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면담을 한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그때 당시에 느꼈던 감정 중에서 아직까지도 생생한 것이 바로 면담을 통해서 제일 도움받은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들의 고민과 비슷한 나의 경험을 공유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정도의 자리였다. 막상 면담을 하며 그들의 생각을 듣다 보니 많이 공감되었고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좋은 말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했다. 응원하고 싶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이거다.
나는 지금 젊은 날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의 내가 몰라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한때 자기 계발서 읽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좋은 말과 좋은 습관은 알만큼 알고 있었다. 이것도 큰 착각이었다. 흔히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던가 운동하는 방법을 몰라서 운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가능성이 크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매일 10시간씩 집중해서 외우고 문제를 풀고 하면 되지 않느냐, 매일 1시간씩 달리기 하면 되는 것 아니냐 뭘 모른다는 건가 싶을 것이다. 맞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해보고 나면 더 좋은 방법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고를 한다.
면담은 바로 젊은 날 나에 대한 일종의 회고의 시간이었다. 최종 결정은 결국 본인들이 하는 것이지만 나는 나름 진지하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고 답변했다. 이미 내가 겪어본 일이거나 비슷한 상황이더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내가 한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니 같은 결과를 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 결정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나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을 누군가가 결정할 일이다. 그러니 섣부르게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작은 경험들을 통해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장단점을 늘어놓고 결국 가장 어려운 결정이라는 책임은 그들에게 위임했을 뿐이다. 그럴 때 나도 속으로 생각해 봤다. 정말 이게 나의 일이라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할까? 너무 어려웠다.
그렇지만 앞서 말할 것처럼 조금 더 나은 방법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사람마다 스타일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매일 1시간씩 달리라는 것은 운동의 목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살을 빼고 싶은 것인지 근력을 키우고 싶은 것인지 지구력을 기르고 싶은 것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만약 내가 해본 것이고 아는 것이라면 조금 더 해 줄 말이 있다. 이렇게 했더니 더 효과가 있었고 저렇게 했더니 별로였다고. 물론 그것도 나의 경우로 한정되지만 참고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국 인간의 몸에 대한 메커니즘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니까.
교육생들과 나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 개발자가 된다면 더더욱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조금은 더 할 말이 있었고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마 그들이 나중에 성장하여 누군가와 면담을 하게 되어도 지금의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나보다 더 성장하겠지만 비슷한 고민과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조언을 하거나 이상적인 소리나 늘어놓았을 때는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나부터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감량이 된다. 그러니까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매우 쉽다. 하지만 정작 실천은 어렵다. 실제로 실천하고 있지 않으면서 저렇게 말한다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말에 신뢰가 생길까?
계속 좋은 말만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나도 그렇게 변하게 된 것 같다. 아니 변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이 찔리기도 하고 말에 대한 신뢰감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물론 내뱉은 말을 전부 다 지켰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말을 전할 때 나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는 정도다. 그래서 사실 굳이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다.
다만 내가 잊고 있었던 좋은 방법들이 면담을 통해 되새김질되었고 그들에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나에게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젊은 날의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지금의 나에게 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체가 참으로 큰 반성의 시간이었다.
이 업계에 조금 더 몸 담았다고 그럴싸하게 그들 앞에서 떠들었지만 사실 나도 제대로 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많은 말을 하지만 사실 나도 전부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더 하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아서. 그렇게 하면 더 잘될 것 같으니까. 이런 걸 우리는 잔소리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의 잔소리를 들어준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