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아는 분이 AI의 심리상담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셨다.
몇 가지 내 생각을 말씀드렸는데, 재밌는 것 같아 정리해본다.
2. AI 심리상담사의 장점
1) 익명성의 보장
- 심리상담 서점 오픈을 준비하면서, 무료 파일럿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9명의 내담자를 만났고, 지금까지 16회 상담을 진행했다. 매 회차마다 피드백 설문을 받았는데,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익명성 이슈였다.
- 나와 공통 인맥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 일부 내담자는 자신의 익명성이 지켜지는 것(=자신의 상담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을 표했다.
- 의사는 국가에서 관리하고 의료법의 적용을 받아 의사들은 환자의 비밀을 보장을 법적/윤리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반면 상담사는 윤리적 의무만 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AI 상담사는 일단 이런 면에서 사람보다 믿음직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 하지만 오히려 AI가 익명성에 더 취약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현존하는 AI는 모두 특정 회사의 제품이고, 와이파이 등 인터넷과의 연결이 필수다. 이는 즉 데이터가 어딘가 회사 서버에 저장된다는 것인데, 이 데이터가 얼마나 암호화돼서 철저하게 지켜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 24시간 대기 체제와 저비용
-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상담소가 회사 업무 시간인 9시-6시 즈음에 영업하는 경우가 많아 직장인들은 토요일이 아니면 지속해서 상담을 받기가 어렵다. 아마도 AI는 상담 횟수당 과금을 할 것 같지 않으니, 무료에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상담사라는 장점이 매우 클 것이다.
3) 충실한 기록과 분석력
- AI 상담사와의 대화 기록이 데이터로 남는 건 익명성 이슈에서는 약점이지만, 한편으로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 "상담에서 나눈 얘기들이 참 좋은데, 상담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게 아쉬워요"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내담자의 얘기를 열심히 기록하면서 듣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해석이 담긴 기록이라 이를 내담자에게 공유하지는 않는다. 부지런한 내담자라면 상담이 끝난 직후 열심히 기록할 수도 있겠지만, 상담사가 이를 절차화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내담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 AI 상담사가 대화 전문을 스크립트처럼 기록해 놓기만 해도 이는 내담자에게 가치 있는 일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대화에 대한 유의미한 분석이 이루어져 리포트가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3. AI 심리상담사의 한계
- 한계의 경우는 기술력에 따라 모든 것일 수도 있고,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영화 '허(HER)'에 나온 수준으로 AI가 똑똑하고, 매력적이라면 한계는 거의 없다.
- But, AI가 몇 년 뒤에도 여전히 아마존의 알렉사 수준으로 DB화 된 반응(질문과 이에 해당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AI가 인간 심리상담사를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고 본다.
- 처음에는 듣는 것은 AI가 더 잘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많은 사람들이 듣는 행위를 수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상담사의 듣기는 굉장히 적극적인 행동이다. 입은 거의 다물고 있지만, 귀와 눈, 몸짓 등을 이용해 온몸으로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반응한다. 아마존 에코나 SKT의 누구 역시 듣고 있을 때 불빛이 깜빡거리면서 어느 정도 살아있는 척을 하긴 하지만, 많이 부족하다.
- But, 최근 배송을 시작한 Jibo 실사용 영상을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몸체를 이리저리 움직이고(사실 좀 과한 면이 있다) 화면의 눈알도 데룩데룩 굴리는 걸 보면 '얘가 진짜 내 말을 듣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줄 것 같다.
- But, 아무리 지보라도 대화 수준은 1~2회의 핑퐁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일상 대화 정도는 하는 척할 수도 있다. 상담에서의 대화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내담자가 몇 달 전에 말했던 내용도 방금 말했던 내용과 연계해서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 알파고 수준을 보면 언젠가는 분명 AI가 인간의 데이터 프로세싱 능력을 따라잡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금의 수준으로는 요원해 보인다.
4. AI 심리 상담사와 관련된 아이디어들
1) 행동활성화 치료를 도와주는 AI
- 독서심리치료에서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생각했을 때, 치료 대상은 크게 내담자의 인지, 정서, 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심리상담을 인지치료에 기반을 두는데, 내담자가 부정적으로 또는 문제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패턴이 있어, 이 패턴을 알아내고 새로운 패턴으로 교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문 상담사들도 주 1회로 진행했을 때 적어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는 상담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장기적이고 난이도가 있는 치료법이다.
- 반면에 행동을 교정하는데 목적을 두는 치료는 좀 더 직관적이고, 단기적인 치료법이다. 최근에 읽었던 <우울증의 행동활성화> 책에서 설명하는 행동활성화 치료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고, 활동 전/후 기분을 파악해 긍정적 보상을 주는 행동을 활성화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 치료 방식의 기본으로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고 점수를 매기는 활동지 방식을 추천하는데, 이를 AI가 코치처럼 대신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무리 작은 기록도 꾸준히 기록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야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를 되돌아보며 노트에 뭔가를 적어야 하다니.
- 하지만 AI가 사용자가 집에 온 것을 인지하고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요?', '오늘은 어떤 부정적인/긍정적인 행동을 하셨나요?', '점수로 매긴다면 몇 점을 주시겠어요?'같은 질문을 하면서 정보를 캐낸 뒤 자동으로 기록한 뒤, 분석해서 알려준다면? 부정적인 생각을 잔뜩 하고 들어온 날 'O월 O일, ~~~한 행동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셨어요!'같은 말을 해준다면? 그뤠잇!할것 같다.
2) 위로가 되는 책문장을 들려주는 AI
- 난 AI가 자기 생각(?)이 아닌 게 뻔한, 분명히 누군가 입력했을 위로의 문장('오, 누구나 우울할 때가 있죠'라든가 '당신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따위)을 읽어주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질 것 같다.
- 하지만 상담의 가장 기본이 적극적인 '듣기'와 이에 대한 '공감'과 '반응'이라고 할 때, 사용자가 한 자기 얘기를 듣고 이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필수적인 인터랙션이다.
- 이 '반응'을, 인간 흉내를 내는 말이 아닌, 관련되는 책 문장을 읽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물론 사용자의 인풋 데이터를 예상하고 이에 대응하는 값을 쌓는 것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겠고, 저작권 문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예 이 서비스를 위한 DB 축적용 서비스가 필요할 수도 있다.
5. 결론
- AI가 심리상담을 할 수 있을지, 나도 매우 궁금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