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맥심
04년 입사한 병원에서는 그 치료실만의 문화가 있었다.
오전 오픈시간 전, 오후 오픈시간 전
6명의 직원 누군가가 탄 커피를 마시고 일을 시작한다는 것.
처음 입사했을 때는 그 누군가가 타준 커피를 선배님들께 한 잔씩 배달하고
나도 마셨지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나도 커피를 타야만 했다.
노란 믹스커피의 대명사인 맥심믹스커피가 나온 지 꽤 됐지만,
이상하게 여기에서는 커피 따로, 프림 따로, 설탕을 따로 사서 유리병에 담아두고
티스푼으로 각자의 스타일대로 타서 마셨다.
누군가는 설탕을 하나만, 누군가는 커피를 깎아서 넣는 등
21세기에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이라며 과거로 돌아간 듯한 광경에 놀란 것도 잠시,
곧 내가 그렇게 커피를 타야 한다는 사실이 손 떨리게 만들었다.
커피를 나를 때는 '신양'이었지만,
커피를 주체적으로 제조하는 입장에서는 '신마담'이 되어야 했다.
실장님은 내게 '신마담, 커피 좀 타보지'라고 순번을 정해줬고
나는 옆에서 선배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티스푼에 커피를 너무 봉긋하게 담지 않고 살짝 깎아서 담는 기술을 연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커피를 타는 일에 진절머리가 났다.
아니, 노란 믹스커피 한 봉지씩 타서 마시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지가 알아서 타먹으면 되는 거지,
이건 무슨 다방도 아니고 이게 뭐고.
정성스럽게 깎아서 한 스푼씩 담던 속도를 올렸다.
그냥 막 커피 2, 프림 2, 설탕 2 스푼을 커피잔에 털어 넣었다.
물도 대충 맞춰 넣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실장님은 그날 내가 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바로 싱크대에 부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신마담'에서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