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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19. 2017

D-12. 남의 인생을 파괴하는 사람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1.

사람을 쉽게 좋아하지도 않지만, 쉽게 싫어하지도 않는다.

라고 쓰고 생각을 더듬어보니, 잘 모르겠다.

싫어했던 사람들 얼굴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걸 보니.


2.

10대 때는 감정을 쉽게 제어하지도 못하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싫어해도 그 사람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붙어있다고 감정이 풀리기보다는 오히려 오해만 더 쌓여갔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생 때는 꽤나 자유로웠다.

혹시나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을 꼭 만나야 하는 빈도는 매우 낮았다.


직장에 다니고서는 10대 시절이 조금 반복되긴 했지만, 밀착된 느낌이 훨씬 덜해서 좋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건 참 괴로운 일이다.


3.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반 정도 읽었다.

처음에는 몰입이 잘 안되어서 한동안 손을 놨었는데, 읽다 보니 꽤 재미있다.

주인공과 나오코의 관계도 흥미로웠지만, 나오코가 요양원에서 알게 된 레이코 씨의 과거 얘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레이코는 전문적인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다. 콩쿠르에서 우승한 적도 있고, 음대에선 줄곧 일등을 하며 순탄하게 피아니스트로 향하는 삶을 지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왼쪽 새끼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피아노를 멈추게 된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를 지적하며 잠시 쉬라고 하지만, 쉬고 있는 동안 레이코는 자신의 삶에서 피아노를 빼면 남는게 없을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손가락을 다쳐선 안 된다고 하기에 부엌일 한번 거든 적이 없는 데다 주위에선 피아노 잘 친다는 것만 칭찬해주었는데, 그렇게 자라온 아이한테서 피아노를 빼봐, 뭐가 남겠어? 그것으로 펑! 머리 나사가 어디론지 날아가버렸어. 머릿속이 뒤엉키고 캄캄해지고. - 177페이지


그녀는 자신의 무너짐을 펑!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가까스로 음대를 졸업하고 피아노 선생님이 되지만 자괴감과 주변의 시선에 괴로워하다가 또 한 번의 펑!을 경험하고 입원하게 된다. 퇴원을 하고 얼마 뒤 자신의 피아노 제자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그의 남편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레이코를 온전히 품어주었다. 레이코에 대해 뒷조사를 한 부모님과 인연을 끊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둘은 행복했다. 결혼 후 2년만에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느라고 정신없지만 평범하면서 행복한 삶을 산다.

어느 날, 기묘한 일이 생기기 전까지.


어느 날 소름끼치게 예쁜 여자아이가 레이코의 피아노 제자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다. 레이코는 재능있고 머리도 좋은 아이를 가르치는 걸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무튼 남의 감정을 자극하고 동요시키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는 아이였어. 그리고 자기 스스로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되도록 교묘하고 유효적절하게 그 능력을 이용하려고 했지. 남을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하고, 동정하게 하고, 또 낙담하게도, 기뻐하게도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거야. 그것도 그저 자기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하게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는 거야. - 223페이지


이렇게 남의 감정을 조종하는 데 재주가 있던 여자아이는, 어느 날 레이코에게 성관계를 시도한다.(아이는 레즈비언이었다.) 레이코는 능수능란한 그 아이에게 농락당하다가 결국 뺨을 후려치면서 그만두게 한다.

레이코에게 버림받은 그 아이는 도리어 자신의 부모님을 비롯해 동네에 레이코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을 낸다. 이로 인해 레이코는 다시 펑!하며 나사가 풀리게 되고, 남편과 아이를 떠나 일반적인 삶을 포기한 채 요양원에서의 생활을 지속하게 된다.


4.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도, 그리고 요약하느라 옮겨쓰고 난 지금도, 난 화가 난다.

세상에는 분명 그 여자아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타고나길 정치적인 사람들.

머리가 지나치게 좋고, 남의 감정을 잘 휘두르고, 여론을 잘 조작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


물론 이런 사람들에게도 연민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건 병이니까.


죽을 때까지 그런 식으로 앓아야 하는 병 말이야. 그러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불쌍한 아이야. 나만 해도 만일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이 아이도 한 사람의 희생자이구나 하고. - 223-224페이지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불쌍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나 내 주변 가까운 사람이 피해를 받기 시작하면 불쌍하게 생각할 수가 없다.

남의 인생을 파괴하고, 눈물 흘리게 하는 사람들.

난 그 사람들 눈에서도 눈물이 좀 났으면 좋겠다. 피눈물이면 더 좋고.


5.

쓰다보니 이런 점에서 나의 상담자로서의 한계가 보인다.

다행히(?) 대부분은 피해자가 상담을 신청하지, 가해자는 뻔뻔하게 잘 살기 때문에 만날 일이 적을 수도 있겠지만.

청소년 상담의 경우에는 가해 학생도 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혹시나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그들이 그렇게 된 원인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 글의 모든 인용구는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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