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친하다는 의미
수수는 선과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관계이다.
선은 수수를 좋아한다. 수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수수는 선이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수수는 가끔 자신을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하면 ‘왜 좋아하지’란 의문이 생긴다.
수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일까?
이건 좀 더 수수 입장에선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거 같다.
선과는 아주 잠깐 같이 일을 했다.
수수 입장에선 선이 수수와 친하게 지낼 시간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은 수수에게 연락했고 시간이 되면 수수를 만나길 원했다.
수수는 선이 연락하면 언제든지 만나줬다.
우선 선이 사는 곳과 수수가 사는 곳이 가까웠다.
그냥 편하게 ‘만날래’하면 만날 수 있는 거리였다.
선은 결혼하였고 아들이 하나 있다.
남들이 결혼해야 한다고 하는 나이 때쯤 선도 누군가를 만나 결혼했다.
수수와 만나 선은 주로 시댁 이야기, 아이 이야기를 했다.
수수 입장에선 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수수와 선은 몇 년간 만났었다.
시댁에 아빠가 아이와 함께 가고 없을 때, 아이를 부모님이 돌봐주겠다고 데려갔을 때 등 선이 편한 시간에 만났다.
수수의 집으로 놀러 오거나 맛있는 식당에 가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각자 일하는 이야기 등 순간순간 느끼는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며 보냈다.
수수와 선은 계약직으로 일하는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한 곳에서 일하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부닥칠 때가 자주 있다.
수수와 선이 처음 만난 상황도 사실 그랬다.
수수와 선, 둘 다 계약직이었다.
수수는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매니저는 ‘선이 생각했던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라고 말했다.
선은 매니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계약이 파기되는 상황이었다.
수수는 선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선은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지원금으로 웹디자인 일을 배웠다.
그 일을 계약직으로 하고 있었다. 선은 디자인 일만 하면 된다고 역할을 전달받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단순 디자인 역할이 아니라 UI(User Interface) 설계 및 기획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용자들에게 화면 제안 및 설명 등을 하는 역할을 요구한 것이다.
선은 당시 그런 제안 및 설계, 기획 능력이 없었다.
매니저가 요구하는 역할을 해내기엔 선 스스로 부족함이 있었다.
선은 결국 그 계약직을 그만두었다.
매니저는 얼마 후 수수에게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다.
수수가 할 수 없는 역할을 수수에게 요구하였다.
수수도 얼마 후 그 일을 그만두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기에 둘은 공감하며 친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계약직으로 일하니 수다 떨 수 있는 소재는 다양했고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선이 수수 집에 오랜만에 놀러 왔다.
돌아가는 길에 선이 말했다.
‘나 이혼했어.’라고.
수수는 순간
‘뭐? 언제? 왜 말 안 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폭삭 포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선은 차에 타면서
‘신랑이 나 몰래 주식을 해서 돈을 엄청 잃었어. 집도 날아갈 판이니까 신랑이 먼저 서류상 이혼을 하자로 하더라고. 나도 그때 알았어. 신랑이 빚이 잔뜩 있는걸.’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신랑은 처음엔 그냥 서류상으로만 이혼하고 정리하면 다시 합치자고 했어. 근데 난 싫더라고. 그래서 그냥 애한테 상황 이야기하고 헤어졌어.’
수수는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잘했어. 빚이 많으면 힘들어. 너 시어머니 때문에도 힘들게 했잖아.’라는 정도의 말이었다.
선은 그날 그렇게 폭탄 발언을 던지고 갔다.
얼마 후 수수는 선과 점심을 먹기 위해 선의 회사 근처로 갔다.
당시 선은 계약직으로 돌아다니는 게 좀 힘들어 정규직으로 입사하여 한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선이 다니던 곳은 서울 선릉역 근처였다.
수수는 당시 일을 안 하고 있었기에 선을 만나러 나갔다.
선과 수수는 선릉역에서 만났다.
큰 대로변에서 뒤쪽 맛집이 많은 거리로 옮겨갔다.
골목을 돌면서 무얼 먹을지 고르고 있었다.
‘뭐 먹고 싶어? 여기 맛있는 곳 많아. 백반 같은 거 괜찮으면 밑반찬 정갈하게 나오는 식당 있어. 거기 갈래?’
‘그래, 아무거나 괜찮아. 밑반찬 맛있으면 밥 많이 먹겠네.’
둘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근황을 다시 물었다.
선은 남편과 이혼한 지 이미 좀 되었고 집도 아이도 모두 적응을 하였다 했다.
수수에게 말했을 당시 이미 모든 서류 및 집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선은 수수에게 그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선은 수수가 좋다고 항상 말했다. 수수는 선과 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친하다는 경계선이 어딘지 어떤 이야기를 서로 나눴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그 순간 수수는 생각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어떤 것을 혼자 고민하고 끝낸 것을 들어줘야 했다.
수수가 생각했다.
‘선과의 관계에선 결정 전에 이야기를 나눠 줄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나’라고.
물론 선과 수수가 미리 이야기했다고 선의 상황이 바뀌었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혼이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근데, 유독 결혼에 대해선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다.
어떤 법적, 아니 남들 앞에서 ‘우리 결혼해요’라고 공표한 관계를 파기하기를 어려워한다.
부모의 세대엔 대부분 이혼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식도 그 영향을 받아 이혼을 어려워한다. 안 맞으면 헤어질 수 있다.
누구나 모든 것에 정답을 찾지 못한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특히, 부부관계는 더 어렵다. 수수가 생각할 땐 한국에서는 더욱 어렵다고.
결혼이 그냥 둘만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유독 양쪽 집안이 엮어진다.
부부, 두 사람이 좋아서 결혼해도 양쪽 집안의 가족과도 무조건 맞추라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서로에게 맞춰가는 대도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결혼해서 함께 살아가는 대도 맞춰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둘만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도 연결되어 맞추라고 강요한다. 이런 결혼을 수수는 싫어한다. 관계의 확장이 쉽지 않은 데 그걸 강요하기 때문이다.
수수의 결혼에 대한 이런 생각으로 이혼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으면 우선 해보고 이혼하라고 권할 정도이다.
뭔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이들이 실제 생활은 다름을 알게 되길 바란다.
결혼에 따른 관계 확장을 고려한 생활이 필요하다. 준비를 하면 맞춰가려는 마음가짐이라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환상만 가지고 있으면 그 마음가짐을 갖기 어렵다.
그땐, 실수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상처를 더 주기 전에 헤어지는 것도 방법이라고 수수는 항상 생각한다.
선은 수수에게 몇 년 후에야 이혼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최종 결정을 내리고, 결혼을 마무리한 이야기를 했다.
수수는 선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선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만 들어줬고 일상적인 이야기만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남에게 잘 보이고 싶지도, 보이지도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수수 역시 그랬다. 그걸 끄집어내기까지 수수도 시간이 걸렸다.
자신이 그걸 인정하고 목격해고 용기를 내야 자신 속에서 꺼낼 수 있다.
자신이 받아들이고 구체화시켜 어떤 것인지 실체를 알게 되기 전까지 자신도 꺼낼 수 없다.
수수는 선이 그랬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스로 자신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어지고 입으로 내뱉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선은 수수가 그냥 그렇게 기다려 준 그런 모습을 좋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수는 힘들 때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이란 생각도 했다.
수수는 선과의 친하다는 의미와 그때 공유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도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