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은 처음이라

이지환 장편소설

제목 : 재혼은 처음이라

지은이 : 이지환

출판 : 동아

재혼은 처음이라

“그는 지금껏 정원의 가족들만큼 따뜻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정원과 결혼을 함으로써 승주는 자신의 집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가족을 갖게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에 가장 들어맞는 가족, 서로 안아주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고 이해해 주고 눈물을 닦아 주고 경청해 주고, 무엇보다 서로 있는 힘껏 사랑하는 사람들.

정원과의 짧은 연애와 결혼 생활을 거치면서 승주 자신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깨달았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논현동 처가에 들어서면 승주는 자신이 무엇을 빼앗긴 채 지금껏 성장해 왔는지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평창동에서 살 때 난 한 번도 그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족이 아니었어. 그냥 관리되고 사육되는 존재였지.’

‘공부 잘하고 착하고 잘난 아들’이라는 어머니 나서희 여사의 욕망이 만들어 낸 한갓 종이 인형이었을 뿐이었다.” p297 첫권.


가족이란 의미를 재정의하고 내 가족에게 내가 정의한 의미를 투영하여 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던 중에 이 소설을 읽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많은 곳에서 자행되는 폭행, 학대가 있다. 그중에 부모가 자식을 자신의 인형으로 착각하며 마음대로 조정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남자 주인공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고, 가족이란 모습을 자기가 경험한 것과 다른 느낌을 여자 주인공의 가족에게서 받았다.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모른다. 단란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의 모습이어도 그 안에 머문 자신이 그렇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이 인형처럼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왔는데 그 역시 모를 수도 있다. 너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았으면 그 모습이 너무 당연하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잣대로 자신이 경험한 것을 판단한다. 가끔은 그 판단의 잣대가 틀릴 수 있다. 그래도 그 누구도 그 잣대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잣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느끼고 받아들이는 강도의 차이도 존재한다. 예민한 이는 아주 작은 스침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실이 참 어렵다.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난 가끔 쉬운 소설을 집어 든다. 이 책 역시 그런 마음에 도서관에서 빌렸다.

짧은 3개월의 연애, 9개월의 결혼 생활과 이혼, 3년 후 다시 시작하는 주인공들. 이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의 인물들이 주인공들을 보면서 함께 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러면서 작가는 가족이란 의미를 전달한다.

‘가족’ 이 두 단어의 무게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나이기에 아마도 그 어떤 끌림으로 읽게 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족이란 명분으로 내 자식이란 이름으로, 내 부모란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요구한다.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혈연관계를 내팽개침으로 패륜이 된 나다. 나는 패륜아다.

그러면서 내가 이룬 가족에 충실하고 싶은 이기적인 인간이다.

내게 혈연이었던 이들의 관계에서 나 역시 얻은 가족이란 의미가 있었고, 내가 이루고 지켜가는 관계 속에서 정의한 가족의 의미가 있다.

나는 지금 내가 정의한 가족의 의미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더 나이를 먹고 내가 더 성장했을 때 이 의미가 또 바뀔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정의한 가족을 위해 나는 살아가 보려고 한다.

가족_사진 Unsplash의Natalya Zaritskaya.jpg

스스로 정의한 '가족이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믿고 응원하는 관계이다. 가족이란 존재하는 자체로 힘이 되고 행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절대적 지지자이며 사랑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내 가족에게 이런 존재가 되고 싶다.


소설을 써 내려간 작가는 아마도 여자 주인공의 가족관계를 이리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 주인공을 그 속에 넣어가며 사랑을 배우고 자신을 깨닫고 알에서 나오도록 유도했다. 잘못된 가족의 그늘이 한 인간을 내적으로 얼마나 망가트릴 수 있는지도 표현했다. 알코올중독과 치료, 우울증을 벗어날 때까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 만들어진 모습의 자신과 원래의 자신 모습과의 괴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몸부림.


인간은 태어나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나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부모와 주변과 구분한다.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와 떨어지는 몸부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신체는 따로 존재하나 정신으로 독립해 나가는 시기가 사춘기다.

이 시기를 잘 보낸 이들은 온전한 자신으로 선다.

근데, 이 시기를 잘 보내기가 참 어렵다. 부모도 놓지 못하고 성장하는 이들도 어떤 것이 독립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인격체로 신체, 정신과 더불어 이후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것을 혼자 해 나가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생활을 홀로 서서 잘 하다가 그 누군가를 만나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땐 서로 기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가족을 또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볍게 읽겠다고 시작한 소설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소설의 한 부분이 잔상을 남기며 생각에 꼬리를 남기며 계속 사색하게 하고 내게 이런 결론을 내리게 한다.


보살핌과 사랑 속에 살다가 그 따뜻한 울타리를 벗어난다.

혼자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하며 홀로서기를 이룬다.

홀로서기를 온전히 이루어 낸 둘이 만나 또 새로운 울타리를 만든다. 그 속에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보살피고 사랑을 준다. 어쩌면 이런 삶이 지금까지 인류가 해 온 삶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태어나 온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수 있던 이들은 그 당시의 복을 타고 난 것이겠지란 생각도 든다.

홀로서기를 하는 순간부터는 자신의 운으로 살아가는 시작이다.

어쩌면 이때부터가 진실한 자신의 삶이 아닐까? 내게 주어졌던 상황과 혈연관계는 바꿀 수 없었으나 내가 만들어가는 관계는 바꿀 수 있을 않을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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