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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Nov 01. 2018

#1. 아빠의 사진

한지은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3인칭 주인공 시점>은 1시간의 1:1인터뷰 진행 후 짧은 소설을 써드리는 프로그램입니다. 소설은 인터뷰이의 동의를 받아 익명화되어 배포합니다. 현재 파일럿 테스트 기간 중이며, 12월에 베타 런칭, 2019년 2월에 정식 런칭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소설의 저작권은 김명선에게 있습니다.

  


아빠의 사진


1.

 ‘아빠 병원에 입원하셨어'
 

  진혁의 카톡을 확인하는 지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지은은 지금 미국에서 여행 중이다. 없는 연차 있는 연차를 긁어모아서 처음으로 아시아 지역을 벗어나는 여행을 왔다. 현재는 여행 3일째의 저녁이고, 아직까지는 별다른 트러블 없이 즐겁게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동생의 카톡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왜 하필 지금이야…’

  아빠가 걱정되기보다는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크게 마음 주지 않으려 한다. 술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가는 게 하루 이틀인가 뭐. 설마 하는 상황에 대해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일은 그랜드 캐년을 보러 가는 날이니까. 오늘은 잘 자 둬야 한다.

  그랜드 캐년에서는 핸드폰이 터지지 않았다. 즐겁게 돌아보고 맥도널드에 쉬려고 들렀다. 예지와 지연은 버거를 주문하러 가고, 지은은 자리를 맡으며 앉아 있었다. 와이파이가 연결되고, 카톡이 몇 개 연달아 전송되었다. 동생과 고모가 보낸 카톡을 본 지은은 일순간 멍해졌다.

  “주문했어. 지은아 왜 그래?”

  예지가 물어봤다.

  “...... 아빠가 돌아가셨대"

  그 말을 뱉고 나서야, 눈물이 나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멍했다. 실감이 안 났다. 아빠가… 죽었다.

  그랜드 캐년 투어를 해준 가이드가 지은을 공항으로 데려다주는 길 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예약을 했다. 공항까지는 5시간이 걸렸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멍하니 길 위의 풍경이 눈 앞을 스쳐갔다. 아름다웠다. 비현실적으로. 지은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과 생전 처음 겪는 아빠의 죽음은 비현실적인 이중주를 지은의 머리 속에서 연주했다. 꿈이라면, 반드시 깨고 싶은 꿈이었다.


 

2.

  지은은 작년 여름부터 올해 여름까지, 근 1년을 아빠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빠는 계속 연락을 했는데, 지은이 계속 피했다. 상처라기보다는 지겨움이었다. 아빠도, 술도, 욱하는 성격도 지겨웠다. 가족이라고는 이 세상에 아빠랑 남동생뿐인데, 둘은 지은의 인생에 도움은커녕 방해를 더 많이 끼쳤다. 그래서 끊었었다. 괜찮은 회사에서 괜찮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혼자 살아도 충분한 인생이었다. 죄책감보다는 자유로움을 느꼈던 1년이었다.


 

3.

  “누나… 왔구나”

  지은이 미국에서 한국까지,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상도 산골의 고향까지 오는 동안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염은 당연히 끝났고, 지은이 지켜볼 수 있는 건 발인뿐이었다. 다행히 동생이 임종을 지켰다고 한다. 상주 노릇하면서 이틀 밤을 꼬박 장례식장을 지킨 진혁의 얼굴은 푸석해 보였다.


 

4.

  “우리 영은이가 요즘 좀 우울해하는 거야. 5살밖에 안 된 애가 말이야. 뭔 일 있나 해서 물어봤더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영은이를 혼내면서 글쎄, ‘영은이 이런 식으로 계속 선생님 말 안 들으면 선생님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는 거야. 5살짜리 애한테는 그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나 봐. 한숨 쉬면서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아빠, 사람은 언젠가 다 헤어지는 거예요?’ 하하, 귀엽지?”

  “하하하, 진짜 귀엽네요. 영은이가 한숨 쉬는 거 상상하니까 너무 웃겨요, 팀장님”

  아빠가 돌아가시고 한 달이 지났다. 지은의 일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속되고 있다. 아침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회사에서는 일도 하고 동료들과 잡담도 나눈다. 대학 졸업 후에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들어온 회사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일도 지은의 적성에 맞는다. 만족하는 것과 별개로 회사에 가는 게 마냥 좋지는 않은 건, 지은이 대한민국의 멀쩡한 직장인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퇴근까지 한 시간 남았겠네. 화이팅!’

