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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May 13. 2022

병원에는 왜 진상이 많을까?

다양한 진상을 만날 수 있는 곳

출근하니 환자 대기실이 폭풍전야다.

병원 근처에 살면서 온 동네에 간섭을 다하는 할머니 한 분은 욕쟁이다.

치료실 칸막이 너머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벽을 사이에 두고 옆에서 흔들림이 감지되면 "내를 침대에서 떨어뜨리려고 저렇게 움직인다"며 역정을 낸다.

항상 일행과 함께 병원 오픈런하시는 어머님들이 진료시간 전이라 오손도손 자판기 커피 한잔 하시며 이야기 나누는 걸 보고 시끄럽다며(그냥 대화 수준인걸) 욕쟁이 할머니는 욕을 퍼부었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는 성격의 어머님들이 아니었다. 같이 욕을 하기 시작한다. (온라인이라 그 욕을 찰지게 표현을 못하는 게 참 아쉬울 뿐이다.)


그 욕쟁이 할머니는 항상 성격도 급하다. 진료시간 전인데도 "원장 놀면서 뭐하노, 빨리 진료 안 봐주고!"라며 화를 내고, 치료실에 오실 때 오늘은 어디 치료하실 건지 물어보면 "허리!" 아니면 "목 할끼다!"라고 화를 내신다. 전기치료가 끝나면 끝나는 소리가 나자마자 "아가! 끝났다 얼른 빼라, 뭐하노!"라고 한다. 80세가 넘었다고 하는데 모르긴 몰라도 한평생 그렇게 살았지 싶다. 그 할머니 집 바로 옆에 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 이유도 그 병원이랑 싸워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오늘은 친구들도 잔뜩 화가 많이 났다. 혼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단톡방이 불이 난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말했더니 "내가 잘한다고 칭찬해줬드만, 이제는 내한테 소리를 질러?! 싸가지가 없노!"라는 말을 들었단다. 정말 억울할 뿐이다. 잘 안 들리면서 보청기는 안 하시는 분들이다. 아무래도 보청기가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렇다고는 알고 있는데, 병원에서 기본적인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을 너희가 알아서 잘 해라는 식이다. 너무 막무가내다.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무런 말도 안 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진료실에서도 대화가 안  원장님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게 들릴 정도였다. 핫팩을 깔아주고 "아버님 여기 누우세요!"를 3~4번째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저승사자 같은 눈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그 할아버지 왈 "자꾸 소리 지르고 있노! 기분 나쁘게!" 어이가 없다 정말. 아직도 그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누워서 옆 방에 있는 다른 환자가 기침을 좀 한다고 다시 호출을 하더니 "저런 사람을 병원에 들여보내고 있노! 기침을 하고 있잖아!"란다. 본인은 꼬질꼬질해진 비말 마스크 두 개나 쓰고 있으면서. "아버님, 갑자기 사레들리신걸 우짭니까. 저분이 들어오실 때부터 기침하신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그 기침하신 환자분이 미안해하신다. "어디 가서 기침도 못하겠네"라고 하시면서.


얼마 전 처음 온 환자는 기계가 마음에 안 든다며 15분 중 13분이나 해놓고 다른 기계로 바꿔오라고 난리였다. 마침 환자가 많지 않은 시간이고 정말 말 안 통하는 사람이라 실장님이 그냥 다른 기계로 10분을 해주고 보냈다. 그 사람은 진료실에서도 다른 병원에서 처방받는다는 우울증 약을 여기서도 처방해달라고 떼를 썼다고.


그 외에도 치료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 막무가내인 남자가 진료실 침대에 신발 신고 그대로 올라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아, 역시 제 성격 개 못 준다'는 말도 생각나고, 우리가 알려준 대로 안 하고 자기 맘대로 하다가 파라핀을 머리부터 뒤집어쓴 아저씨를 보면서 '파라핀 덮어쓸만하네'라는 생각도 든다.


유난히도 다정한 커플들은 무조건 불륜이 많고, 꼭 그런 사람들이 병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신기하다.(탈의를 하면서 치료해야 하는데도 무조건 같은 방에 넣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부들은 거의 따로 치료받아도 그만이다.)


올 때마다 병원 구석구석 간섭을 다하는 할머니도 있고(청소를 하는 거냐, 마는 거냐, 유니폼을 왜 그런 색깔로 입었느냐, 너는 결혼을 했느냐, 왜 아이가 없느냐, 이 건물 주인은 누구냐 등등)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입에 지퍼를 달아주고 싶다.



항상 병원은 아픈 사람이 오는 곳이다. 몸이 오랫동안 아프다 보면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일일이 보듬어 줄 수 없는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환자는 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치료사로, 치료사는 갑자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환자로 서로가 이해되기도 한다. 내가 돈을 내고 이용하는 거니 당연히 너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치료사에게 안하무인으로 다가오고, 그런 환자에게 갑질을 당하는 느낌을 받는 치료사는 또 한 번 이 일에 회의를 느낀다.


대학을 선택할 때 누군가가 그저 '취업이 잘 되는 학과'라고만 소개하지 말고, '환자를 대하는 박애정신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해줬다면 좀 더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에 일곱이 좋은 환자인데, 꼭 한 두 명 마음을 힘들게 하는 진상들이 오는 날은 아직도 잔상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이 40이 넘은 지금 남아있는 동기들이 몇 없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다른 직업에도 진상이 많다지만 불특정 다수의 진상이 많은 병원은 그중에 상위에 들어가지 않을까. 암 환자를 치료하는 방사선실에 일하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보통 병원에서 진상들 오면 '얼른 나아서 안 오면 좋겠다'이런 생각하잖아? 우리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얼른 돌아가셔서 안 오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야."


아, 병원은 크고 작든, 과가 어디든 진상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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