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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Apr 09. 2023

엄마의 동피랑

통영 나들이

올해 진해 군항제는 일주일 빨리 열렸다. 3월 날씨가 이렇게 따뜻했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기온은 올랐고, 순서를 지켜가며 피어났던 꽃들은 뭐가 그리도 급한지 연신 꽃망울을 터뜨렸다.


코로나로 인해 쉬어갔던 군항제가 다시 풀렸고, 마스크도 해제되었다. 사람들은 일찍 온 꽃놀이를 누구보다 만끽하기 위해 꽃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항상 사람이 넘쳐나는 진해에 다시는 가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지만, 막상 가보면 다른 곳보다 벚꽃이 더 크고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다. '역시 벚꽃은 진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벚꽃을 보러 가면서 갑자기 미뤄둔 엄마와의 여행이 생각나 전화를 했다.



재작년 엄마와의 포항여행을 뒤로 또 한 번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했는데, 코로나가 걸렸는지 어떤 이유 때문에 여행을 취소해야 했다. 그때 엄마는 '기대했는데 서운하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걸려 계속 가야지, 가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또 49제가 끝나기까지 기다려서 봄이 된 것이다.



지난번 계획했던 곳은 통영 봉수골이다. 미술관과 작은 책방이 있고, 절이 있고 찜집이 많아서 어른과 함께 가기 좋다는 추천을 받았던 곳이다. 우연히 진해에 가는 그날, 주말 이틀 동안 봉수골 벚꽃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얼른 엄마에게 전화했고, 일요일에 다녀오기로 했다.


통영 봉수골


여기서 통영까지는 약 1시간이 조금 넘는다. 봉수골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통영이 진해보다 따뜻한지 벚꽃은 벌써 떨어지는 중이었다. 폐가 좋지 못한 엄마는 그나마 완만한 경사라서 걷기도 좋다고 하셨다. 봉수골에서 미술관까지 다 보고 나서 카페를 찾아 동피랑으로 향했다.



동피랑 언덕까지 차로 올라가서 인근 카페로 향했다. 엄마는 동피랑까지 올라온 것이 처음이라고 하셨다. 항상 근처까지 와도 너무 가팔라서 걸어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차를 갖고 오더라도 주차가 서툴러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동피랑이었다.



엄마가 운전을 한 것은 오래됐다. 하지만 항상 갓길 주차는 힘들어하셨고, 특히나 예전 차가 수동이라 가파른 길은 잘 다니지 않으셨다. 그런 이유로 동피랑 근처까지 왔지만 높은 곳에서 통영을 볼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 약간은 충격이었다.



아,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엄마에게 주어진 기회는 제한되어 있었구나.



통영은 가까운 곳이라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동피랑은 대표 관광지여서 안 가본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도 친구분들과 나들이를 잘 다니셔서 그 정도는 다 가봤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기도 했고.



엄마는 동피랑의 날개 벽화 앞에서 사진도 찍고, 전망대에서 통영 풍경을 배경으로도 사진을 찍었다. 엄마에게는 그날이 동피랑에서의 첫 번째 시간이었던 셈이다.



벚꽃은 이제 다 떨어졌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새 잎이 파릇파릇 입혀진다.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장소에서 엄마의 동피랑을 함께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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