 카톡을 보고 행복을 담은 웃음이 난다. 남자 친구인 지호와 사귄 지는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키 크고, 훈훈한 외모에 다정하면서도 자기 취향이 분명한 지호는 지은의 연애사에서 서로 좋아해서 만난 첫 남자다. 객관적으로 보면 지은의 전 남자 친구들과 비교해 지호가 특별히 다정하거나 잘해주는 게 아닌데, 지은이 지호한테 호감이 있다 보니 같은 행동도 더 예뻐 보인다. 괜찮은 사람이다.


 

5.

  “여보세요"

  “할머니, 저예요. 지은이"

  “아이고, 우리 지은이냐? 바쁜데 웬일로 전화를 다했어~ 추운데 옷은 따시게 입고 다니지?”

  아빠는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살아계신다. 할머니가 맨날 말하는 팔자라는 게 정말 있다면, 할머니의 팔자는 정말이지 닮고 싶지 않다. 할머니가 자식을 앞세운 게 아빠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큰아빠는 지은이 고등학생일 때 돌아가셨다. 그나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큰아빠는 그다지 효자도 아니었고 서울에 사셔서 할머니와 명절에나 보는 자식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아빠는 타고난 효자였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 근처에 살면서 할머니를 살뜰히 챙겼다. 진혁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장례식장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셨다고 한다. 바닥도 치고 자신의 가슴도 치면서 하늘을 원망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감정을 토해낸 뒤, 할머니는 겉으로는 멀쩡하게 지내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언젠가 소설에서 본 것 같다. 자식 잃은 부모의 장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가 십리 밖에서도 진동을 한다고.


 

6.

  아빠의 사망 원인은 급성 췌장염이었다. 아빠는 술을 참 지독히도 마셨다. 평소에는 잘 안 마시다가도, 마시면 정말 끝장을 보게 마셨다. 그렇게 술을 마신 게 지은이 중학교 때부터였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술은 서서히 아빠의 몸을 잠식해갔다. 췌장이 특히 안 좋았고, 당뇨도 있었다. 당뇨에 의한 합병증도 자주 있었고, 그때마다 병원 신세를 졌다. 지은이 미국에서 아빠의 입원 소식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사람의 회복력에는 한계가 있었나 보다. 그걸 몰랐던 게 아니지만, 그게 이번이라고 예상할 수는 없었다. 아빠는 술을 마시면 못할 소리를 많이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지은과 진혁은 물론, 친척들한테까지 전화해서 폭언을 퍼부었다. 가까이 사는 고모를 제외하고는 다른 친척들과는 왕래가 없었다. 그런데 아빠가 죽고,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모두가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형제애가 싹을 틔웠다. 지금은 작은 아빠나 숙모, 고모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받는다.


 

7.

 지은은 예쁜 여자다. 객관적으로도 예쁘고, 스스로도 자신의 얼굴을 좋아한다. 성격도 구김 없고 모난 데 없이 밝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시골의 낡은 집에서 아빠와 동생과 함께 기초수급자로 살았다는 걸, 지은의 입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지은은 멋진 사람이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불행이 인생을 망치는 걸 필사적으로 막으면서 살아왔다.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학교에 갔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티가 전혀 안 난다고, 그리고 정말 대단하다고. 지은도 그런 반응이 싫지 않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8.

