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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Dec 27. 2019

[글담] 두 번째 글담 - 트라우마와 자기모순

두 번째 글담 개요

- 진행일 : 2019년 12월 26일 목요일 1시 

- 글담 파트너 : 20대 소설가 지망생 진 님

- 글감 : 1) 트라우마 (진 님의 픽) 2) 자기모순 (리지의 픽) 

- 진 님의 신청 계기 & 기대하는 것

1) 프로그램이 괜찮아 보이기도 했지만, (원래 알고 지내던) 책방지기와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하는 게 재밌을 것 같다고 느꼈음

2) 요즘 자주 생각하는 주제가 있는데, 이에 대해 글로 써보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길 바람 


나의 글


1) 트라우마


  난 트라우마를 잘 모른다. 내가 트라우마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게, 내게 트라우마가 없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정신과 질병은 대체로 귀납적이다. 공통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모아서 거기에 하나의 병명을 붙인다. 최초의 병명 아래에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면 병명은 가지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되지 않는 증상들은 많이 있다. 

  의학적 용어가 아닌 일상적인 의미에서 나는 트라우마를 “이미 사건은 종료되었으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고, 그 상처가 딱히 관련 없는 이후의 사건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 정도의 의미에서 나 역시 몇 가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트라우마처럼 겪고 있는 것은 인간관계이다. 나는 관계에 방어적인 편이다. 내 안의 관계에 대한 레벨을 5 레벨 정도로 나눴을 때, 나와 1 레벨의 관계를 맺는 것은 쉽게 허용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주기적으로 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서점을 크게 스트레스받지는 않으면서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4 레벨 이상으로 누군가를 들일 때는 대체로 신중하다. 나는 겁을 낸다. 그 사람이 내가 준 마음만큼 나에게 주지 않을까 봐. 나의 어떤 모습에 실망할까 봐. (…)


> 자평 : 이날 쓴 두 편 모두 주어진 시간과 원래 내가 쓰는 속도를 생각하면 매우 적은 분량을 적었다. 쓰기가 쉽지 않은 주제였다. "나는 ~~ 한 편이다"라는 문장을 쓰고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정말 그런 편인가? 아닐 때도 너무 많은데... 같은 생각이 들었다.(두 번째 글감인 '자기모순'과 연결된다)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레벨 개념을 가져왔지만 이런 구분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 자기모순


모순은 항상 가지고 사는 거지만 유독 나의 모순이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나는 

착하면서도 나쁘고

성실하면서도 게으르고

친구가 많으면서도 없고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하고

책을 좋아하면서도 많이 읽지 않고

글을 쓰고 싶어 하면서도 쓸 때는 괴로워하고

돈을 못 벌지만 가난하지는 않다.


어느 정도 ‘나는 이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나의 기본 설정값에 대해 강하게 의문을 품게 된다. 갖고 있던 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어떤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방향은 현재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야 잡을 수 있는 건데, 내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때로는 나에게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나- 라는 생각도 든다. 해야 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건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고민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내가 될 뿐인데, 이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고민은 중2 때 끝냈어야 하는 거 아닌지, 왜 난 서른이 되어서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머리로는 그냥 한때인 걸 아는데, 겪고 있는 지금은 여전히 괴롭다. 


> 자평 : 글담 전날 많이 생각하던 주제여서 글감으로 골랐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쓴 거라서 쓰면서 정리되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지나치게 '자격'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나를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어서 아예 버릴 수는 없다.


진 님의 소감

- 그냥 수다 떨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느낌이다.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생각을 꺼내서 글로 적어보고, 상대방도 같은 주제로 글을 쓰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면서 객관화된다는 게 제일 좋았다. 

- 혼자 생각할 때는 나한테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처럼 느껴지고, 무겁고, 해결책을 못 찾을 것 같다. 객관화하는데 일기를 쓰는 게 도움이 되는데, 일기를 써서 얻을 수 있는 객관화가 10이라면, 이 프로그램은 50~60 정도의 객관화 효과를 준다. 

- 정말 아무 고민 없고, 단순한 사람이라면 이 프로그램이 의미 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사람은 각자의 고민과 무게가 있으니 그런 주제를 같이 써보고 대화를 나누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의 소감

- 글감 자체가 심리상담적인 거여서 쓰면서도, 얘기하면서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둘 다 쓰고 나서 "하얗게 불태웠다"같은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쓴다고 당장의 고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당장 바뀌는 것도 아니지만 역시 안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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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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