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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Dec 05. 2018

#3. 참 예쁘다

정세원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3인칭 주인공 시점>은 1시간의 1:1 인터뷰 진행 후 짧은 소설을 써드리는 프로그램입니다. 소설은 인터뷰이의 동의를 받아 익명화되어 배포합니다. 현재 베타 테스트 기간 중이며, 2019년 2월에 정식 런칭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베타 테스트 신청은 이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소설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참 예쁘다(You're so beautiful)






  “야, 진짜 큰 것 같아" 

  “그러게, 크다 커”

  교실 안에서 두 줄 뒤 여자들이 하는 말을 듣고 세원의 가슴은 내려앉았다. 

  ‘나한테 하는 소리일까? 아니야, 확실하지는 않아… 내일 좀 더 가까이 앉아 봐야겠다' 

  다음 날 세원은 교실에 일찍 도착해 여자들이 주로 앉는 자리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날따라 그 여자들은 수업에 지각했다. 쉬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일부러 그 여자들이 앉은자리 옆을 지나갔다. 공교롭게 바로 앞에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 가장 머리가 작은 여자가 세원의 앞에서 걸었다. 

  “야, 두 배야 두 배"

  “그러게, 큭큭. 완전 비교 쩔어"

  세원은 그 길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 위에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음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쉬는 시간에 가방을 가지고 나와서 노량진역으로 향했다. 공부고 뭐고, 그 여자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집으로 가고 싶었다. 수원행 1호선이 오고, 열차를 타고 가는 내내 여자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눈을 떴다. 꿈이었다. 

  ‘오늘 운수가 안 좋으려나…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꿈 때문인지, 미세먼지가 심한 날씨 때문인지, 회사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래도 가야 한다. 3년이 넘는 공시생 생활을 끝내고, 공무원으로 3개월 일하다가 때려치우고 들어간 직장이다. 부엌 도구 일체를 파는 쇼핑몰에서 일한 지 이제 1년이 넘어간다. 반복적인 업무가 많지만, 크게 어려운 일도 야근도 별로 없다. 월급이 많은 건 아니지만 집에서 가깝고 사람 스트레스도 크게 없다. 나쁘지 않은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세원 씨 안녕하세요~” 

  출근하니 종수가 인사를 건넨다. 세원은 3살이 어린 종수와 6개월 전까지 연인이었다. 종수는 입사하자마자 세원을 티 나게 좋아했다. 회사에 출근하면 세원의 책상에는 종수가 올려놓은 과자와 쪽지가 놓여있었다. 집이 반대방향이면서 세원을 집에 데려다주는 일도 종종 있었다. 세원은 그런 종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에게 이런 대접을 해주는 남자는 종수가 처음이었으니까. 사귀고 나서 첫 한 달은 마냥 좋았다. 같이 있으면 재밌었다. 어른이 된 후 처음 해보는 연애는 세원에게 많은 첫 경험의 기회를 주었다. 그렇지만 종수는 빠른 속도로 세원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기 시작했다. 사귀기 전에 했던 달달한 행동에 대해서 이제는 귀찮아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게 보였다. 세원의 온도 역시 딱히 올라가지 않았다. 세원은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종수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받은 만큼 해주려고 했지만, 더 잘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온하지만 조금씩 가라앉던 관계에 급격히 균열을 낸 말다툼이 있었다. 

  “자기야, 우리 만약에 결혼하면~ 나는 자기가 일 그만두면 좋겠어. 돈은 내가 열심히 벌 테니까, 나는 자기가 집에 있으면서 우리 부모님 아침이랑 점심이랑 저녁밥을 챙겨주면 좋겠어!”

  “뭐라고…? 나 우리 부모님 밥도 안 챙겨줘. 그런데 내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 밥을 왜 챙겨줘야 돼?” 

  “뭐?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 우리 부모님인데…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할 수가 있어?”

  “아니… 내가 말을 좀 세게 한 것 같은데… 사실은 사실이잖아. 나는 자기 부모님 모실 생각 없어" 

  세원은 황당했고, 종수는 섭섭했다. 이 대화 후 둘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사소한 걸로 서로 트집을 잡고,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했다. 세원은 점점 지쳐갔고, 이별을 고했다. 한두 번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같은 상황을 연출했지만, 결국 깔끔하게 헤어졌고 지금은 회사에서 얼굴을 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로 지낸다. 

