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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수 Dec 18. 2023

당근과 채찍 사이

당근과 채찍 사이

사람 마음은 0 아니면 1과 같은 디지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마치 황희 정승처럼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라고 하고 싶은 경우가 참 많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말한다.


특히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면담 중에 내가 말하는 조언과 생각들은 결국 나의 경험에 기반해서 구축된 것들일 수밖에 없다. 부정하려고 해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사람의 생각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전혀 다른 경험을 통해서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 봤다면 그건 결국 답이 없는 문제이다. 여러 방법으로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조언은 잔소리가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꼰대가 되어 버린다.


많은 경험들은 정답이 있기보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면담을 통해서 내가 배우는 것도 많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서로 공감하는 경우도 참 많다. '정말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러면 반갑기도 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보니 아쉬웠거나 놓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첨언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쪽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야 일관성 있고 혼란스럽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정말 열심히 모두 열심히 하는 교육생들이지만 간혹은 갸우뚱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다음과 같은 두 감정이 충돌하고야 만다.


열심히 하고 있네! vs 지금 놀 시간이 있나?


마치 한쪽 귀에는 천사가 한쪽 귀에는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바빠서 배운 것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내고 아직까지 기본서를 절반도 읽지 못했다며 걱정하던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한마디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지 않았냐며 따질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 한마디 하긴 했다. 근데 그렇게 자상하게 한마디 하는 것 말고.


나는 자상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들에겐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나름대로 정말 자상하게 한 것이 맞다. 왜냐면 너무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잠시 게임하며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나도 게임한 적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불쑥 '아니 그래도 지금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게임이 손에 잡히나? 난 안 그럴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이 치솟는다.


그럴 땐 농담처럼 '아이고~ 게임할 시간이 있으신가요~?'처럼 말했기 때문에 자상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을 평가하거나 월급을 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권위에 의한 압박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농담이 진짜 농담으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그들 입장에선 다를 수 있겠지만 정말 나의 의도는 강하게 회초리를 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농담반 진담반이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농담이지만 뼈가 있는 말일 수도 있겠다고 알아주길 바랐을 뿐이다.


그렇다. 사실 농담인 척했지만 분명히 반은 진심이었다. 혼내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도 한참 게임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했으니까 강하게 뭐라고 할 자격이 없고 그 순간에 그 재미를 알기 때문에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뭐라고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아무리 뭐라고 해도 바뀌지 않을 게 뻔하다. 뭐라고 하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다.


반대로 열심히 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한 말들도 모두 진심이다. 그 속에 반은 앞서 말한 것처럼 놀 시간이 있는데 왜 시간이 없다고만 하지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말하면서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사람이 놀기도 해야지! 그래도 10개월 그걸 못 참나?


어떤 사람은 당근과 같은 칭찬을 좋아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채찍과 같은 독려를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걱정으로 가득 찬 대부분의 교육생들에게는 당근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부드럽게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들을 보면 그렇게 된다.


'놀 시간이 있나요?' 이렇게 물을 때도 조금은 여유가 있다면 참 다행이다 싶다가도 여유가 있는 것이 말이 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할 일을 다하고 여유가 있으면 좋은데 하고자 한 일을 하지 못해서 걱정을 하면서 여유가 있는 점이 문제인 것 같다. 근데 그것마저도 이해가 된다. 나도 매일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아니 그런데 나랑 입장이 같나? 그들은 10개월 간 정말 열심히 몰입하겠다던 친구들인데. 초심을 잃은 것 아닌가? 그걸 생각하면 또 조금 괘씸하다.


한국사 일타강사이신 전한길 선생님이 점점 흑화 하는 영상이 유명하다. 왜 그렇게 되셨을까?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도 한번 회초리를 들어봐야 하나?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두길 바란다.

'난 열심히 하지 않는다. 개발 못한다. 개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달고 사는 나도 한때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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