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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18. 2017

D-14. 좋은 치료자의 조건

내가 받은 최고의 도움

1.

그동안 우울증을 앓으면서 4곳의 정신과를 가봤고, 1곳에서 무료상담을, 2곳에서 유료상담을 받아보았다.

하지만 이는 전문가에게 받은 치료만을 세본 것이다.

내가 받은 최고의 도움은 비전문가에게 받은 것이었다.


2.

2013년 말, 첫번째 우울증이 나를 덮쳤고 나는 겨우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12월에 깊은 잠수를 한다.

1월 입사 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려던 비행기표를 비싼 수수료를 물면서 취소하고, 전화기도 아예 꺼버리고, 방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무서워했다.

상태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은 채 1월 2일이 되었고, 나는 첫 직장에 입사했다.

그 전까지 4개월 반동안 인턴을 한 곳이라 낯익은 장소, 낯익은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내가 낯설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수가 줄었고, 표정은 어두웠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이 때는 우울증을 인정하는 것 자체도 너무 두렵고,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회사 누군가에게 말하면 바로 해고되는 줄 알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를 도와준 팀장님이 한 분 있었다.

그 분은 내가 "강도 맞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게 의욕이든, 에너지든, 긍정적 생각이든 나는 뭔가를 강도 맞았다고.


3.

그리고 뭔가를 제안하셨다.

책을 같이 한 권 읽자고. 대신 매일 조금씩 읽으면서 이에 대해 그림을 그리자고. 그리고 그걸 서로 공유하자고.


나는 내가 이걸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못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이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며칠만 해도 괜찮다고.

그래도 자기는 나한테 막 편한 사이는 아니니까 의무감으로라도 할거라고.

그리고 퇴근 후 같이 서점에 들러서 책을 샀다.


그 때 선택한 책은 스캇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생은 고통이다"라고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4.

하루도 버거울 줄 알았던 이 기묘한 '함께쓰는 그림일기'는 약 한 달을 꼬박 지속했다.

나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리지 못하지만, 내 방식대로 그 날 읽은 부분을 표현했다.

생각나는 감정을 그리기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기도 했다.


책이 좋기도 했지만, 매일 매일 이렇게 짧은 회고 행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 행동을 지속한다는 것 자체도 큰 성취감을 주었다.


그 한 달 덕분에 난 첫번째 우울증을 잘 넘길 수 있었다.


5.

팀장님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는 좋은 치료자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내담자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자기다운 성장을 바랄 것

2) 하지만 그 애정이 부모님들이 흔히 행하시는 과한 개입이 되지는 않을 것

3) 내담자가 신뢰할 수 있고, 내담자가 의지가 필요한 행동을 하는 데 코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4) 내담자의 성장을 자신의 성장으로 연결지을 수 있을 것

5) 장기적이고 정기적으로 내담자와 관계를 쌓을 수 있을 것


6.

치료법보다는 치료사를 잘 선택하는 게 더 중요하다. 당신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체계 없이 아무렇게나 잡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반면 당신이 마음을 열 수 없는 상대라면 아무리 치료 기술이 뛰어나고 자격증이 많아도 도움이 안 된다. 중요한 건 이해력과 통찰력이며 그 통찰력이 전달되는 형식이나 통찰력의 유형은 부차적인 것이다. 1979년에 이루어진 한 중요한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특정한 기준들만 만족되면, 즉 치료사와 환자가 신뢰 속에서 협조하고 치료사가 치료 기술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만 하다면 어떤 형태의 치료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지닌 영문학과 교수들을 치료사로 가장시켜 대조군 실험을 실시한 결과 평균적으로 영문학과 교수들도 전문 치료사 못지않게 환자들에게 도움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 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166-167p

난 모든 사람들이 치료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모두를 위한 치료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님과 형제, 친구, 동료 등이 고통받고 있다면 그들을 위한 치료자가 되어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를 위한 치료자도 될 수 있다.


귀찮고 힘든 일이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생각보다 많이 투자해야 한다.

공부도 필요하고, 선을 넘어 개입하고 싶은 마음도 억눌러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최고의 치료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세상 누구도 아닌 내게만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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