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수업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Happy things’(제이레빗)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뻔했다. “오 누군가 보고 싶을 때, 그대가 내 맘 알아줄 때” 부분은 멜로디 라인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내겐 이 부분이 이 노래의 킬링 파트다. 즐거운 감정이 고조되다가 이 부분에 다다르면 탄산음료의 뚜껑을 따는 순간처럼 마음이 팡, 튀어 오른다.
‘킬링 파트’는 노래에서 강렬하고 중독성 있는 부분을 말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말 그대로, 노래에서 ‘죽여주는 부분’, 인상 깊고 좋아서 감정을 들썩이게 만드는 부분을 뜻한다. ‘킬링 파트’는 노래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필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등교한다. 시험날도 아닌데 시험 대형처럼 앉아 홀로 공부한다.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삼삼오오 어울려 놀이 활동도 못하고, 모둠 활동도 못한다.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잃은 채 지내고 있다.
길고 지루한 원격 수업의 터널을 지나 학교에 왔는데, 집에서 홀로 지낼 때와 별반 차이가 없으면 어쩌지. 이런 통제된 상황 속에서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의 생활에 ‘킬링 파트’를 만들어주는 게 교사인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노력이다. 그래서 하루에 한 개라도 공부 걱정 없이 즐거울 수 있는 활동을 하려고 애쓴다. 코로나 이전처럼은 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시간, 하루, 월, 년, 일생 등 무수한 시간의 단위를 산다. 우리의 행복이라는 건, 그 각각 시간의 단위 속에 킬링 파트를 만들려는 시도와 과정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루라는 시간을 살면서 그 하루 동안 행복해지기 위해 의도된 순간이 하나도 없다면, 그 하루를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까.
나의 킬링 파트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 한 남자가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들어선다. 그는 불면증이 있다. 매일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 두 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에서 깬다. 남자는 아내를 잃고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삶의 목표는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권’을 다 읽는 것이다. 그가 보내는 하루의 킬링 파트는 새벽 두 시에 시작된다.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나가는 그 시간이야말로 일상의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는 구간인 것이다.
이 남자는 2015년에 나온 영화 〈더 이퀄라이저〉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중반부터 격렬한 액션 씬이 나오고, 주인공이 비범한 능력으로 악당들을 때려잡는다. 시원한 액션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주인공이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들어서는 그 장면에서 난 이미 영화에 대한 계산을 끝냈다. 엄청난 전직을 가졌던 주인공의 목표가 책 100권을 읽는 것이라니! 이 설정이 너무 좋아서 그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 목록에 포함시켰다.
하루의 킬링 파트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한 구간일 것이고, 어떤 이에겐 가까운 이들을 사람을 도왔던 구간일 것이다. 저마다 다르다. 그 구간이 하루에 존재했다면, 스스로 그 하루를 만족스럽고 가치 있게 보냈다고 평가할 법한 시간일 것이다.
내 하루의 킬링 파트는, ‘쓰는 시간’이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하얀 화면을 불러와 커서가 깜빡이는 걸 보며 두 손을 자판에 올려놓을 때 내 시간의 멜로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하루 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감정들이 이제 오르막을 달린다. 오르막의 끝에서 몸을 굽혔다가 펴는 순간, 남색 여름 하늘로 비상한다.
<더 이퀄라이저>의 로버트 맥콜도,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권 중 한 권을 들고 카페 문의 손잡이를 돌릴 때, 만족감의 오르막을 달리는 감정들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일생이라는 내 시간의 구간마다 ‘킬링 파트’를 설정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내 영향력이 허락된다면, 다른 이들의 ‘킬링 파트’ 설정도 힘껏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주변 사람들의 삶이 밋밋한 노래로 남지 않고, 저마다의 멜로디로 포텐을 터뜨리는 걸 보는 것만큼 행복에 가까운 일이 있다면 누가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