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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Mar 21. 2022

우린 AI가 아니잖아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것

오랜만에 아이들과 자전거 공원에 다녀왔다. 충분히 연습한 후에 가까운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나가기로 했다. 도심에서 약 15분 걸리면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이 있다. 항상 바다를 보며 살고 있지만 그렇게 따로 나가서 보는 바다도 언제나 참 좋다.


오랜만에 가보니 참 많은 게 변해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보니 언덕 너머에 있는 한적한 마을도 이제는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다. 곧 저녁때가 되어 갈 만한 식당을 검색했다. 미리 구워서 나온다는 돼지갈빗집이 눈에 띄었다. 오픈 이벤트성 후기가 많긴 했지만 고기 냄새도 없고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으로 향했다. 


오후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 막 끝난 시간이었다. 식당에는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고, 나머지 오가는 손님은 2층에 있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은 입구에서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으라는 말만 하곤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에 앉고 보니 태블릿으로 된 메뉴판이 있다. 그러고 보니 각 테이블마다 태블릿이 있다. 직원 호출까지 태블릿으로 할 수 있다. "와~ 편하네." 직원과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뉴를 고르고 주문했다. 


주문을 넣고 얼마 있으니 기본 찬이 나온다. 직원은 말없이 물과 기본 반찬을 테이블에 놓아주고 간다. 주문한 음식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하며 맛본다. 딱 적당한 맛이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니 우리가 주문한 돼지갈비 4인분이 나온다. 갈비는 주방에서 미리 구워져서 나왔다. 그렇게 플레이팅 되어 나오니 마치 스테이크 같은 느낌도 든다. 직원은 갈비와 가위, 집게를 주고 또 말없이 사라진다. 고기를 먹다가 냉면을 주문했다. 물냉면 두 개와 비빔냉면 하나. 역시나 태블릿으로 주문했고, 직원은 말없이 테이블에 놓아두고 간다. 음료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던 돼지갈비


"무슨 말 한마디 없이 음식만 주고 가냐?"

말하는 순간 아!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병원에서의 우리가 흔히 하는 행동과 오버랩이다. 일을 시작한 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근무했던 치료실에 보조선생님이 계셨다. 치료사들이 치료를 잘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역할이다. 주된 업무는 핫팩을 준비해서 환자들에게 가져다주고, 공기 마사지기도 해주는 일이다. 침상 정리는 기본이다. 어느 날 환자가 소리쳤다. "이거 무슨 핫팩만 띡 던져놓고 가는거고? 뭐하라는 거야?" 보통 환자들이 허리가 아프면 허리에, 무릎이 아프면 무릎에 핫팩을 해준다. 허리가 아픈 분들은 침대 위에 핫팩을 놓아주면 허리에 닿도록 누으신다. 소리친 환자도 허리 부위에 핫팩을 하라고 침대 가운데에 핫팩을 두고 바로 나온 모양이었다. 그 환자의 요구는 그거였다.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이야기해주는 것' 환자에게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거였다. "환자분, 핫팩을 허리에 대고 누우시면 됩니다." 그 말 한마디를 안 하고 나와 그 환자는 소리친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도 그 환자와 같았다. 이미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음식이 나오고 맛있게 먹을 거지만, 메인 음식이 나오고 집게와 가위를 주면 알아서 잘 잘라서 먹을 거지만, 그래도 말없이 음식만 주고 가는 것보다 손님이 받는 느낌이 따뜻하지 않을까. 편리함과 신속성, 정확성을 가져다주는 태블릿 메뉴판을 쓰는 것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사람은 AI도 기계도 아니다.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따스한 말 한마디는 식당이든 병원이든 그 어디든 필요하다. 


이제는 병원에 오시는 환자들에게 '이미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이야기한다. 자주 오시는 분들에게도 그렇다. 

"환자분, 따뜻한 찜질 20분 정도 하시고 기계치료할 겁니다. 뜨거우시거나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서로에게 온기를 주는 사람이 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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