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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Jan 26. 2017

남쪽의 길 Ruta del Sur _#4

로드트립 8천 킬로미터

여행이라면 정말 많이도 했다. 그치만 로드트립에 대한 로망은 늘 있어왔다. 자동차를 타고 원하는 곳을 마음껏 다니고,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춰 사진을 찍는 그런 여행 말이다. 여행을 하면서 이따금 차를 빌려 여행하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대륙을 횡단하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 번 오기도 힘든 남미 아닌가.

원래 계획은 이랬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올림픽일정을 마친 뒤, 칠레 산티아고까지 2주 동안 곳곳을 다니며 일을 끝낸 다음, 남은 2주 동안 남미의 동부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오면서 여행을 즐기는 것. 대륙을 따라 서쪽 끝까지 간 뒤, 다시 동부 해안을 따라 돌아오기로 했다. 홍보활동도 산티아고에서 모두 끝나므로 우리는 자유다.

상파울루에서 이틀을 달리면 이과수 폭포에 도착한다. 두번째 오는 이과수지만 그 장엄함과 감동은 여전했다. 멋지고 즐거운 로드트립은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계획은 출발과 동시에 삐걱거렸다. 타이어가 터지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라는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과수 폭포를 지나 브라질-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은 다음부터 하루에 한 두 번씩 검문에 붙잡혔다. 왜 자꾸 우리만 잡는거냐며 투덜거렸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당연했다. 브라질 번호판을 단 차를 아르헨티나에서, 그것도 동양인들이 몰고 있고, 3톤에 달하는 커다란 푸드트럭까지 있으니 의심 받을 수밖에.


이때만 해도 타이어 정도는 귀여운 일인 줄 몰랐지.

검문에 잡히면 온갖 이상한 이유로 벌금을 요구당했다. 전조등을 켰지만 너무 미등을 켰다는 둥(많은 나라에서 낮에도 전조등을 켜도록 하고 있다), 차에 반사 띠를 앞뒤만 붙이고 옆에는 안 붙였다는 둥, 자동차 규정 속도 스티커가 없다는 등등의 이유로 계속 벌금을 내야 했다. 심지어 벌금의 액수를 놓고 흥정을 하는 일도 있었다.

"여기서 내면 500 페소인데, 시청가서 내면 1000페소야. 어쩔래?"

이게 무슨 말이여방구여? 그렇지만 꼼짝없이 벌금을 내야 했다.


나중에 아르헨티나를 떠날 때, 우리에게 현금이 750페소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고는 1300페소이던 벌금을 750페소로 깎아주었다. 강도를 만난것도 아닌데 가진 돈 전부를 탈탈 털렸다.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 -진작부터 없다고 할 걸- 남미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우리같은 외지인들에겐 너무 불리한 일이 많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행사를 마치고 다시 먼 길을 달려 말벡의 고장 멘도사에서 모처럼 하루 쉬는 날을 갖게 됐다. 마침 '살렌타인 Salentein’ 이라는 이름의 유명 와이너리가 80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해서 찾아가기로 했다. 보통은 투어를 예약하고 업체의 승합차를 타지만 우리에겐 차가 두 대나 있으니 직접 가기로 했다. 역시나 검문에 붙잡혔다. 평소대로 서류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했다. 푸드트럭은 숙소에 세워두고 SUV를 타고 나왔는데 서류에 문제가 있다면서 도난차량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 것.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우리가 그동안 활동했던 사진이며 브로셔 등등을 보여줘도 믿지를 않는다. 대사관에도 전화 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별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결국 차를 빼앗겼다.

이럴수가. 경찰에게 차를 뺏기다니.

사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푸드트럭은 정식 렌트업체에서 빌렸으니 문제가 없지만 SUV는 상파울루의 어느 여행사에서 빌린 것. 그런데 서류가 정식 서류와 형식이 달라 인정받지 못했다. 우리는 대행사를 통해 차를 받았으니 그동안 모르고 다녔던 것이다. 엎친데 덮친다고 이과수에서 국경을 넘을때 푸드 트럭은 여러가지로 조사받고 서류도 받았는데, SUV는 워낙 흔하게 오가는 차량이라 우리 여권만 보여주고 통과했다. 국경에도, 우리에게도 그곳을 지나온 증빙서류가 없다. 허술한 시스템 탓에 확인도 당연히 되지 않고 꼼짝없이 무적(無籍)차량으로 몰리게 됐다.

어이가 없어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연행할거라는 소리에 놀라 차에서 내렸다. 경찰 수송 버스를 타고 어딘지도 모르는 외곽의 버스 터미널에 버려졌다.

그 뒤로 매일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브라질에 있는 원래의 주인이 와서 증명하고 찾아가란다. 그 과정에서 일주일을 허비했다. 홍보활동은 끝까지 마쳐야 했으므로 수동차량 운전이 가능한 둘은 푸드트럭을 타고, 남은 세 명은 국제 버스를 타고 안데스를 넘어 마지막 목적지인 칠레 산티아고로 갔다.


산티아고에서의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두 개의 대학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행사를 치렀다.

무사히 일은 마쳤는데 이번엔 트럭이 말썽이었다. 먼 길을 달리고 험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오느라 무리했는지 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차를 고치는 데 또 이틀을 쓰고 나니 남은 날은 고작 6일. 남미 해안 도로 일주를 즐기는 건 이미 포기했고, 제 날짜에 차를 반납할 수 있을지, 귀국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

차를 고치고는 둘이서 번갈아가며 매일 600~700km를 운전했다. 끔찍했다. 서울 부산 거리가 420km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대전까지 가는 거리를 매일 운전한 셈. 아침 7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간단한 아침을 먹은 뒤, 내도록 운전하고, 또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매일 밤 8시까지 운전만 했다. 그렇게 총 거리 8,200km를 이동했다. 독일에서 한국까지의 비행거리와 맞먹는다. 운전이라면 전문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험난한 길을 건너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차도 없이 팀이 따로따로 떨어져 가려니 마음도 무거웠다. 로드트립의 꿈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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