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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Sep 18. 2017

D-42. 결혼식에 대하여

장강명, <5년 만에 신혼여행>

1.

얼마 전 결혼한 친구 T의 추천으로 장강명의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읽게 되었다.

장강명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 저자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책 속에서 부인을 HJ로 칭했는데, 둘은 빼빼로데이와 비슷해지는 한국식 결혼식에 염증을 느껴 과감히 생략하고, 딱히 신혼여행도 가지 않다가, 5년 후 여윳돈이 생긴 것을 계기로 보라카이로 3박 5일 (신혼)여행을 다녀온다.


작가의 결혼, 여행, 돈에 대한 가치관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는 에세이였다.

중간중간 뜨끔-하며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

한국식 결혼식은 우리 생각에 그런 허세와 불필요한 지출의 결정체였다. 내 생각에는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빼빼로데이와 매우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점점 호사스러워지고 있고, 장식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업체들이 호사스러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모두 그게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술에 넘어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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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전형적인 결혼식을 빼빼로데이와 비교하니, 그 상술스러움이 적나라해진다. 나 역시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순간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게 "허세이고 바보같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난 공주놀이가 재밌고, 예쁜 사진을 남기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문득 계산해보니 결혼'식'만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 - 홀 대관료 + 드레스 메이크업 + 본식 스냅 + 본식 dvd + 폐백음식 + 맞춤한복 - 을 계산해보니 6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심장이 아픈 가격이긴 하다. 결혼을 하기 위해 한국식 결혼식을 치르는 게 좋은 결정이었냐-는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때는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겠지만.


그러나 신세계를 찾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직업을 바꾸고, 분기마다 새 취미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어딘지 모를 이상향을 찾아 쉴 새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 바람직한 걸까? 그걸 낭만이라고 포장하는 건 시시한 사기 아닐까. 그것은 기실 그 사람의 세계가 그만큼 황량하고 별 볼 일 없음을 폭로할 따름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날씨가 괜찮고 마실 물과 식량이 있는 평평한 땅을 찾으면 방랑을 멈추는 게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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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비판하는 문단보다 이 문단을 보고 더 뜨끔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흥미가 움직이는 걸 따라서 끊임없이 직업이나 회사를 바꾸는 사람... 나다 나. 이게 낭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고작 3년만 경험해봐도, 얼마나 커리어가 누더기가 되고 밥벌이에 위협적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년만 할 생각으로 서점을 열 계획을 하고 있고... 그 다음은 그 때가서 생각해봐야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세계는 황량하고 별 볼일 없는걸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나 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5년 후나 10년 후쯤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싶다. 방랑을 멈추지는 않는 이유는 내 타고난 천성과 기질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며, 내 세계는 그 나름의 풍성함과 다채로움을 가지고 있다고.


3.

"자기는 내가 이렇게 짜증 내고 화내고 그러는데 왜 나를 좋아해?"
짐을 챙기며 HJ가 물었다.
"나중에 복수하려고. 나한테 푹 빠지게 만든 다음에."
내가 대답했다.
"<아내의 유혹>처럼? 눈 밑에 점 하나 찍고?" "응."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HJ가 말했다.
- 172페이지


여행 중반에 부부는 싸우고, 화해한다. 그 과정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데 참 위트 있고 귀엽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부부라면 평생을 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에 결혼의 핵심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에 있었다. 그 선언을 더 넓은 세상에 할수록 우리의 사랑을 더 굳건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식은 거부하되 혼인신고는 했다. 우리는 국가를 향해 선언했다. 이 약속을 어기게 되면 그 상처가 반드시 어느 국가 서류에 흔적을 남기게 만들었다. UN이 혼인신고를 접수했다면 UN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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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에 대해서 '법적 서류절차', '이후 이혼을 복잡하게 만드는 장치'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런 식의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인상깊었다. 나 역시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이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4.

지난 번 <온전히 나답게>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에세이다. 내가 에세이를 쓰고 있음에도 남의 에세이 읽기에는 인색했는데, 에세이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걸 두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이런 좋은 에세이를 읽을수록 나의 에세이가 비루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이 책의 모든 인용구는 <5년 만에 신혼여행>(장강명, 한겨레출판)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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