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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20. 2017

D-10. 엄마와 밥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1.

"밥 먹었니"

"밥 먹어"


아마 자라면서 엄마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이지 않을까 싶다.


2.

가끔 엄마는 과하게 내가 먹는 것에 집착하신다.

방금도 집에 돌아온지 30분도 채 안 되었는데, 토마토와 호박즙을 가져다주셨다.

달걀을 먹을 거냐고 물어보셔서 안 먹는다고 했더니, 달걀을 먹어야 살이 빠진다고 하셨다.

나는 안 먹는게 살이 더 잘 빠진다고 대답해 드렸다.


3.

엄마는 특히 아침밥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밥, 반찬, 국 등이 있는 정식 상차림을 하시는 건 아니지만, 과일이나 떡, 주먹밥 등 먹을만한 것을 꼭 챙겨주신다.


그냥 얻어먹을 때는 내가 아침을 딱히 먹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취해보니, 아니었다.

아침에 정말 아무것도 안 먹고 물만 마시고 나가면, 참 배가 고팠다.


4.

우울증이 심해지면 식욕이 별로 없어진다.(과해질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자취할 때 빼고는 우울해도 참 잘 먹고 살았다.

엄마가 어떻게든 먹이셨기 때문이다.


5.

내가 밥먹는 게 뭐라고.

내가 한끼 안 먹거나 더 먹는다고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데, 엄마한테는 세상 큰 일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말라본 적은 없지만(사실 그래서는 아니다.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란 오빠는 평생 말랐기 때문에) 밥이 고픈 적도 없었다.


6.

엄마처럼 남자친구도 내가 밥을 먹는 것에 집착한다.

특히 우울한 날일수록, 다른 건 안해도 밥을 잘 먹으라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도 모르게, 밥 안 먹는 그에게, 툭하면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7.

밥은 엄마가 베푸는 가장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이다.


내가 엄마의 밥을 적극적으로 챙겨야 하는 시기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제발 더디게 왔으면, 하고 바라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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