  지은의 아빠는 요리사였다. 결혼 전에는 양식 요리사였고, 30~40대에는 중식 요리사였다. 한 때는 중국집 운영을 통해 큰돈도 벌었다. 하지만 돈은 욕심을 불러왔고, 아빠는 몇 가지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아빠는 결국 빚을 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곳간이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는 음악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엄마는 평범한 여자였다. 아빠가 돈을 잘 벌어올 때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집안이 급격히 기울어지자 아빠에 대한 원망이 깊어져 갔다. 얼굴이 꽤 예쁜 편이었던 엄마를 눈여겨보던 정육점 사장의 애정 공세에 넘어갔고, 아빠와는 합의 이혼을 했다. 지은과 진혁은 둘 다 아빠가 키우기로 했다. 아빠는 자식을 끔찍하게 아끼는 사람이었고, 절대 못 데려간다고 했다. 엄마는 새 남자를 찾아서 가는 상황이었고, 굳이 혹을 붙여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은은 여자로서 엄마의 선택을 이해한다. 하지만 딸로서 생각했을 때는 너무 냉정한 여자였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빠는 인격의 폭이 넓은 사람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딸바보에 유머를 겸비한 다정한 아빠였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씻지도 않고 방에 누워서 1주일 동안 술을 마신 적도 있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아빠 방에서는 오줌 지린내가 진동했다. 술을 마시고, 토하고, 그리고 또 마셨다. 아빠는 점점 말라갔다. 그런 아빠에 대한 지은의 감정은 애증이었다.

  누가 뭐래도 아빠는 아빠였다. 때때로 지은은 아빠와 대화만 해도 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아빠는 멀쩡할 때는 이벤트도 종종 해줬다. 지은이 고3이던 시절 화이트데이 때는 집에 풍선을 주렁주렁 붙이고 사탕 바구니와 함께 지은이 갖고 싶어 했던 예쁜 양말을 선물로 줬다. 자라면서 딱히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정도로 아빠는 지은을 사랑해줬다. 지은 역시 아빠를 사랑했다.

  하지만 아빠를 미워하는 감정 역시 무시 못할 정도로 컸다. 미워하는 마음의 80%는 술에서 비롯되었다. 나머지 20%는 아빠의 성격에서 기인했다. 아빠는 한 번 화가 나면 마음에도 없는 과격한 말을 내뱉었다. 자라면서 신체적 폭력은 한 번도 당해보지 않았지만, 정신적 폭력이라면 꽤 많이 겪었다.

  아빠는 지은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고는 했다. 지은이 최근 1년간 아빠와 연락을 하지 않은 계기는 할머니 댁에 에어컨을 바꿔 드리 자자는 말이었다. 아빠는 더운 여름에 할머니가 10년도 넘은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게 못내 마음이 아팠나 보다. 에어컨을 바꿔드리겠다며, 지은에게 얼마를 낼 거냐고 전화로 물어봤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게 아니라, 맡겨놓은 돈을 찾는 투로 물어봤다. 지은은 살짝 부아가 치밀었다. 꽤 높은 연봉을 받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지은은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는 상태라 돈을 아껴 쓰고 있었다. 회사 기숙사에 살면서 교통비와 식비를 아껴가며 대출금을 갚고 저축을 했다. 이제 몇 달만 있으면 대출을 다 갚을 것이고, 몇 년 더 돈을 모아 원룸을 구할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지은과 다르게 진혁은 현재만 바라보고 산다. 고등학교도 자퇴하고 중졸의 학력으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살고 있지만, 어떻게 돈을 구했는지 자신의 형편과는 맞지 않는 차를 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빠는 진혁이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 걸 알기에 이런 효도 자금 펀딩에 진혁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지은은 뭔가 억울했다. 나만 봉이냐고, 왜 나만 가족을 위해 돈을 써야 되는 거냐고 아빠한테 따지듯이 물었다. 그 말에 아빠는 폭발했다. 세상 싸가지 없는 년을 다 본다고, 너 같은 년은 그 회사 다닐 자격이 없다고, 회사 앞에 와서 패륜아 서지은을 고발하는 피켓 들고 1인 시위를 하겠다고, 죽여버릴 거라고 했다. 지은은 경악했다. 칼 같은 말이었다. 처음 이런 말을 들은 건 아니지만, 여러 번 들었다고 적응되는 성격의 말이 아니었다. 아빠가 이런 말을 할 때, 지은은 차라리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죽는다면, 아빠와의 아름다운 기억을 추억하면서 마음 편히 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가 진짜 돌아가셨다. 그리고 지은이 가지고 있던 미움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빠가 잘못했던 것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후회의 감정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주말 가족드라마에서나 보던, 부모님 돌아가시고 주인공이 땅을 치면서 그동안 잘못한 게 얼마나 많은데… 못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후회하던 장면을 지은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가장 후회되는 건 최근에 찍은 아빠 사진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고 나서 지은은 가족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 사진을 찍을 만큼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다. 최근 5년 내에 아빠 사진을 찍어둔 게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지은은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지은은 아빠한테 미안했다. 자신은 취업하고 나서 1년에 4번이 넘게 해외여행을 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빠 하고는 흔한 국내 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아빠한테 가자고 하지 않았다. 솔직히 아빠는 같이 여행 다니기에 불편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함께 여행을 같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하지만 용기를 낼 수도 있었다. 기회는 분명 있었다.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로 미룬 건 지은이었다.


