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일은 항상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IT(Information Technology)의 위키백과의 의미를 보면
‘정보기술(情報技術, 영어: information technology, IT)은 전기 통신, 방송, 컴퓨팅(정보처리, 컴퓨터 네트워크, 컴퓨터 하드웨어, 컴퓨터 소프트웨어, 멀티미디어), 통신망 등 사회 기반을 형성하는 유형 및 무형의 기술 분야이다.
현대의 "정보"라는 용어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출판된 1958년 문건에 저자, 리비트(Leavitt)와 휘슬(Whisle)이 "새로운 기술은 하나의 확립된 이름을 아직 갖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를 정보기술(IT)로 부르겠습니다."라고 언급한 데에서 처음 등장하였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를 표현할 때 IT라고 많이 표현합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해요. IT 개발자예요.’
사실 일반인이 듣기에 가장 쉽게 말할 수 있어서 이런 표현을 써서 저의 직업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특히, 회사에 속하는 직원이 아니었기에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삼성전자 다녀요. KT 다녀요, LG 다녀요’ 등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표현할 땐 ‘IT 개발자입니다’라고 소개합니다.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표현하기 때문에 제 분야를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그냥 이 문장으로 제 일을 표현합니다.
근데 전 이 일이 제 일은 아니라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졸업 전 취업한 회사는 그만두게 되었고, 다시 취업한 회사에선 실력이 없다고 잘렸습니다.
처음엔 그냥 집에서 쉬면서 이력서를 졸업 전 취업한 분야 관련 업무 위주로 넣어 보았습니다. 부모님은 졸업한 백수가 집에 있으니 답답하셨는지 지인을 통해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사무실에서 전화 받으며 사무실을 지키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서 컴퓨터 채팅을 하며 보냈습니다.
다시 취업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학벌도 좋지 않고 자격증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발할 때마다 느끼는 자괴감도 컸습니다.
Visual Basic이라는 언어는 쉬운 언어라고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동아리에서 배운 언어도 Foxpro, Clipper라는 언어였습니다. Foxpro, Clipper는 DB를 그냥 연결만 하는 개발하기 더 쉬운 언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Visual이라고 화면은 Tool로 가져다 놓아 그릴 수 있었으나 정작 그 안에 들어가야 할 프로그램 부분 개발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화면 그리는 것은 요즘 그리는 이미지 도구처럼 리스트박스, 버튼 등을 가져다 놓으면 되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튼을 클릭하였을 때 이루어져야 처리에 대해 구현을 하는 빈 화면을 볼 때마다 머리는 더 하얗게 변했습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를 학교 때, 졸업하고 취업하여 개발하라고 할 때마다 속으로 수십 번 물었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예제 프로그램은 그냥 따라서 타자를 치면 실행되었으나 제가 뭔가 기능을 개발하려고 할 땐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발을 하는지 막막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초창기 개발자 생활은 선배들이 친절하지도 않았기에 물어봐도 책을 던져주면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습니다. 알아서 하기에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할 텐데 전 그 기초조차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항상 막막하였으니 회사를 잘리는 것도 당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회사에서 근무하시던 선배를 10년 후에 만났는데 제가 IT에서 개발하고 있다니 굉장히 놀라워하셨을 정도였습니다.
저의 초기 개발실력은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아무리 밤을 새워도 내놓을 결과물은 없었습니다. 일하면서도 ’이 일은 정말 나의 일이 아니다’라고 항상 생각하였습니다. 그래도 취업은 해야 했고 돈은 벌어야 했기에 그 잠깐 근무한 한 줄을 이력서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DW(Data warehousing)로 Data를 분석하여 프로그램하는 일로 제가 하고 싶은 분야였습니다.
회사에 출근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회생활 초년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IMF가 터지고 일들은 중단되었습니다.
저의 취업도 취소되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고 입사 취소가 된 것입니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낼 때 동호회에서 알게 된 분이 일을 하나 소개해 주셨습니다. 제가 졸업 전 회사에서 잠깐 배워 일하려 했던 Delphi라는 프로그램 언어로 개발하는 일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소개받은 분은 전라도 광주 쪽에서 작은 사업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견적 내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판매를 해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전 실력은 별로 없으나 공부해서 해보겠다는 열의를 갖고 광주를 왔다 갔다 하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지 요구사항을 들으러 광주로 버스와 기차를 타고 왔다 갔다 했습니다. 당시는 사회 초년생으로 계약이니 공증이니 등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계약서를 써 주셨고 계약금으로 당시(1997년 기준) 50만 원을 받았습니다. 계약서를 필요하면 공증도 받아주시겠다고 했으나 공증이 무엇인지 몰라서 안 해 될 거라고 했습니다. 계약금도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몰라서 주시겠다고 한 금액으로 그냥 받았습니다. 그 계약금으로 왔다 갔다 차비로 활용하며 개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책을 뒤져가면서 하는 개발 일은 진척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입사는 취소되었고 프로그램 개발일은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계약금으로 받은 돈은 광주를 왕복하는 비용으로 끝난 상태였습니다. 부모님께 필요할 때마다 돈을 받아 살기엔 졸업한 백수로 불편했습니다.
