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푸드트럭 페스티벌
성룡과 홍금보 주연의 쾌찬차(快餐車: Wheels On Meals, 1984)라는 홍콩영화가 있다. 내가 태어날 무렵의 오래된 영화임에도 매력적인 이유는 홍콩영화인데 배경이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 전역이라는 점이다. 당시 워낙 유명한 배우들이라 홍콩 시내에서 촬영이 불가능해 스페인의 초대를 받아 현지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했다. 쾌찬(快餐)은 패스트푸드를 뜻해 제목을 풀어쓰면 패스트푸드 트럭이 된다. 당시의 앳띤 얼굴의 성룡과 원표, 날렵한 홍금보를 볼수 있으며 특히나 1979년 미스 스페인이었던 로라포너가 등장한다(꺅). 영화에 나오는 푸드트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을 이미 다 갖추고 있다. 심지어 요즘에도 구현이 어려운 자동으로 문이 여닫히는 등의 첨단 기술도 탑재하고 있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이전부터 마차에서 음식을 팔던 형태로 시작해 자동차의 발전과 함께 해온 푸드트럭은 제법 역사가 깊다. 영화 아메리칸 쉐프에서와 같이 미국 문화의 아주 자연스러운 일부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는 Kogi BBQ나 Hallal guys, Kwik Meal 처럼 인기있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푸드트럭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차량허가 따로, 음식판매 허가 따로 받아야 하는데다 장소의 제한이 많다. 브라질도 실은 푸드트럭이 들어선지 얼마 안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부에서 지원하는 추세이며 그 정책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향이다. 우리의 경우 현장과 규정이 따로 움직이는 분위기라면 브라질은 제법 잘 정착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푸드트럭을 허가하는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비슷한데 이후의 운영은 좀 다르다.
평소에는 공영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의 일부를 주말이면 푸드트럭 구역으로 바꿔주는 가변형 행사장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서울 등의 대도시처럼 리우 데 자네이루의 시내도 언제나 차량으로 붐비지만, 주말에는 비는 공간이 생기기 마련. 공원 주변이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푸드트럭이 자주 눈에 띄었다.
우리는 미리 허가를 받은 장소가 없어서 우선 장소부터 찾아야 했다. 올림픽 경기장 주변은 차량의 통제가 심해 아무래도 어려움이 많았다. 마침 리우 시내에서 열리는 푸드트럭 페스티벌을 소개받았고, 늦었지만 자리를 얻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어렵사리 자리를 구해 간 곳은 Tijuca 지역의 한 공원. 작은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양한 푸드트럭과 공연으로 제법 근사한 행사를 만들어 두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사람들부터 온 가족이 구경나온 사람들까지. 특히나 '포켓몬 고'가 갑자기 인기를 얻고 있는 때라 학생들도 많았다. 마침 그 공원은 아이템이 잘 나오기로 소문난 곳이라 휴대전화를 들고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잠시 열풍이기에 해봤지만 피카츄를 잡고 나니 금세 재미가 없어졌다. 어쨌든 덕분에 여러 사람들에게 우리 음식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알릴 수 있었다.
3일 동안의 행사를 위해 우리가 준비한 음식은 불고기 버거, 김치전, 제육볶음, 잡채 등 평소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 중에서 거부감이 덜 한 음식들이다. 다른 푸드트럭들은 판매를 목적으로 한 햄버거나 핫도그 등이 많았다. 이상하게도 딱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를 선호했다. 제육볶음에 들어간 고기가 무어냐고 물었고, 돼지고기라 했더니 고기는 빼고 달란다.
아냐. 그건 제육볶음이 아니라구!
사람들은 우리의 우려와 달리 친절하고 호기심도 많았다. 행사를 준비하다 힘 쓸 일이 생기면 누구든 옆에서 도와주고, 관심 가져주었다. 마치 우리식으로 개업집 떡 돌리듯이 우리가 음식을 들고 이곳저곳 나눠주면, 언제든 자기네 트럭에 와서 먹으라며 미소로 답해주는 상인들, 햄버거를 가져다주거나 맥주를 건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히려 이제는 우리 도시에서 사라져버린 그런 인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축제는 저녁까지 계속되어 흥을 돋우고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멋진 시간이 되었다. 포켓몬 헌터들도 여전히 주변을 배회하며 두 번, 세 번 음식을 받아다 먹었다. 한국의 방송국에서도 올림픽의 이색 볼거리로 취재해가기도 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위원회 부위원장님도 응원을 오셨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우리는 올림픽 체조경기장 옆에서 푸드트럭 행사를 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아. 체조경기장이라니. 손연재 선수 머리 꼬랑지라도 보면 얼마나 좋을까. 알리야 무스타피나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좋겠다. 온갖 상상을 하며 체조경기장이 있는 바하지구(Barra)로 향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올림픽 경기가 치러지는 구역은 차량 통행이 엄격히 통제되는데, 우리는 행사를 하는 것만 허락받았지 차량 통행에 대한 허가증이 없었다. 우리 차를 막은 통제요원은 너희는 들어가도 되지만 차는 갈 수 없단다. 이게 말이 되냐구. 우리는 차가 있어야 행사를 할 수 있는데.
결국. 패티 없는 햄버거를 내놓을 수 없듯이 체조 경기장의 꿈은 접고 돌아서야 했다.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이후 리우의 다른 공원에서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열린 행사는 금요일 점심부터 인기가 많기에 주말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주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의도 빌딩 숲에 주말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듯 리우 시내의 중심가도 사람이 확 줄었다. 엎친데 덮친다고 일요일에는 비까지 내려 상인들은 개점 휴업 상태였다. 우리야 판매 목적이 아니지만 그들은 매상에 큰 차질을 빚었을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맥주를 건네며 흥을 돋우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래.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걸 굳이 마음써가며 한탄하기에는 우리 삶이 참 짧다. 늘 흥행이던 우리 행사도 한 번 쯤은 쉬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