 

9.

  “여보세요"

  지은은 어쩌다가 아버지 전화를 받았다.

  “흠흠, 지은이냐? 웬일로 전화를 다 받는구나"

  지은은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받은 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몸이 안 좋으시다. 조만간 한 번 내려오려무나"

   지은이 아빠와 싸운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여름날이었다. 아빠랑 연락을 안 해서 할머니와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었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연세에 몸이 성하지 않으신 게 당연할 수도 있지만, 뭔가 미안해졌다. 전화를 받았던 주말에 지은은 바로 시골로 내려갔다. 아빠는 지은이 1년 동안 연락을 끊은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다. 할머니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아빠는 옆에서 혼자 약주를 드셨다. 지은은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저녁에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왜 그렇게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달아나듯 떠난 거냐?”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아빠는 부드럽게 얘기하셨다.

  “보고… 싶었다…”

  그렇게 1년간의 적대를 풀고 화해를 했던 부녀였다.


 

10.

  “아빠, 내가 술 따라줄게”  

  아빠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지은은 시골에 내려갔었다. 최근 화해를 한 뒤 아빠와 꽤 사이좋게 지내는 지은이었다.

  “아이고~ 우리 딸이 술 따라줄 때도 있고~ 아빠가 죽어도 여한이 없네"

  지은은 웃으면서 무심코 집을 돌아보았다. 어릴 때부터 자랐던 집인데, 오랜만에 오니 모든 게 작아 보였다. 조그만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 부엌과 연결된 거실이 다인 집이었다. 가난했지만, 아빠와 동생과 셋이 복닥복닥 살면서 재밌는 일도 종종 있었다. 괜히 옛날 생각이 나자 감성적이 된 지은은 혹시나 눈물이 날까 봐 화장실로 피했다. 하지만 화장실 세면대 위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아빠의 칫솔을 보는 순간 울컥하게 되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빠 혼자 여전히 이 집에 사는 것도, 1년 동안 무정하게 연락을 끊었던 것도.

  “아빠… 있잖아. 미안해요. 아빠가 나 미워했던 거 아는데…”

  지은은 말하다가 눈물이 차올라 말을 잠시 멈추었다. 아빠는 오른손으로는 지은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지은의 볼을 어루만졌다.

  “무슨 소리냐... 난 살면서 단 하루도, 널 미워한 적이 없다"


 

11.

  지은은 생각한다. 살면서 만족하는 건 중요하다고. 아무리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도, 만족하는 법을 안다면 삶을 나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도, 만족하는 법을 모르면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지은은 만족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은은 행복할 것이다. 그럴 자격도 있다고 믿는다. 물론 살다 보면 정말 고생 하나 안 하고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 잘 자라서 빛나는 사람도 있다. 지은은 그런 빛을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은 역시 자신만의 빛을 가지고 있다. 그 빛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은 아빠였다고, 그걸 이제야 알아서 미안하다고, 오늘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은은 아빠를 기억한다.



- 인터뷰일 : 2018년 10월 23일

- 인터뷰이의 소설 만족도 : 2.5점/5점

- 소설을 본 인터뷰이의 소감 :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이유는 일상적인 제 생활이나 스스로의 감정을 제 3자의 눈으로,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고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시점만 3인칭이고 내용은 제가 이야기했던 것과 너무 일치하고 유사했습니다.(아마 본 프로그램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요) 저는 일기를 자주 쓰는데 제 일기에서 주어만 바뀐 느낌이 듭니다. 글이 마음에 들었다면 사진 앨범을 남기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본 프로그램을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글에 대한 만족도와 별개로 서점에서 인터뷰를 했던 시간은 참 좋았습니다.




글/김명선

- 수원에서 작은책방 '리지블루스' 운영

- lizzyblues0330@gmail.com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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