회사에 들어가긴 어렵다는 생각하였습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H 대학 의대 전산실 조교 자리를 겨우 구했습니다. 당시 10시부터 3시까지만 근무하는 조건으로 30만 원 정도 받는 급여였습니다. 추후엔 업무를 더하기로 하여 추가 수당을 받아 5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산실 조교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했었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PC 설치, 관리 및 수강신청 등의 도움을 주며 지냈습니다.
전산실 조교를 하면서 Delphi 개발 일은 계속 진행하던 상태였습니다. IMF가 발생하고 광주의 사장님은 Lite 버전이 필요할 거 같다고 하시며 두 개의 버전으로 개발을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개발한 결과물 점검받으러 갔을 때 요구사항을 변경하신 것입니다. Lite로 가볍게 설치할 수 있는 것과 전체 기능을 포함하는 버전으로 나눠 달라 요청하셨습니다.
당시는 변경상황이 발생하면 재계약을 해야 한다는 것도 개발 기간도 변경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두 개 버전을 만들려니 추가 개발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 역시 IMF가 터지고 상황은 변했습니다.
일을 주셨던 광주 사장님 주위에 함께 하실 수 있는 전문가가 IMF로 회사를 나오셔서 할만한 일을 찾고 계셨나 봅니다. 제가 하던 일은 그분께 맡기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원래 개발을 완료하기 했던 기일도 지났다면서 위약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계약금을 돌려주던지, 계약서대로 위약금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개발 결과물을 검토받을 때 요구사항이 변경되었던 것이지만, 이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저는 위약금을 내놓으라는 말에 겁이 났습니다.
위약금은 계약금의 3배, 조교로 받는 월급이 50만 원 정도인데 3개월 치 월급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계약금 50만 원을 보내 드리고 그 일은 마무리했습니다.
전 ‘개발일은 저와 정말 내일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납기는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거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금 50만 원을 돌려 드리는 선택이 제겐 제일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전산실 조교도 제겐 쉽지 않았고 일을 하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실력 없다고 잘린 회사에서도 개발 결과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었습니다. 이때 먹으며 풀었던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극한 스트레스는 살이 빠지는 것이란 걸 전산실 조교 일을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의대 전산실이다 보니 레지던트, 인턴들이 자주 와서 일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전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혼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기도 하고 밥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입맛이 떨어져 밥을 먹을 수 없는 횟수가 늘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사회생활 초기 3년간은 쉽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 개발일은 계약금을 돌려주고 내 일은 아니니 이젠 그쪽 일은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산실에서 외부 업체에 홈페이지 개발을 요청해 놓은 일도 관리해야 했습니다. 외부 업체에서 서버도 관리해주고 홈페이지도 수정해주는 일을 주기적으로 와서 해주고 계셨습니다. 전산실 담당 교수님은 제게 그 일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에 할당된 금액 중 일부를 저의 수당으로 줄 테니 해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서버는 MS(Microsoft) 서버로 홈페이지는 html과 idx라는 초기 웹페이지 개발언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개발된 소스는 이미 있었고 서버 관리는 업체 엔지니어가 왔을 때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홈페이지 소스를 분석하고 아는 선배들에게 전화로 물어가면서 소스를 고쳐봤습니다. 당시는 홈페이지에 대한 설명이 지금처럼 인터넷에 많이 있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어로 되어 있는 내용은 찾아볼 생각도 못 했습니다. 혼자 끙끙거리며 홈페이지를 조금씩 수정해 나갔습니다.
IT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제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업무였습니다.
조금씩 화면을 바꿔가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내던 시기에 입사 취소되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입사할 수 있냐’고. 전 입사를 원했고 연봉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전산실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데 연봉으로 100만 원은 더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고 회사는 저를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IMF의 여파는 조금씩 해소되어가고 다시 경제가 움직이기 시작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다시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규모가 있는 회사에 입사하겠어.’라고 다짐을 하며 ‘최소 직원이 50명 이상 되는 회사에 입사하리’라고 생각하며 회사에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사하기 전까지 인력파견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특히, IT는 대부분 인력을 파견하여 유지되고 있다는 걸 취업하고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