사 동의서에 서명하러 갔다 감감무소식이었던 남편 왈曰,

무통주사 동의서에 서명하고 진통실에 들어왔더니 내가 사리지고 없었답니다.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며 서있었더니,

"여기서 뭐 하세요? 빨리 밖으로 나가 분만실 앞에서 아기 확인하세요. 아기 곧 나와요."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답니다. 부랴부랴 진통실에서 나와 분만실 밖에 서있으니 딸이 나왔고 무사히 첫인사를 나눴다고 합니다.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긴박하게 이루어진 나의 출산으로 진통의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남편은 지금도 내가 아~주~ 쉽게 딸을 낳은 줄 압니다.



빼앗긴 2012년 봄을 위로하는 [벚꽃 엔딩]


너무 빠른 출산 진행으로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산통을 견디기 위해 과도하게 주었던 힘 때문에 얼굴의 모세혈관은 터져 울긋불긋했고, 빠르게 산도를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 딸의 이동에 의한 상흔으로 앉거나 걷기가 힘들 정도로 하체의 통증은 심합니다. 그래도 초면이라 낯설기는 하지만 세상 소중한 딸에게 건강에 좋다는 초유는 반드시 먹이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웁니다. 짐승이 훑고 지나간 성치도 않은 몸을 휠체어에 의지하여 밤새 모유수유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는 아는) 모성애를 뽐내 보다가 이틀 후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차에 타려 하는데 회음부의 통증으로 도저히 앉을 용기가 안 납니다. 아니 어찌어찌 앉을 수는 있을 것 같으나 자동차로 이동 중 덜커덩거리면 '악' 소리가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회음부 방석을 살 걸'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던 찰나, 차 안에 있는 목 베개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시다시피 목베개는 사용 목적 상 가운데가 뚫려있어 나의 눈에는 회음부 방석의 최적의 대안으로 보였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에 목베개를 조심스레 밑에 깔고 차에 올라탑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이동하다가 잠시 창 밖을 보는데 개나리가 노랗게 피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을 위해 새벽에 병원으로 이동할 때는 두툼한 겨울 솜 점퍼를 입었는데 이틀이 지난 지금은 햇빛에 봄이 흠뻑 묻어납니다.

세상의 시계는 이틀이라는 시간만 지났지만, 내 시계는 인생의 큰 과업을 수행한 의미 충만한 시간이어서인지 계절이 바뀔 정도의 긴 시간을 보내고 나온 듯합니다.  


갓난쟁이 딸을 안고 자동차 창 밖으로 보이는 하얀 벚꽃을 아련하게 눈에 담으며, 둘이 나갔다가 셋이 되어 돌아온 집에서 다시금 창 밖을 내려다봅니다. 농익은 봄 햇빛으로 봄이 한창임을 눈으로만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는 갓난쟁이 딸의 건강을 위해 밖에 나갈 수 없는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창 밖에 가로막힌 채 먼 거리에서 눈으로만 확인되는 봄에 갈증만 더해 갑니다. 온몸으로 느끼는 봄과의 스킨십이 너무나도 간절합니다.


봄의 갈망과 함께 산후 우울증도 어기적어기적 찾아오려 폼을 잡는 어느 날, 불안정한 아내의 상태를 직감한 남편이 퇴근 후 USB를 건네줍니다. USB 안에는 그 해 3월 29일에 발표한  '버스커버스커' 첫 앨범의 곡들이 담겨있습니다. '벚꽃 엔딩'을 수없이 반복하며 듣습니다. 출산 직후 외출이 힘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발표된 곡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출산과 육아로 빼앗긴 2012년 봄을 [벚꽃 엔딩]으로 위로받았고 견뎌냈습니다.


사실 이전의 나는 특별히 좋고 싫은 계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에 의해 온몸으로 느끼는 봄의 간절함이 몸과 마음에 흉터처럼 각인된 2012년 이후 봄은 나에게 가슴 설레게 좋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이상은 이전 나의 글 <내가 나로 느껴지는 순간을 위하여>에서 질문한 '내가 사계절 중 봄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대한 답이었습니다.


https://brunch.co.kr/@mysticlamp/1






<타이틀 이미지 출처: a href='https://www.freepik.com/vectors/floral'>Floral vector created by macrovector - www.freepik.c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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