  세원은 종수와 헤어진 뒤 뭔가 허전함을 자주 느꼈다. 종수라는 사람이 아쉬운 게 아니라, 남자한테 받는 애정이 아쉬웠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는 느낌이 좋았다. 이렇게 얼굴이 크고 비율이 안 좋은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하지만 다시 혼자가 되었다. 여전히 얼굴은 크고, 어깨는 좁다. 똥망 비율인 자신이 싫다. 
 


  “언니~ 여기야" 

  “일찍 왔네? 음식은 시켰어? 여기 고르곤졸라 피자가 맛있다던데" 

  세원은 오랜만에 쌍둥이 언니 지원과 파스타집에서 점심 약속을 잡았다. 지원은 2년 전에 결혼해서 요새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건실한 중소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과 함께 오손도손 신혼 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증명사진을 바꿔 써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똑같은 외모의 쌍둥이지만, 지원은 세원과 다르게 외모 콤플렉스가 없다. 자신이 내세울 만큼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신 다른 요소로 외모를 커버하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다. 반면 세원은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능력과 외모는 별개라는 생각을 했다. 못생기고 얼굴이 큰 건 그 자체로 잘못된 거라는 생각을 뿌리 깊게 가지고 있다. 


  “요새 일은 좀 어때? 난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그때 공무원 그만둔 거 좀 아쉬워. 그렇게 노량진에서 고생하면서 공부해서 된 건데…” 

  “난 괜찮아. 일하는 거에 비하면 돈도 많이 주고… 강원도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

  세원은 3년 동안 노량진에서 공시생 생활을 했다. 흔히들 공무원 시험 준비는 늪이라고 한다. 세원도 그 늪에서 3년간 열심히 허우적대었다. 첫 1년은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고, 2년 차 때는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붙는 걸 보면서 눈물 섞인 축하를 해주어야 했다. 3년 차 때 4점 차로 떨어지면서 진지하게 그만두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아예 그만두기는 그동안의 시간이 아까웠지만, 부모님은 3년 했으면 됐다고 하시며 금전적 지원을 끊어버리셨다. 세원은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원래 준비하던 시험보다 2과목을 적게 공부해도 되고 인원도 많이 뽑는 다른 직렬을 준비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발령은 고향인 강원도로 났다.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되었는데, 업무는 온갖 잡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형광등이 나가면 갈고,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뜯어서 고쳤다. 잡스럽고 거친 일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주위에서는 그 일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거냐고 조소를 던지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평균 신장의 여자인 세원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형광등을 갈 때는 팔이 짧아서 힘들었고, 수도꼭지를 바꾸려고 할 때는 힘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세원의 상사였던 남자는 처음부터 세원을 곱게 보지 않았다. 힘이 약해서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자신을 귀찮게 할 거라고 예언했고, 그 예언이 들어맞자 물 만난 고기처럼 세원을 구박했다. 세원은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항상 일하기 편하게 바지를 입어야 하는 자신과 펜슬 스커트와 스타킹, 구두를 신고 한껏 멋 내고 다니는 젊은 여선생님들의 처지가 비교되었다. 결국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해볼만큼 해봤다고 생각해서, 큰 미련은 없다. 


  “아 맞다, 나 얼마 전에 박유준 길에서 만났다? 여전히 얼굴 하얗고 잘생겼더라.”

  “아 진짜? 걔 페이스북도 안 해서 소식 전혀 몰랐는데. 나도 한 번 마주치고 싶다”

  박유준은 세원이 중학생 때 짝사랑했던 남자아이다. 이제는 유준도 서른이 넘은 어른이지만, 세원의 기억 속에 유준은 교복이 잘 어울리는 소년으로 남아있다. 지원과 박유준 얘기를 하다 보니 중학생 때의 기억이 갑작스럽게 밀려왔다. 

  세원의 중학교 시절은 참 힘들었던 시절로 기억된다. 중1 때는 세원에게 대놓고 얼굴 크고 못생겼다고 면박을 줬던 노는 여자애들과 같은 반이 되어 고생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쌍둥이인 지원과 세원을 자주 비교했다. 심지어 한 음악 선생은 어느 날 세원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 지원이랑 같은 방에서 자고, 똑같은 밥 먹고 살지? 그런데 왜 이렇게 성적은 차이가 나니?” 

