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꿈꿔
1. 낮잠을 건너뛴 아이가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어 나와 남편 아이 셋이 나란히 침대에 눕게 되었다. 남편은 곧 변경될 부서와 조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잠에 들었다. 내 팔베개를 베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남편은 다정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야, 꿈속에서 코끼리 만나고, 자동차 꿈도 꿔." 그러고 남편은 통화할 일이 있어 방을 나갔는데, 나는 남편의 저 말에 펑펑 눈물을 쏟아버렸다. 이 글은 남들도 같이 보자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내가 왜 울었는지 이제부터 설명을 해야 할 텐데,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정보는, 우리 아이는 자동차를 너무 좋아한다는 점과, 나는 다정한 말을 많이 못 듣고 자랐다는 배경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왜 그냥 눈물도 아니고 펑펑 울게 되었는가에 대해선, 엄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2. 나는 근 10년 동안 엄마를 미워했다. 엄마에게 벌을 주고 싶어 했다. 머리 큰 이후 형성된 기억들을 떠올리자니, 엄마가 비난받을 이유는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내가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고쳐보고자 펴 본 책들에선 모조리 부모의 역할 - 특히 엄마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었다. 책들에서 열거한 이상적인 엄마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내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했지만 엄마는 정확히 반대 지점에 있었다. 얼마나 반대였는지 현재의 내 불행을 모두 엄마의 잘못된 양육 방식 탓으로 돌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미워할 이유는 많았고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기댈 사람 없이 늘 외로워 사람에 배고파하던 안쓰러운 나를 위해 엄마에게 복수를 해주기로 했다. 그 복수는 꽤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아이를 키워보니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행동을 나에게 할 수 있었던 거야? 아무리 그땐 다들 그렇게 키웠다 해도 잘못이 잘못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잖아?
3. 이런 생각을 너무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살았기에 난 내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도 내가 겪은 고통만큼 힘들어야 한다고,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구절절 말하기 힘든 몇 가지 경험을 거치며 나는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더 이상 미워하거나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접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 마음을 더 잘 느끼고 이해하게 되었다.
4. 사랑은,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기억에 없고 느끼지 못했다고 사랑이 아닌 게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날들 동안 엄마는 나를 아끼고 보호했고 사랑했다. 그 사실은, 한편으론 분하지만 인정 안 할 수가 없다. 집에 가면 늘 아무도 없었고 나는 인형을 앉혀놓고 밥을 먹었다. 나는 정서적으론 외로운 아이였지만 엄마가 냉장고에 준비해 둔 빼곡한 반찬들을 꺼내먹었던 배부른 아이이기도 했다. 엄마가 풀타임 일을 하시면서 반찬을 손수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그 정성을 쏙 빼고, 그냥 나는 너무 외로웠고 모든 게 엄마 탓이야 라고 하기엔 너무 공평하지 않았다. 취업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은 안 해주셨지만 취업한 나를 백화점으로 데려가서 좋은 브랜드의 기본 정장치마와 구두를 사주셨고, 이런 아이템은 늘 필요할 거라며 흔쾌히 지갑을 여셨다.
5. 남편의 "자동차 꿈꾸렴" 이란 말은 잠든 아이에겐 들리지 않았을 것이며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아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엄청난 사랑을. 그리고 나는 이제 본다. 다정한 말은 없지만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애쓰던 엄마의 모든 분투에 담긴 엄청난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