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태 프로젝트 학습이 진행 중이다. 내가 담임하는 2학년의 첫 번째 프로젝트 주제는 꿀벌 생태 학습을 통한 기후 위기 탐구였다. 꿀벌을 주제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을 했다. 하이라이트는 양봉 전문가를 불러와 실제 꿀벌을 관찰하고, 꿀 짜는 기계를 손으로 돌려 꿀도 짜 본 일이었다. 작년부터 학교 옥상에 도시 양봉장이 있다. 꿀벌 학습을 할 때면 아이들은 그곳으로 이동해서 활동을 한다. (방송국에서 찍어갔고 YTN 전국방송도 탔다.)
학교 입장에선 생태 연구학교 운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지만, 아이들에겐 꽤 좋은 학습 기회다. 연구학교가 끝나면 도시 양봉장 운영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업 운영들은 예산이 필요하고, 지금은 모든 예산이 연구학교 운영에 집중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입장에선 운때가 맞은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멀리서만 보던 벌을 직접 마주하며 막연한 두려움을 지워갔다. 아이들이 지녔던 감정은 우리 인간이 자연에 갖는 감정과 스탠스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린 자연을 더 알고, 어떤 존재를 더 알아감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지워낼 수 있다. 두려움을 지워내면 연결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꿀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장수풍뎅이 프로젝트로 돌입했다. 꿀벌 프로젝트는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에 탐구 포인트가 있었다면, 장수풍뎅이 프로젝트는 기르고, 돌보고, 키우는데 방점이 찍힌다. 반별로 장수풍뎅이 특대형 사육 세트를 두 개씩 들여놓았다.
업체에서 보냈다던 택배 상자 6개 중에 4개가 주문한 주간 목요일에 도착했다. 정작 장수풍뎅이가 들어 있는 박스 2개가 오지 않았다. 업체에 연락을 하니 그렇게 하루 차이로 따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난 좀 걱정이 되었다. 금요일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장수풍뎅이들은 주말까지 끼어서 며칠을 갑갑한 택배 상자 속에서 보내게 될 텐데, 건강하게 만날 수 있을까.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금요일에 올 거라던 택배는 도착하지 않았다. 장수풍뎅이는 월요일에 정오쯤 도착했고, 수업이 끝난 오후에나 택배 상자를 열어볼 수 있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반찬통(한솥 도시락에서 국을 담아주곤 하는 그런 통)에 장수풍뎅이가 한 마리씩 들어있었다. 하나씩 꺼내며 장수풍뎅이가 무사한 걸 확인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일회용 반찬통 몇 개에 구멍이 보였던 것이다. 장수풍뎅이가 며칠 동안 갇혀 지내면서 얇은 플라스틱 표면을 갉아서 생긴 구멍이었다.
통 하나는 비어있었다. 탈출! 택배 상자를 살펴봤더니, 그 반찬통을 면하고 있던 상자의 한 면에 반찬통구멍과 비슷한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 장수풍뎅이 한 마리가 택배 상자도 뚫고 완벽하게 탈출했다. 택배 상자 속에서 보낸 시간이 더 늘어났다면, 아마도 더 많은 장수풍뎅이가 탈출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장수풍뎅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사육 상자에 붙어서 장수풍뎅이를 관찰했다. 장수풍뎅이 정밀화도 그려보고, '풍이' 노래도 불렀다. 다음 날 난 아이들에게 탈출한 장수풍뎅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장수풍뎅이가 지금 어디에 있을까를 상상해서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다.(의도치 않은 상황 또한 교육의 재료가 된다)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장수풍뎅이는 공원으로도 날아가고, 원래 살던 숲으로도 갔다. 난 장수풍뎅이가 거대 괴수로 변해서 돌아와,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을 초토화시키는 상상을 잠시 했다. 아이들의 바람대로, 장수풍뎅이의 탈출이 성공적이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