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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Sep 23. 2017

D-36. 타고난 복

노력없이 얻은 행운 뒤의 씁쓸함

1.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에 더 주목하게 된다.

아무래도 칭찬보다는 쓴소리가 더 기억에 남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진 건 당연한 거고, 못 가진 게 더 커보이기 때문일까.


2.

최근 만난 친구 중에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어릴 때나 학창 시절에 친구들로부터 외모에 대한 놀림을 받은 게 화근이 되었나보다.

내가 보기에는 스타일이 멋지고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는 어떻게 해도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새삼 타고난 복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 외모에 대한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작년 가을 <외모에 대하여>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의 결론은 '세상은 예쁜 사람이 살기에 너무 유리하다'로 귀결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 외모에 큰 불만은 없다.

큰 불만이 없기 때문에 큰 노력도 하지 않는다.

결혼이 36일 남은 신부이지만, 아직도 먹고 싶은 것 대부분을 먹으면서 과감한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 않다.

내가 원래 말랐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너무 공개적인 장소라 내 몸무게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몸무게는... 어느덧 통통을 넘어 뚱뚱에 가까워지고 있다.


3.

재밌는 것은, 실제로 예쁜 것과 상관없이, 내가 예쁘다/나는 못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외모가 중요한 직업을 가지고 싶거나(아나운서, 승무원 등) 뛰어난 외모를 이용해 이성을 매혹하고 싶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럴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뛰어난 외모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외모를 애정을 가지고 더없이 주관적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게 훨씬 행복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 남들이 속으로 뭐라고 생각하든 말이다.


4.

웃긴 것은, 나는 내 외모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사고하기 위해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어릴 때부터 나는 외모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새삼 억울해졌다.

쉽게 우울해지는 내 인지특성을 고치기 위해 아직도 약을 먹고 큰 돈 들여 심리상담까지 받았다.

대인관계에 대한 스트레스와 완벽주의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데, 외모에 대한 자존감은 기본 아이템처럼 장착되어 있다.


결국 노력보다 처음부터 그렇게 타고나는 게 중요한걸까?


5.

타고난 복에 감사하며 사느냐, 아니면 내가 노력해도 가지지 못하는 복을 원망하며 사느냐-

결국은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는 세상이란 원래 불공평한 것이라는 걸 알 때도 되었는데,

노력의 배신을 목격하는 건 아직도 참 씁쓸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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