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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수 May 17. 2022

평범한 히어로는 없다

평범한 삶의 배신

왜 극적인 상황만 이야깃거리가 될까


세상 사람들은 갱생하는 것을 너무 높이 쳐주는 것 같다. 갱생을 했다는 것은 어떤 과오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과오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갱생을 했다는 것은 이제 겨우 평범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혹은 평범을 넘어서 훌륭해졌다고 하더라도 일정하게 훌륭한 사람보다 더 높게 치켜세워진다.) 갱생이 필요 없는 일정한 삶을 사는 것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심을 받는 것은 갱생한 삶이다.


물론 계속해서 갱생하지 않고 사는 삶도 있을 것이니 거기에 비하면 갱생한 노력은 박수받고 인정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쭉 평범하게 무던히 살아온 인생에는 박수를 잘 보내지 않는다. 50점에서 80점이 된 학생에게는 '정말 노력했구나, 고생 많이 했다'는 소리를 하겠지만 75점에서 80점이 된 학생에게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칭찬에 박한 게 현실 아닌가. 30년을 100kg이 넘는 몸무게로 살다가 80kg으로 감량하면 대단하다며 치켜세운다. 그간의 무절제함이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늘 75kg을 유지한 사람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살이 잘 안 찌는 체질 아니야?'라고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이런 것이 스토리텔링이라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다.


1억 원을 번 사람이 있다고 치자. 바닥을 치며 마음고생도 심하게 하고 죽을 고비도 넘기면서 주식에 투자했다가 상승세를 탄 주식과 그냥 꾸준히 저축하여 모은 돈은 결국 똑같은 1억 원의 가치를 가진다. 매년 -10의 삶으로 10년을 살다가 1년 간 바짝 100의 노력을 한 것과 매년 10씩 노력을 10년 한 것은 결국 총노력량이 동일하지만 전자에 더욱 조명이 비친다.



누가 더 노력했느냐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같은 노력일지라도 다이내믹한 변화로 이목을 끌 수 있는 '스토리'가 있을 때 사람들은 더 주목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이다.


나 또한 그런 것에 더 눈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쳇바퀴 돌아가는 듯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더욱 재미나게 들리겠지.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엘리트 코스 밟고 검사가 되는 이야기도 나름 재미있겠지만 조폭 출신 경찰 이야기보다 자극적이지 못하다.

노력의 기준도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다. 다시 다이어트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사람은 한 달에 8kg을 감량하고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이 정도는 그냥 그저 그런 노력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한 달에 2kg을 빼고 자신의 의지가 대단했다며 만족하고 자신만만할 수 있다. (실제 노력의 양에 관계없이 이 자신감만으로도 많은 이득을 볼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일까. 노력이란 것을 하기는 했을까. 누군가에게는 노력을 한 사람, 누군가에게는 대충 살아온 사람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히어로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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