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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pr 25. 2016

결심에 대한 이야기

소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1. 

이 책의 날개에는 작가인 하야마 아마리(필명)에 대한 소개를 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한다.


이 책의 내용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2010년 '일본에 더 큰 감동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라디오 방송국인 니폰방송과 출판사 린다 퍼블리셔스가 주최한 '제1회 일본감동대상' 대상 수상작이다. 


제목이 워낙 강렬하긴 하지만, 책날개만 읽어도 주인공이 죽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감동대상'의 대상에 뽑힐 리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이 결말은 책날개에 이미 나와있다. 


그러나 1년 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인생 최대의 모험을 한 결과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고, 멋진 미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라고 책날개에서 이미 개괄적인 책 내용을 모두 요약해준다.


뭐, 사실 반전소설이 아니고서야 결말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도대체 뭐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스물아홉 살의 생일에 죽을 결심을 하고, 또 어떤 모험을 한 결과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었나.. 따라가 보았다. 


2. 

주인공은 안일하게 인생을 살다 인생에 뒤통수를 맞게 된다. 

도쿄대에 다니는 남자친구와의 결혼만 믿고 쉽게 정직원이었던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남자친구에게 청혼은커녕 이별 통보를 받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신다. 퇴원 후 집에서 치료하는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을 보는 게 우울해 바쁜 회사 일을 핑계로 독립했고 그렇게 3~4년간 파견사원(일정 기간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니는 사원. 우리나라의 계약직 사원과 비슷한데, 중간에 회사와 직원을 알선해주는 파견회사가 껴있다는 점이 좀 다른 듯)으로 살면서 우울한 29살을 맞이하게 된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무서웠다. 죽는 게 무서웠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무섭다고, 더는 못 견디겠다며 도망치고 싶어 하면서도 나에겐 죽을 용기조차 없었다.
(42p) 


3. 

자살 시도 실패 후 "공기 빠진 풍선처럼 널브러져" 있다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함을 보고 낯선 '욕망'이 생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좋다, 단 한 번이라도 저 꿈같은 세상에서 손톱만큼의 미련도 남김없이 남은 생을 호화롭게 살아 보고 싶다. 단 하루라도!' 
(44-45p)


이 충동적 욕망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서서히 남은 삶의 목표가 되어간다.

'호화로운 마지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건 돈이었다. 그것도 단시간에 많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낮에는 파견사원 일을 계속하면서 밤에는 호스티스, 그리고 짬짬이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돈을 모아간다. 처음에는 돈을 위해 열심히 살던 그녀였지만, 열심히 살기 시작하면서 인간관계에도, 뚱뚱했던 외모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결국 계획대로 라스베이거스에 가지만 '새로운 시작'의 상징을 찾으며 생명력 가득 찬 서른을 시작한다.


4. 

-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자

- 가진 게 없다고 할 수 있는 것까지 없는 건 아니다

- 단 한 걸음만 내디뎌도 두려움은 사라진다

- 뜻밖의 변화를 불러오는 데드라인

- 꿈을 가로막는 것은 시련이 아니라 안정이다


위 문장들은 책 목차의 일부를 옮겨 적은 것이다. 이 책의 줄거리도 그러하지만, 목차는 더욱더 적나라하게 이 책이 소설의 탈을 쓴 자기계발서라는 걸 외치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이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니('아마리'는 작가의 필명이자, 주인공이 호스티스로 일하며 쓰는 예명이다; '여분'이라는 뜻) 물론 감동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말이지 1년 동안 미친 듯이 열심히 사는 주인공을 보면 '아니 도대체 이런 양반이 그동안은 왜 그렇게 살았데???'의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5.

주인공을 하루에 4시간씩 자는 살인적 스케줄을 버티게 하고,  

70킬로그램이 넘는 몸으로 긴자의 호스티스 생활을 시작하고,  

몇십 명의 학생들 앞에서 누드모델로 옷을 벗는 용기를 준 원동력은 뭐였을까. 


적막한 공간 속에 멈춘 듯 포즈를 취한 상태에서 나는 사각사각, 학생들의 연필 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절박함, 인생의 막판에 이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힘이 솟는 거구나.' 

(96p)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절박하게 만든 걸까.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화려한 마지막'이라는 욕망은 어느 순간 그녀 인생의 절대적인 목표가 되었고, 모든 힘 - 그 전에는 없던 힘까지 - 을 모아서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죽음 앞에서 발견한 목표, 그것도 죽음을 전제로 한 목표였지만

그 목표를 향한 모든 발자국은 결국은 삶을 향한 것이었다.


6.

이 소설은 진부하다.

서른한 살이 되어 "세상 물정 어두운 엄마까지도 이름을 알고 있는 글로벌 회사에서 정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된 결말을 보니 더욱 그렇다.(아니면 그저 소설 속 주인공이라도 남이 잘된 것을 보고 배가 아픈 것일까.)


이 책의 제목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에서 가장 눈길을 잡아 끄는 건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메시지의 핵심은 결심에 방점을 찍는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마지막 6일이라는 황당하지만 욕망, 그 욕망에서 진화한 분명한 목표, 그 목표를 뒷받침하는 철저한 계획과 실행력, 모든 것을 마무리했을 때 따라주었던 작은 까지...

모든 건 결심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처음부터 철저히 삶을 향한 결심이었다.  


진부하지만, 가장 멋지고 대단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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