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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Aug 29. 2022

불혹에 다시 시작한 무에타이

혹이 없어 다시 할 수 있었던  격투기

논어 위정 편에 적힌,

공자가 40세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는 뜻인 불혹.

(출처 : 네이버 지식사전)

이미 사십 세가 넘어 지천명(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나이를 향해 급한 성질 그대로 뜀박질을 하고 있음에도

매사 사소한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이

흐려져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에도 왜 그랬는지 계속 자책하고 있었다.


계속 흔들려서 살더라도 싫은 일은 안 했고,

어머니의 오랜 투병 생활을 옆에서 간병인으로

지켜봤던 나는 많은 사람들이 큰 병에 걸리기 전,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남들도 다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살아'라는 말로 무시해서

병의 진행을 막지 못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민한 성격에 조직생활 부적응자로

조직 내 일원으로 일할 때 받은 스트레스에

몸에 변화를 마주했고,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빨리 캐치해서 바로 퇴사했다.

그런 적극적 대응으로 여자들이 30세 넘어서 부터

흔하게 생기는 물혹 하나 없이

아주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런 불혹이라 불리는 나이에

다시 무에타이를 시작하게 됐다.

남들은 호신술로 배운다지만,

무에타이를 오랜 시간 배우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아무리 여자가 무에타이를 잘하고

챔피언이 된다고 하더라도,

격투기를 훈련한 체격 좋은 남자는 이길 수 없다. 였다.

체육관 단체사진

SNS에서 외국 주짓수 국가대표인 여자가

남자 소매치기를 조르기 기술로 기절시킨 후

경찰에 인계한 사건을 본 적이 있다.

사진 상 여자는 국가대표답게 근육질이었고,

소매치기는 남자치고는 체격이

왜소해서 여자하고 신체적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무에타이를 비롯 다른 여러 격투기를

여자 호신술로 과도하게 홍보하며

자신의 체육관에서 시작하라고 유혹하는 마케팅을

볼 때마다, 가르치는 사람들 역시 호신술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을까 혼자 반문해 본다.

호신술로서 검증이 되었다면

시합에서 왜 성별이 나눠지는지 모를 일이다.

(시합상 체급을 나눌 수 있는 있지만

왜 성별을 구별해야 하는지)

보통 호신술의 상대는 남자가 공격자이고

여자가 방어자인 경우가 다수가 아닌가.


그럼에도 훈련을 통해서 얻게 되는 자신감과 체력이 향상되어 타인한테 공격받았을 때,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고 배웠던 기술을 써서

그 자리를 벗어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키 포인트이라 생각한다.


오래전에 60대 노인이 엘리베이터에서

태권도 도복을 입은 여자 아이를 성추행하려 했던

사건이 있다. 여자 아이는 자신이 배운 돌려차기를

연신하며 할아버지한테 달려들었고,

그 기세에 노인은 놀래서 뒷걸음쳤던 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힘을 써서 세게 때렸다면 일

이 다른 양상으로 흘렀겠지만,

반항 없이 끌려갈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다르게

맞서 싸운 여자아이의 기세에 놀랐다고 생각했다.


여자들한테는 격투기 기술만큼

기세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3년 만에 무에타이.

한국에서 집순이로 살며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지냈던 시간만큼

몸과 마음이 많이 변한 상태였다.

중년의 몸매로 연상되는 물컹한 뱃살, 무너진 디라인,

늘어진 피부 탄력이 육안으로 바로 확인되었다.

나를 살찌게 했던 팟캇파오무

거기에 태국에서 무절제하게 즐긴 음식으로

늘어난 체중을 빼기 위해 무작정 체육관에

예약 메일을 보냈다.


체육관은 치앙마이 시내에서 1시간을 차로 달려가면

만날 수 있는 시골 한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체육관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선수 양성을 목표로 무에타이라는

전통 무술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둔

진지한 트레이너들이 많은 곳이 있는 반면,

영화를 통해 많이 대중화된 무에타이를 체험하러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재미 위주로 운동하는 체육관도 있다.


난 딱 그 중간의 경계선에 있는 곳에서 시작했다.


몸으로 배운 공부는 몸에 남는다는 말에 맞게

3년 만이었지만 킥, 펀치, 엘보우, 니킥이 자세가 나왔다.

트레이너도 잘한다고 칭찬했지만,

40대 여자치고는 잘한다 였지, 남자들과 비교했을 때는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운동을 안 했고, 코로나 후유증으로

3층 높이에 계단을 오르면 숨을

헐떡 거릴 정도로 체력이 바닥이었다.

그래서 트레이너와 패드 칠 때,

2라운드 중간이 되었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숨도 찼고, 몸도 마음대로 잘 안 움직였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주저앉아서

1분 뒤에 다시 '시작종'이 울릴 버저의

코드를 빼 버릴까 콘센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집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오래간만에 하는 다리 찍기는 고장 난 컴퍼스 마냥

어정쩡하게 다리를 벌린 상태로 서 있었다.

(다리 찢기는 앉아야 하는데 말이다)

키가 작기 때문에 하이킥과 태권도 기술인 발바닥으로 얼굴을 찍는 찍기 기술이 상대와 스파링을 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1인으로,

다리가 일정 부분 찢어져야 했다.

조금 더 벌리려는 노력을 할 때마다

극심한 통증에 이런다 고관절이 골반에서

이탈하는 게 아닌가 싶을 걱정이

들 정도로 아팠다.


첫날부터 무리하지 말자,

혼자 다독이고 힘겹게 3라운드를 끝내고 재빨리 '감사합니다. 껍굽캬~'라고

인사하고 도망치 듯 링 밖으로 나왔다.


1라운드는 체육관마다 3분, 5분 다르지만,

내가 있던 곳은 5분이었다.


패드를 치고 나면 2라운드(10분)를 멍하니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고르며 쉬었다.

더운 태국 날씨에 격렬한 운동이 합해져 티셔츠는

땀으로 젖어 있었고,

얼굴 역시 벌겋게 낮술 한 사람처럼 빨개져 있었다.

이 날은 알레르기처럼 빰 쪽에 일정 부분이 부어올랐다.


이제 다 된 건가?

무에타이 하기에 난 늙었나?

그만하라고 몸에서 신호를 얼굴로 대놓고

보내는 게 아닐까?

온갖 생각 속에서 첫날 훈련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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