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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Sep 22. 2022

D-4 퇴사 준비 일기 / 이별 인사

환자들의 눈물바다

어지간한 곳에선 우리 병원의 폐업 소식이 다 전해진 모양이다.

오시는 분들마다 '이제 어쩌냐, 우리는 어느 병원으로 가야 되나'라고 물으신다.

"아이고 아가씨들도 다 좋고 친절한데 이제 오데갈끼고?"라고 묻는 분들도 계신다.

저희도 좀 쉬다가요,라고 말하면

'그래 쉬다가 또 좋은데 있으면 들가고 그래야지' 덕담을 해주신다.


이 건물에서 20년 가까이 하셨고, 다른 동네에서도 20년 가까이 하셔서

원장님을 따라다닌 환자들도 많다.

지난번에도 그랬듯, 또 한 두해 쉬고

다시 이곳에서 병원을 시작해주길 바라는 환자분들도 있다.


평소 성격이 쎄 보이는 어머님 한 분은 오실 때마다 눈물바람이다.

우리 손을 꼭 잡으시고

'내가 얼마나 서운한지 모른다'라고 하신다.

저분이 이렇게나 여리셨던가 잠시 놀라지만,

정이 많이 들어서 그렇다고 하시니 이해도 된다.


마지막 치료를 받고 나가시는 길에

연세가 많은 신 분들도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그동안 치료 잘 받았습니다. 아가씨들 수고 많았어요."

그분들 눈에는 우리가 아직 어린아이일 텐데,

수고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울컥한다.


오래된 서류를 파기하기 위해서 처리하시는 분이 오셨다.

책상 주변을 꽉꽉 채웠던 서류들을 모두 큰 자루에 담아 가셨다.

텅 비어버린 책장을 보니 떠난다는 게,

정리한다는 게 실감이 간다.

다 비어버린 책장

또 그런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짓는 어머님들도 계셨다.

"아이고 진짜로 다 정리하네......"


오후에는 선물이 하나 들어왔다.

여기서 40분 넘게 가면 있는 시골의 수녀원에서 보낸 선물이다.

예전에 있던 곳에서부터 원장님은 그 수녀원에서 오시는 수녀님들께 진료비를 받지 않으셨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잼이나 쿠키 등의 식품을 만드는 곳이라 수녀님들이 안 아픈 데가 없는 것 같았다.

수녀님들의 손이 꼭 농부의 손 같았으니 말이다.

항상 우리에게 '자매님~'하고 부르시던 수녀님들이

직접 손 편지를 써서 주셨다.

평소에도 직원들 몫까지 잼이며 쿠키며, 비누 등을 챙겨주셨는데,

마지막까지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가셨다.

수녀님들의 손 편지와 선물

근처 카페에 결제를 해놓고 커피 마시라고 하셨던 말 많고 착한 아저씨 환자,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 주셨던 어머님들,

항상 커피 3잔만 사 와서 나눠먹으라고 주시는 주고도 욕먹는 아주머니,

딸이 사업한다고 마스크팩을 많이 나눠주신 어머님,

오실 때마다 '윌' 요구르트를 사 오시는 어머님,

가끔 의령에서 오셔서 망개떡을 한 박스씩 사 오시는 어머님(일명 망개떡 여사님)

'자, 이거 너거들 좋아하제?'라며 근처 시장에서 꽈배기 사 오신 아버님,

오실 때마다 파리바게뜨에서 아이스크림 사 오시던 점잖은 사장님,

또 옆 동네 뚜레쥬르 빵을 항상 가져오시는 뚜레쥬르 사장님,

여름이면 수박을, 샤인 머스켓을,

가을이면 단감을, 겨울에는 붕어빵을 주시던 많은 분들.


종종 기억날 것 같다.


"안녕히 가세요, 건강하시고요~!!"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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