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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광용 Aug 01. 2022

만 5세 아이를 초등학교에?

학제 개편,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의 학제 개편 예고로 시끌시끌하다. 여론은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교육부 장관은, 일선 교육청과 논의 과정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런 과정은 없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이런 중요한 사안을 최소한의 의견 수렴이나 논의 과정 없이, 대통령 의견만 듣고 툭 던져 놓은 것이다. 뒤에서 밝힐 테지만, 대통령의 교육관도 문제지만, 교육적인 관점이나 고찰 없이 교육계의 혼란을 야기하는 교육부의 모습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교육부는 학제 개편의 목적으로, “영유아 단계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대상을 확대하고 출발선상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한편, 결과적으로 졸업 시점을 1년 앞당겨 사회에 진출하는 입직 연령 또한 낮추는 방안을 꾀하는” 것이라고 했다.

 

 목적을 세분화하면 두 가지로 압축된다.

1) 교육 격차 해소 2) 청년층의 노동 시장 진입 연령 낮추기


 1번을 좀 들여다보면, 학제 개편안이 그 목적을 이루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때 맞벌이 부모는 하나의 문제에 봉착한다. 수업이 마친 후 오후 시간 동안 아이의 돌봄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돌봄 교실에 등록하고 방과후학교를 수강하고 학원을 등록한다. 돌봄 교실도 경쟁이 치열하다. 맞벌이 부모 조건에 부합해도 추첨으로 뽑는 경우가 다반사다. 방과후학교도 마찬가지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신청 기간엔 클릭 전쟁이 펼쳐진다. 돌봄 교실에서 미끄러진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학원 등록을 해야 한다. 소위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필자의 첫째 딸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고, 둘째는 6살로 유치원 재학 중이라 이 부분은 체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돌봄 교실이 돼도, 아이가 그저 돌봄만 받으며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그런 고민이 생긴 부모들은 사교육 시장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학제 개편안이 아이들의 사교육 진입을 앞당길 거라 예상하는 이유다. 이는 교육 격차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 국가가 책임지는 대상을 확대하는 목적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국가의 책임보다 부모의 책임이 더 늘어나게 된다. 학제 개편을 찬성하는 측은 ‘돌봄 부담 해소’가 장점이라고 말하는데, 어떤 면에서 돌봄 부담이 해소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도 발생한다. 만 5세는 아동발달 단계상, 전조작기에서 구체적 조작기로 넘어가는 단계로 전조작기에 가깝다. 구체적 문제에 대한 논리적 사고가 어렵고 직관적으로 사고하는 단계다. 그래서 ‘공부’라는 과정보다 놀이를 통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으며, 현재 누리과정도 발달 단계에 맞춰서 구성되어 있다.


 “누리과정의 목적은 유아가 놀이를 통해 심신의 건강과 조화로운 발달을 이루고 바른 인성과 민주 시민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있다.” -2019 개정누리과정 2.목적과 목표


 초등 1학년 과정은 유치원에 비해 앉아서 수업하고 학습하는 시간이 대폭 늘어난다. 유아교육 기관에서처럼 자유롭게 놀이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다. 만 5세 초등 입학은 아동 발달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현재 입학생 중에서도 수업 시간에 계속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고, 학교 시스템에 적응이 오래 걸려 부모가 노심초사하는 경우가 있다. 입학 연령이 낮아지면 이런 어려움이 가중될 것임은 명확하다. 수업뿐만 아니라, 유치원이나 유아 기관에서 보조 선생님들이 해주는 용변처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생활 지도 면에서 갖가지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아이들이 힘들어질 것이 자명하다. 어린아이들이 더 일찍 학습의 사이클에 편입되어 몸에 맞지 않는 시스템 적응을 강요당하게 된다.



 앞서 말한 ‘교육 격차 해소’라는 1번 목적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고 2번, ‘청년층의 노동 시장 진입 연령 낮추기’가 대통령이 생각하는 실질적인 목적으로 보인다. 산업 역군을 길러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관점은 지금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의 목표를 ‘산업 인재 공급’이라고 여러 차례 표명했다. 이번 학제 개편안엔 대통령의 자본 만능주의 교육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 교육과 거리가 먼 ‘행정’으로 학위를 받은 교육부 장관 역시 비슷한 교육관을 내세우고 있다.


 일선의 교사들은 최소한, 교육이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고 민주 시민의 자질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교육 행위를 하고 있다. 아무리 국가 산업이 중요하다고 경제적인 논리로 교육의 본질을 규정하면, 결국 인간은 국가의 산업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밖에 될 수 없다. 그런 전근대적인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한 사람의 성숙하고 개성 있는 인간을 길러내려는 노력은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오로지 산업에 걸맞은 표준화된 인간이나 무한 경쟁을 통해 산업 사회에서 살아남을 사람을 만드는데 치중하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아이들이 힘들어질지 어떨지, 학부모들이 어떤 걱정에 봉착하게 될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교육에 관한 관료들의 관점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갖는다. 이번 학제 개편 논란처럼 말이다. 교육계에서 그토록, 업무 전문성을 가진 교육부 장관을 부르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부 장관이 임명될 때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걸 얼핏 들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제 학제 개편 기사를 보고 그에 대해 좀 찾아보았다. 음주운전, 제자 논문 가로채기, 조교 갑질 등 여러 논란이 있었다. 교장, 교감, 교사 그 누구도 이런 행실을 했다면 징계 대상이 된다. 징계를 받았어도 몇 번을 받았을 이력을 갖고 교육계의 수장이 되는 현실만으로도 개탄스럽지만, 더 심각한 건 업무 전문성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의 관점 대신 경제의 논리로 교육을 바라보는 한 이번 같은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

이 글을 쓰고, <더 칼럼니스트>의 요청으로 글을 정리하여 칼럼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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