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일이었다. 학교에 생존수영 관련 복지비가 내려온 적이 있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수영 장비를 사주라는 것이었다. 그해 체육부장이었던 내 업무였다. 현금으로 바로 지원하면 서로 좋을 일이었지만, 굳이 학교에서 수영 장비를 직접 사서 주라고 했다.
지원 대상은 아직 생존수영을 시작하지 않은 2학년 아이들이었다. 3~6학년은 이미 프로그램에 참여해 장비를 갖춘 상태였다. (왜 그해에만 예산이 내려왔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여러 해 체육부장 보직을 맡았지만, 매년 있는 예산은 아니었다.)
예산은 애매했다. 수영복, 수모, 수경 등 전부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왕이면 풀세트를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폭풍 서핑에 돌입했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상하 레시가드 세트를 찾는 게 핵심이었다. 그래야 수모와 수경까지도 챙겨줄 수 있었으니까.
드디어 적당한 세트를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대상 학생이 열두 명이었는데, 모두 같은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서 마주쳤을 때의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어딘가 어색하고, 당혹스러워할 얼굴들.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지원해 준 수영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같은 수영복은 절대 안 된다! 예산 집행자 입장에선 클릭 몇 번으로 같은 제품 12개를 주문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다시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열두 명에게 모두 다른 수영복을 찾는 데, 시간은 네 배 이상 걸렸다. 괜찮은 디자인은 예산을 넘었고, 예산 안에 들면 사이즈가 없었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열두 벌의 레시가드 세트를 장바구니에 채워 넣었을 때,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수모와 수경도 예산 안에서 다 담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소비쿠폰 색상 차별 논란 뉴스를 보았다. 몇몇 지자체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소비쿠폰 카드 색깔을 다르게 발급했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려고 그 카드를 내밀면, 누구라도 그 사람의 소득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 논란을 보며 예전 일이 떠올랐다. 같은 예산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집행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걸 나는 그때 배웠다. 대통령이 말했던 ‘행정 편의주의’나 ‘인권 무감각’ 같은 큰 말까지 갈 것도 없다. 그냥, 상대방 입장에서 잠깐 생각해 보면 된다. 이걸 받을 때 어떤 기분일까, 어떤 마음으로 쓰면 좋을까. 짧은 공감이면 충분하다.
우리 사회엔 고도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엔 반드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좋은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도 있고, 오히려 더 빛나게 만들 수도 있다.
좋은 사람이라도 생각을 멈추고 주어진 버튼만 누르는 사람은 시스템의 일부로 남을 것이다. 잠깐 멈춰 생각하는 사람, 단 한 번이라도 ‘이걸 누군가가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하는 사람은 그 시스템을 사람답게 만드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부품이 될 것인지, 혹은 마음을 가진 집행자가 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