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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Nov 16. 2019

#1. 빼빼로데이가 주는 용기

리지의 편지

안녕하세요? 

9월 25일에 <월간 리지블루스> 폐간호를 보내고 약 한 달 반의 시간이 지났네요. 굉장히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막상 세어보면 두 달도 안 되는 시간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그냥 지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고민하면서 지냈습니다. 지금도 계속 고민 중이고요.


생각을 오래 하기보다는 대충 하고,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최선이 되게 한다-가 그간 제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성급한 결정이 그 대가를 치르게 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뭔가 제 삶의 중요한 궤적을 만들어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성급한 결정을 안 내리는 게 아니라 못 내리고 있습니다. 성급하게 결정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마음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동안 성급한 결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적어도 그 당시에는 마음이 폭발적으로 지원해줘서인데, 요즘 제 마음이란 녀석은 요지부동이네요. 뛰기는커녕 걷는 것도 귀찮아합니다. 


리지블루스 3년 차를 맞이하면서, 시즌3은 사랑 서점이라는 콘셉트로 해보려다가 접었습니다. 결국 이 콘셉트를 하게 되면, 제가 서점을 통해 좀 더 많은 돈을 벌어보려고 노력할 것 같았고, 그러다 보면 서점을 싫어하거나 저를 싫어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이후에는 가치(같이) 서점이라는, 주주라는 이름의 공동 운영자들과 함께하는 서점을 추진했습니다. 단골손님들 중 책방 운영에 관심 있는 분을 몇 명 만나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세 분이 함께 하고 싶다고 해서 기뻤지만, 계속 고민이 되었습니다. 


뭔가 결정을 내릴 때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동안 제 기준은 대체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참 심플하고, 나쁘게 말해 이기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했습니다. 그게 안될 때 우울증이 왔던 것 같아요. 우울증의 힘을 빌려서라도 결국 하고 싶은 대로 또는 하기 싫은 걸 안 하면서 살았습니다. 글로 쓰면서도 참 별로다-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이게 어쩔 수 없는 저라는 사람의 특성이자 한계인 것 같습니다. 꾸준히 열심히 인내하며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 여전히 부럽고 질투 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걸. 그렇다고 앞으로 더욱 막 나가는 삶을 살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안될 일을 되게 하려다 나가떨어지기보다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듬고 길러내면서 살고 싶습니다.


오늘은 11월 11일, 빼빼로데이입니다. 딱히 빼빼로를 줄 일도 받을 일도 없을 것 같으니 빼빼로데이라는 의미는 없지만, 날짜의 생김새를 보고 있자니 1이 4개나 있는 게, 1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날처럼 보여요. 이 기운을 받아서인지, 저는 다음 주 금요일부터 시작하는 6주간의 에세이쓰기 수업에 신청했어요. 수업을 진행하는 작가분의 글을 한 편 읽고, 마침 진행되는 강의 신청을 하기까지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흠, 다행히 제 추진력이 죽은 건 아닌 것 같네요.


지난 2년 간 책방을 운영하는 거나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거나, 가볍게 한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이 일을 제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만들면서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했어요.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에어로빅을 해보고, 봅슬레이에 도전하긴 하지만 그걸 프로가 될 때까지 계속하지는 않는 것처럼요. 도전하는 사람, 경험해보는 사람으로 지내는 동안은 0에서 시작해 0.5~0.9까지 해내는 시간을 즐기면 되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재미있었고,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걸 해냈다고 남들한테 인정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도전자로서의 시간은 끝이 난 듯합니다. 또 영역을 바꿔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마음을 잡고 프로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프로의 세계에서 모든 차이는 0.1에 몰려있습니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영역이 아니라 잘, 정확히, 제대로, 멋지게 해낼 수 있느냐의 영역입니다. 


30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제가 1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제대로 노력해본 건 고등학생 때 했던 입시공부 하나였습니다. 운이 따라줘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저는 그 과정을, 그 과정 속의 제 자신을 오랫동안 혐오했습니다. 지금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순간을 위해 아등바등하고 마음 졸였던 제 자신을 참 싫어했어요. 그래서인지 20대에는 애초부터 그 무엇도 1이 되고 싶다는 마음조차 품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냥, 한 번, 가볍게, 여행하듯이, 와 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어차피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었는 걸’, ‘그렇게까지 원하던 것도 아니었는 걸’이라고 생각하며 넘겼습니다.


(이 글이 쓸데없이 거창해지고 있는 걸 경계하며) 저는 글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합니다. 조금이라도 배울 점이 있는 사람한테는 찾아가 배우려 합니다. 내 맘에 드는 글을 써놓고 ‘누군가는 읽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려 합니다. ‘어차피 다시 봐도 비슷해.’라고 생각하면서 바로 공개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퇴고하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려 합니다. 


이미 제 이름을 달고 3권의 책을 냈지만, 저는 다시 작가 지망생, 좀 더 트렌디하게 표현하자면 ‘연습생'으로 돌아갑니다. 연습생의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글이 당신의 월요일에 조금의 응원을 보태길 바라며,

2019년 11월 11일

김명선 드림 



<리지의 편지>라는 시리즈로 (가능한) 매주 1편의 에세이를 써서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시간 간격을 두고 브런치에도 공개할 예정인데, 일부 글은 올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구독 신청을 원하시면 여기를 눌러 신청해 주세요.



글/김명선

- 수원에서 인터뷰서점 '리지블루스' 운영

- lizzyblues0330@gmail.com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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