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글쓰기와 책 쓰기, 아이들 동화 쓰기 지도에 관한 연수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정원이 25명이었는데, 자꾸 대기가 늘어나서 결국 연수 인원이 45명이 되었다. 도서관 문화교실이 빡빡할 정도였다.
작년에도 같은 강의를 했었다. 선생님들의 반응이 좋아서 이번에 앙코르 연수로 한 번 더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작년 내용에, 동화 쓰기 지도와 문집 제작 노하우를 업그레이드해서 강의했다. 강의하면서 느낀 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글로 뭔가를 생산해 내는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창작의 희열을 갈망한다. 그 갈망은 모든 이들에게 내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창작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도 장식장을 꾸미고, 멋진 요리를 하고, 집의 울타리를 엮어내는 방식으로라도 그 갈망을 채우려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이나 예술 창작은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행위다. 아직 세상에 없는 것을 내놓을 때,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자기 행위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창작하는 이들은 저마다 그것들을 만들어내며, 때론 상한 마음에 연고를 바르고, 때론 정체된 것 같은 스스로를 달래고 격려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같은 sns는 이 창작의 갈망을 이용하고 있는 매체가 아닐까 싶다. 페북에 짧게라도 글을 쓰고, 인스타에 나름의 테마로 사진을 진열하면 다른 이들이 이걸 향유한다. 나도 모르게 창작에서 얻는 것과 유사한 희열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희열은 비교적 작은 노력으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지속력 역시 길지 않다. 어찌 보면 인스턴트식품에 가깝다.
이율배반적인 시각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글을 쓰고 싶다며 조언을 구할 때, 난 쓴 글을 혼자만 끌어안고 있지 말고, sns에 자신이 쓴 글을 공유하라고 말한다. 지속적인 글쓰기를 위해 sns는 무척 유용하다. 하지만 글을 제대로 쓰고 싶다는 원대한 마음을 품었는데 sns에서 받는 '좋아요'만 만족하고 정체되면 곤란하다.
내 삶을 나누고 교류하는 즐거움 말고, '창작하고 싶다'는 갈망을 해소하는데 sns를 사용하고 있다면, 거기서 더 나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 골머리를 썩이며 내가 바라는 분야에서 창작의 정수를 향해 나아가면 좋겠다. 누군가는 에세이를, 누군가는 동화나 소설을, 누군가는 자기 경험의 정수를 녹여낸 자기 계발이나 인문학적인 글을 배워가며 쓸 수도 있겠지. (브런치에서 각 잡고 글을 써서 연재하는 일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우고 훈련해서' 제대로 창작 욕구를 채워보자. 내 삶의 일부를 흔들고, 시간을 쪼개야 하며, 귀찮은 일이 벌어질 걸 감수해야 한다손 치더라도,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것 때문에 삶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끼다가, 어느 순간 그것 때문에 흔들리는 삶을 버티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 말은 나 스스로 주는 조언이기도 하다. 최근에 난, 글쓰기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었다. 진득한 생각을 못하니, 쓸거리도 생각나지 않고 고쳐 써야 할 초고도 펼치기 부담스러웠다. 이런 때일수록, 배우려는 자세로 도움이 되는 책을 펼쳐드는 게 필요하다. 중간중간에 sns를 기웃거리면서 조급한 마음에 토막글을 쓰며 인스턴트식으로 창작욕을 채워보려고 애쓰는 일도 멈추는 게 좋다.
오래, 진득하게 훈련해서 얻을 수 있는 사골국물 같은 창작의 정수를 누리기 위해 나아가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먹는다. 중년에 가까워진 나이지만, 이 정도하고 그만할 거 아니니까. 노년에도 난 여전히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으니까. 삼각김밥 다섯 개 살 돈이면 식재료를 장 봐서 간단하게나마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창작의 희열에 다가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