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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질을 하며

by 송광용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왔다. 바다에서 스노클링 하기를 좋아하는 아내 덕에 우리는 일정의 8할은 바다에 나간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하얀 모래, 해초 냄새를 싣고 오는 바람, 해변의 숨처럼 오가는 파도가 우리를 맞이한다. 간조의 시간이 되면, 바다는 자신이 품고 있던 것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갯바위 위를 조심스레 걷는다. 그리고 나는, 반두를 들고 짧은 산책을 나선다. 물고기의 그림자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잡아야 한다는 욕망이 아니라, 잡는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걷는다.

나는 이런 게 명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리를 접고 앉아 눈을 감지 않아도, 반두질은 나를 생각이라는 어항 밖으로 데려간다. 명상의 본질은 '기억하지 않음'에 있는 게 아닐까. 반두질을 하다 보면, 내 이름도, 가족과의 대화도, 일상도 사라진다. 반두질은 바다의 느린 속도로 나를 다시 동기화시킨다.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쫓으며, 마음도 덜 조급해진다. 결국 대부분의 시간은 헛발질이고, 작은 횟수의 성공이 주는 기쁨은 덤이다. 마치 살아가는 일이 그렇듯이. 바닷가에서 반두질을 하며,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정리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다만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움직일 뿐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는 어느 날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달린다. 많은 이가 그 뒤를 따른다. 포레스트는 그저 이유도 없이 달리다가 어느 순간 멈춰 서며 말한다. "이제 집에 가야겠어." 거창한 깨달음이나 이유가 아니라, 그는 그저 달리는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비우고 채운 것이다.

도시에선 쉽지 않다. 수시로 울리는 알림과 뉴스 속에서 생각의 쓰레기를 분류하느라 지친다. 스마트폰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대화는 종종 목적 없는 정보를 공유하는 데 그친다. 지속적인 주의력 고갈은 현대인의 만성 병이 되었다. 유튜브와 쇼츠, 피드와 피드백 사이를 떠도는 우리의 정신은 '오래 바라보기'를 잃어버렸다.

우리에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뜨개질이든, 작은 정원 가꾸기든, 바닷가 반두질이든. 무엇이든 좋다. '몰입' 연구의 권위자인 황농문 교수는, 몰입은 내가 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서 나 자신조차 잊어버린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몰입의 가치는 높은 성과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몰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가치는 깊은 행복감에 있다고 한다.

난 이야기를 쓸 때, 몰입의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내 마음에 있던 이야기가 활자로 변해 빈 종이로 옮겨간다. 이런 몰입의 메커니즘은 다른 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닷가에서 반두를 채우는 건, 작은 모래무지 같은 물고기가 아니라 내 생각의 파편들이라고.

반두질이 끝나면 갯바위 위에 반두를 펼쳐놓는다. 바닷물에 젖었던 그물코는 햇빛 아래서 반짝거린다. 그물엔 이내 물방울의 흔적도 없게 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작은 채집통에는 운 나쁜 모래무지 몇 마리와 이름 모를 물고기가 당혹한 표정으로 바깥을 살핀다. 그렇게 나는 대단한 걸 잡진 못했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은 사람처럼 해변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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