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에서 시작된 현대

동아시아를 발견하다

by myungworry

쑹녠선의 '동아시아를 발견하다'(역사비평사)를 읽다. 역자는 몇 년 전 학회 참석차 베이징대 부근에 갔다가 서점의 '한국사' 코너에서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해 읽은 뒤, 곧 번역을 결심했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들은 정보로는 중국에선 꽤 화제가 된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정보는 이 책에 대한 중국 내 호평이 '호들갑'이라고 결론 내리긴 했다)


나는 동아시아사에 대한 별 지식은 없으나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왠지 모를 호기심이 동해 골라 들었다. 한국 번역본의 부제는 '임진왜란으로 시작된 한중일의 현대'인데, 그런 부분도 궁금했다. 한국인에게 임진왜란은 이순신, 의병, 유성룡, 선조, 원균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 '민족수호전쟁'이지만, 한국 바깥의 시각도 궁금했다. 역사에 대한 일국사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과거 출판을 담당할 때 이런저런 책들을 접하며 어렴풋이 깨달은 생각이기도 했다. (당연히도 임진왜란은 중국에선 조선전쟁, 일본에선 분로쿠-게이초의 역이라고 달리 불린다)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은 아편전쟁, 일본은 흑선 내항, 조선은 강화도조약 이후에야 서구가 앞장서온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다. 이러한 이벤트 이전까지 동아시아 나라들은 쇄국했고, 그 결과 세계의 발전 양상에서 뒤쳐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을 거부한다. 헤겔이 상상한 대로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단계적 과정으로서의 역사관을 거부한다. 부제가 드러내듯이 저자는 동아시아의 현대가 임진왜란이후 시작됐다고 본다. 인적, 물적 동원의 면에서 임진왜란은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이었다. 조선을 신하로 삼아 명을 치려 했던 과대망상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 중 사망했고, 출병하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력을 추슬러 열도의 권력을 쥔 뒤 에도 시대를 열었다. 명은 일본이 중원에 진출하는 걸 막았지만, 국력을 소모해 청의 발흥을 막지 못했다. 조선 역시 전반기의 태평성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다.


흥미로운 건 중화 개념의 변천이다. 한족 중심의 명이 몰락한 뒤, 오랑캐였던 여진족이 청을 세웠다. 어제의 오랑캐가 오늘의 중화가 됐으니, 이 혼돈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조선은 한동안 현실을 부정하다가 청에 정벌당했다. 중화란 민족이 아니라 유교적 법통에 있다고 생각한 조선의 선비들은 이후 '소중화'를 자처하기도 했다.


저자는 청, 조선, 일본이 19세기 이전까지 '쇄국'했다는 인식에도 의문을 표한다. 이미 청은 만주, 몽골, 티베트 등을 아우르는 다인종, 다문화 대제국이었다. 남쪽의 항구를 통해서는 서양의 상인들과 종교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했다. 한때 천주교를 금한 적도 있었지만, 이는 교황청이 유교식 제사와 조상 숭배를 철저히 부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시적인 일이었다. 오히려 청 황제는 교황청에 사신을 보내 유교식 제사는 천주교 신앙과 배치되지 않으며, 일종의 풍습일 뿐이라고 설득하려 했다. 청에 종교 자유가 없었다면, 구교도와 신교도끼리 목숨 걸고 싸웠던 유럽은 대체 뭐였냐고 저자는 비판한다. 19세기 서구의 압도적인 물질문명 앞에 억지로 국가의 닫힌 문을 열었다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서구식 선형적 역사관의 잘못된 적용이라고 저자는 본다. 이러한 서구의 역사관은 아시아 여러 지역에 대한 식민주의적 확장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읽다보면 중국에서 왜 이 책이 호평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반도의 거주자로서는 중국인이 조선의 역량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줘서 기분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미국 University of Maryland, Baltimore County에서 강의하는 역사학자다. 중국인은 세계 어디에 있어도 중국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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