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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Dec 27. 2017

당신의 고민을 보관해드립니다

오야마 준코, <하루 100엔 보관가게>

1.

보관가게는 물건을 보관해주는 곳이다.

전당포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당포가 물건을 맡고 돈을 주는 곳이라면 이곳은 돈을 받고 물건을 보관해준다. 

하루 보관료는 100엔(약 천원). 


악용하는 사람들은 버릴 물건을 100엔에 버리기 위해 하루만 보관해 달라고도 한다.

보관기간이 지나도 물건을 찾으러 오지 않으면 그 물건은 주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신기한 가게를 더 신기하게 만드는 것은 주인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매우 똑똑한 분이어서, 목소리만으로 몇 십년 만에 오는 손님도 기억해내고 보관해놨던 물건도 척척 찾아낸다. 


그렇다.

이 소설은 현실성이 낮은 판타지다.

하지만 따뜻하다. 

어딘가에 이런 가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판타지다.


2.

책은 총 5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물건을 맡긴다.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물건을 보관하는 이유는 뭔가와 직면을 잠시 미루고 싶기 때문이다. 

이혼하고 어머니와 살고 있는 한 소년은, 아버지로부터 비싼 자전거를 선물받는다.

하지만 어머니가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면서 얻어온 팥죽색 자전거를 외면하지 못한다.

학교 친구들에게는 좋은 자전거를 보여주고 싶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상처주고 싶지도 않은 마음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소년은 결국 아침에는 팥죽색 자전거를 타고 나와서, 보관가게에서 좋은 자전거로 바꿔타는 것으로 자신의 결정을 유예한다.


그런 면에서 보관가게가 보관해주는 것은 물건뿐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보관자의 고민이다.

물건이 어떤 것인지 볼 수도 없고, 보관을 하는 이유도 묻지 않는 주인이 운영하는 보관가게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으로부터 잠시 떨어질 수 있는 시간을 준다.


3.

기다림이 일인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는, 역시나 하루에 한 두 명 올까말까한 가게를 묵묵히 지키는 주인 아저씨에 저절로 감정 이입이 되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위해서 주인은 여기에서 기다립니다. 보관가게는 기다림이 일이니까요.
분명 이곳은 모두가 돌아올 장소입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장소입니다.
- 55페이지
아침 7시에 보관가게를 열고 11시에 잠깐 닫고, 오후 3시부터 다시 열어 저녁 7시에 완전히 닫는다. 손님은 하루에 한 명 있을까 말까로, 기다림이 일이다. 주인은 기다리면서 점자책을 읽는다.
- 214페이지 
기노모토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노력은 친숙하지 않은 단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 주인은 상당한 노력가다. 정확히는 인내가다.
어둠을 견디고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고, 고독을 견디고, 제멋대로인 손님을 견디고, 지금은 이렇게 소음을 견딘다. 그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받아들임이 그의 인생 전부로 보인다. 아직 젊은 그가 그런 인생을 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 120페이지


요즘 나에게 하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예약이나 독서 모임, 또는 친구의 방문이 있어 누군가 서점을 확실히 오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다. 

누군가 확실히 오는 날은 좋은 날이다.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그렇지 않은 날은 진정 기다림의 날이다.

좋게 생각하면 긁지 않은 복권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문제는 당첨율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4.

오늘 역시 그런 날이다.

이런 날일수록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단골 꽃집 주인 언니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맘만 먹으면 좀 늦게 나가는 것도, 좀 일찍 나가는 것도 너무나 쉽다.

내 가게니까.


하지만 동시에 어떤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내 몫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이 공간이 필요한 누구에게 열리기를 바라면서. 



*이 글의 모든 인용구는 <하루 100엔 보관가게>(오야마 준코, 예담)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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