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는 파견직으로...
전산실 조교 일을 하면서 다시 이력서를 회사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웹 관련 일을 지원했고 한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조교 일은 그만두고 그 경력은 다행히 인정받은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입사 당시 회사 상황을 몰랐습니다. IMF로 회사도 어려움이 있었고 급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달이 좀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입사 당시 저와 신입사원이 3명이 새로 웹 관련 인력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웹 관련 일들은 홈페이지를 시발점으로 이제 막 시작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입사했던 시기는 닷컴 버블이 일어나기 전입니다.
회사에 입사하고 보니 웹에 관련된 인력은 없었고 회사 홈페이지는 만들어 두었으나 관리하는 인력이 없었습니다.
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함께 입사한 신입 교육도 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 관리도 본사에 있는 동안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몇 개월 있다가 부산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프로젝트가 생겼다고 그쪽에 가서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2000년이 되기 전으로 당시 COBOL로 개발되었던 프로그램들은 2000년을 표현할 수 없기에 급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회사였습니다.
저는 웹 개발자로 일을 한다고 취업했으나 제가 할만한 일은 당장 없었습니다.
회사는 개발자를 다른 곳에 보내어 돈을 버는 구조였습니다. 신규로 채용한 인력이 본사에서 몇 개월 있으면 회사로선 투자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IMF 여파로 회사 자금 사정을 여의치 않았으니 채용한 인력은 어디서든 일을 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부산에 내려가면 홈페이지도 개발할 수 있으니 너의 일도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출장비도 지급될 것이고 교통비도 지급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출장 일은 처음이었고 저도 설레었습니다.
부산 일은 Delphi로 사내 업무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었습니다. 전 업무를 몰랐고 제가 맡은 부분은 인사/급여였습니다.
개발된 프로그램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고 제 담당업무는 다른 과장님이 실질적으로 개발할 것이니 저는 자리만 지키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프로젝트 인원은 서울에서 내려온 대리, 저, 신입, 부산에 사시는 PM, 부산에 사는 개발자로 구성되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업무는 개발된 프로그램이 있으니 그걸 약간 수정만 하면 된다고 했고, 다른 부분은 분석/설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출장은 숙소부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PM께서 알아 봐주신 숙소는 처음엔 하숙으로 구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하숙하는 곳은 여직원 2명이 지내기엔 불편하였습니다.
우린 여관으로 숙소를 옮겼습니다. 여관은 옆방의 소리가 다 들리는 곳으로 밤에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저에게 쉽지 않았습니다.
함께 여관방을 쓰는 대리와는 생활이 맞지 않았고 개발해야 하는 인사/급여 업무는 전혀 몰랐습니다.
음식도 회와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지 않기에 초기엔 정말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개발일은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오는 과장이 주요 개발은 해주시지만 현업과의 업무 진행 및 문의 및 요구사항 파악은 제가 해야 했습니다.
현업은 제가 실질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거로 알기에 전혀 모르는 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인사/급여 일에 대해선 소스를 보고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오는 과장님께 지도를 받으며 배워 나갔습니다.
급여 계산하는 방식, 원천 징수하여 정산하는 방식 등 개발된 소스와 배워 나간 업무를 비교하며 조금씩 수정을 해 나가야 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으로 PM은 잘 먹어야 한다고 저희 먹거리는 잘 챙겨주셨습니다.
박카스와 우루사를 비치해 놓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1999년이 지나고 2000년이 다가오면서 일은 점점 더 바빠졌습니다.
2000년엔 무조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하는 상황으로 저희는 주말도 서울에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을 여관방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저의 각오는 확실했습니다. 당시 급여 명세서 출력 부분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급여 명세서는 직접 찍어 보면서 인쇄 위치를 하나씩 잡아가야 했습니다.
전 2000년 시작하는 주말엔 서울에 올라가겠다는 각오를 PM께 말씀드리고 밤새워 가며 급여 명세서 출력을 마쳤습니다. 며칠 혼자 사무실에 남아 밤을 새워가며 일을 했기에 PM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하루만 있다가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1999년 12월 31일에 금요일 집에 올라갔다가 2000년 1월 1일을 맞이하고 1월 1일 오후에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프로젝트는 대부분의 야근 작업과 주말 출근으로 마무리하고 본사로 복귀하였습니다.
어딘가에 파견되어 일한다고 무조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첫 부산 프로젝트는 제가 업무 및 개발에 대해 부족하였으나 프로젝트에 나간 회사의 현업 분들은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파견된 회사 사장님께서는 프로젝트 인원이 고생한다고 자주 회식을 시켜주셨습니다. 타지에서 고생한다고 하시면서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경험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저희 프로젝트 투입되었던 모든 인원을 데리고 무주 리조트에서 스키도 탈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주셨습니다. 파견된 회사 사장님께서는 일을 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셨고 시스템 개발 완료 때마다 고생했다면서 회식을 시켜 주셨습니다.
사실 속한 회사보다 더 많은 배려를 해주신 느낌입니다. 즉, 인력파견회사에 취업했으나 저에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인력파견 회사에서 투입되는 프로젝트 상황에 따라서 일하는 환경이 다를 뿐이라는 걸 나중에 계속 일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본사에 복귀하고 나서 출장비는 처음 출장 갈 때 이야기 한 조건으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저희가 출장 갈 때 출장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통비는 최저 금액으로 책정되어 지급되었고 출장 수당 역시 최저 금액으로 지급하신다고 통보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바로 지급되지 않아 선지급하여 사용한 카드대금을 막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돈에 대한 부분 처리가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취업하여 일하여 돈을 벌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두 번째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두 번째 프로젝트 투입 전에 본사에서 지식관리 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지식관리 시스템이 보편화될 수 있다는 윗분들의 판단으로 일부 개발자를 교육하여 파견할 계획이셨습니다. 함께 입사했던 분들과 교육받고 저는 S사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