  똑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지원은 세원보다 공부도 잘하고 야무져서 선생님들한테 예쁨을 받는 학생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하니,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글쓰기 과제에서 세원과 지원이 비슷한 결과물을 가져갔을 때 세원이 지원의 글을 베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분명 세원이 지원보다 먼저 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소리를 듣기 싫어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렸지만, 지원보다 높은 등수를 받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세원이 지원을 질투하거나 미워한 적은 없었다. 아들을 낳기 위해 감행했던 네 번째 임신에서 딸 쌍둥이를 봐야 했던 부모님은 자신들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고민했다고 한다. 지원은 축복받지 못한 탄생을 함께 했던 동지였고,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아 자랑스러운 언니였다. 세원은 그런 지원이 좋았다. 

  하지만 같은 외모를 가지고도 멀쩡히 잘 살아가는 지원의 존재는 때로 세원의 문제가 절대적인 외모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라는 걸 반증했다. 사실 세원 스스로도 눈, 코, 입은 멀쩡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얼굴의 면적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어깨가 좁아서 얼굴이 더 커 보이는 효과도 있다. 성형 수술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악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건 너무 무섭다. 컨투어링이나 쉐이딩 같은 화장의 마법을 빌려볼 수도 있겠지만 하기도 전에 괜한 짓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괜히 시간과 돈을 낭비해서 민망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요새 신휘영은 어떻게 사냐? 뮤지컬만 하나? 텔레비전에서 거의 못 본 것 같아. 하니랑도 헤어진 것 같고.” 

  “응, 요새는 뮤지컬 열심히 하면서 지내는 것 같아.”

  세원은 가수 신휘영의 열렬한 팬이었다. 아니, 지금도 팬이긴 한데 열애설이 터진 후로는 예전만큼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고등학교 때는 신휘영의 무대 동영상을 보느라 밤샌 적도 많았다. 20살 때는 신휘영이 출연하는 뮤지컬을 보겠다고 혼자서 서울에 다녀오기도 했다. 혼자서 뭘 하는 걸 좋아하지 않던 성격을 고려해보면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참 대단한 것이라고, 세원은 종종 생각한다. 신휘영을 좋아하는 마음 덕분에 연애를 하지 않았던 그 긴 기간 동안 외롭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공식적인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열애설은 1월 1일에 터졌는데, 그날은 안 그래도 몸이 아파서 누워있는 날이었다. 팬질하다가 친해진 언니한테 소식을 전해 듣고 아팠던 몸은 더 아파졌다. 한동안 휘영의 노래도 듣지 않고 시름시름한 상태로 지냈다. 너무 섭섭했다. 차라리 사귀려면 몰래 사귈 것이지, 왜 그렇게 티 날 짓을 해서 기자한테 걸렸나, 원망도 되었다. 오래지 않아 여자 친구와 헤어지긴 했지만, 세원은 한 번 깨진 팬심을 굳이 다시 붙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노래는 좋아하지만, 예전만큼 열정을 다하지는 않는다. 

  “세원아, 난 이제 네가 연예인 그만 쫓아다니고, 네가 정말 좋아하고 너를 좋아해 줄 수 있는 남자 만났으면 좋겠어.” 

  지원이 세원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몇 분 차이로 먼저 태어난 언니지만, 이럴 때는 가끔 지원이 정말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응, 언니.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세원 역시 진심으로 자신의 인생에도 진짜 로맨스가 찾아오길 바란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기적이 생기길 바란다. 못생긴 자신도, 얼굴이 큰 자신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서 자신 있게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셀카도 실컷 찍고 싶다. 어쩌다 남자에게 말을 걸 일이 생겨도 못생긴 여자가 말 걸어서 싫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당당한 여자가 되고 싶다. 신발끈을 묶다가 뒤에서 누가 얼꽝이라고 수군거려도 그게 나를 지칭할 거라고 의심하지 않고 싶다. 


  이제는 너를 안아주고 싶다
  그 차가운 세상 끝에 홀로 서성이던 널
  하루하루 내 사랑이 네 맘을 위로해
  상처 난 네 가슴에 내 기억들을 담는다 
  You are so beautiful.  



- 인터뷰일 : 2018년 11월 17일

- 인터뷰이의 소설 만족도 : 3.5점/5점

- 소설을 본 인터뷰이의 소감 :

나의 이야기가  소설로 쓰인다는 자체가 흥미롭고, 좋았다. 제목을 보고 뭔가 뭉클했다. 힘들었던 감정과 위로받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다만, 소설 속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가 조금 어려웠다. 이 점이 조금 아쉬웠다. 주인공 시점이라서 나의 생각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글/김명선

- 수원에서 인터뷰서점 '리지블루스' 운영

- lizzyblues0330@gmail.com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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