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라주] 집돌이 조카, 지하철카드, 리스본 푸드
이제 세비야를 마지막으로 스페인 여행이 끝나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난다.‘따로 또 같이’ 여행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발견한 이모조카의 취향, 그리고 조카의 재발견.
공통점은 코를 곤다. 고단한 배낭여행이니 당연하지만, 조카의 코골이는 워낙 심했다. 입대 전에 수술 상담을 받을 정도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선 조카가 거실 소파베드에서 자고 이모는 방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호텔룸은 침대가 가까이 붙은 트윈베드라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소음에 잠을 쉽사리 이룰 수 없었다.
둘 다 인물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여행 중 함께 찍은 사진은 세비야 미식 투어와 포르투 와이너리 투어 때 가이드가 찍어 준 사진이 전부다. 둘 다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 스타일이고, 각자 취향을 인정하고 서로 조심했던 거 같다.
다른 점은 이모는 아침형 인간이고 조카는 저녁형 인간이다. 조카가 아침밥을 안 먹고 늦잠을 잘 동안 이모는 꼭 아침식사 겸 동네탐방을 다녀왔다. 조카는 체크아웃 날에는 마지막까지 숙소에서 뒹굴거리는 집돌이었다. 숙소에서 이모는 거실 테이블에서 여행 드로잉 작업을 하고, 조카는 주로 침대에 누워 게임과 채팅을 한다.
이모는 충동적이고 급한 성격에 호기심이 많은데, 조카는 계획적이고 느긋하고 하루에 2개 정도 관광 포인트만 소화하면 만족한다. 조카는 숙소와 식당 선택이 재미있고 까다롭지만, 이모는 현지 문화를 경험하는 체험여행에 진심이다. 조카는 식사할 때 꼭 콜라를 두 병 마시고, 이모는 와인을 마신다. 이모는 아날로그인데, 조카는 디지털 파다. 여행 내내 현지 식당, 교통편 예약과 관광지 입장 등 온라인 사전 예약과 길 찾기는 모두 조카가 도맡았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떠난 해외 배낭여행인데도, 조카는 국내 여행을 하듯이 차분하게 자기 페이스대로 여행을 했다. 디지털 세대답게 모바일로 상황에 맞게 필요한 여행정보를 검색해서 비교한 후 설루션을 제안하는 조카가 신기했다. 생각보다 외국인과 영어로 소통하는 데도 큰 주저함이 없었다. 덩치는 커도 아직 손을 보면 이모보다 작고 하얀 오동통한 아기 손인데, 여행 중 당황스러운 상황에선 이모보다 더 침착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 조카를 보니 듬직했다.
한 달 넘게 여동생이 친정에서 출산 후 몸조리를 하는 동안, 매일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켰던 갓난아기 첫 조카가 이제 대학생을 거쳐 곧 군인, 사회인, 가장이 되겠구나 하니, 참 묘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