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확장될 줄 알았지만

달리는 여성을 보고 생각한 것

by 송광용

운전을 하다 신호등 앞에서 정차했다. 창밖 건너편 보도에 한 여성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평소 달리기와는 거리가 먼 일상을 사는 것 같았다. 달리는 폼이 영 어색했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마음이 앞서는지 몸이 이상하게 뒤틀어졌다.


여성의 시선을 던지는 길 앞쪽을 보았더니, 두 살쯤 되었을 법한 아기 하나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달리는 기술을 익힌 지 오래되지 않은 아이였다. 아마도 길가의 어떤 가게에서 엄마가 한 눈 판 사이에 탈출을 감행한 게 분명했다. 그걸 보고 그 상황을 단박에 이해했다.


엄마는 아이를 따라잡아, 한 손으로 아이를 낚아채서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곤 방금까지 있었던 가게 쪽으로 걸어가며 한 손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두어 대 때렸다. 안도의 마음이 담긴 행동. 아이는 엉덩이를 맞으면서도 달리기를 계속하는 기분인지 앞을 향해 손과 발을 버둥거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도 안도감을 느꼈다. 재미있는 그림 한 점을 본 기분으로 다시 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엄마와 아이에겐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그 날 만나는 지인이나 가족에게 식은땀과 뜨거운 땀이 함께 솟았던 그 순간의 기억을 뜨겁게 이야기하겠지. 자신의 부주의, 어느새 향상된 아이의 달리기 실력, 깜짝 놀랐던 감정, 이 모두가 범벅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녀가 여유를 부릴 수도 있고, 믿을 수도 있는 사람일 것이다. 문득 그 엄마 주변에 그런 이가 있기를, 하고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과거엔 세월이 갈수록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날 거라고 믿었다. 내 우스꽝스러운 실수나 부주의를 맘껏 말할 수 있고, 이야기 속에서 내가 망가져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즐거운 화제로 삼아 대화할 수 있는 사람. 내 주변에 그런 부류를 늘려가는 일이야말로 관계를 확장하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 알게 되는 사람은 많아지지만, 관계가 확장되지는 않는 것 같다.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맘껏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녹록지 않다. 자주 보면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눌 텐데, 가끔 보니까 그간 쌓아둔 굵직한 얘기만 나누다 헤어지게 된다.


실질적인 관계의 확장은, 이런 일기 같은 글을 끄적이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글을 끄적이는 '지면'이 '관계'에 등치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생각하면 조금 쓸쓸하지만, 나쁘진 않다. 어쩌면 지금은 나와의 관계를 확장해 가는 시기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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