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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곰 Mar 07. 2022

나의 첫 입학식

나도 손을 흔들어주고 싶었어 




딸의 입학식 전날, 나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어두컴컴한 천장에 누군가 빔을 쏘듯 문득문득 생각나는 장면들이 사진처럼 지나갔다. 그건 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날의 기억이었다.


당시 30대 중반이었을 엄마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걸었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좋았던 것 같다. 교문을 지나 큰 운동장을 마주했을 때의 떨림, 나무 냄새가 진하게 나던 복도를 지나 교실문을 열고 들어갈 때 엄마의 손을 놓았는데 살결이 사르르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이 선명하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는 담임 선생님과 악수를 나누며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선생님 한번 창밖에 서 있는 엄마 한번 번갈아 보면서 긴장을 풀었다. 엄마는 창밖에서 그런 나를 바라보며 연신 손을 흔들었다. 엄마가 그때만큼 날 보며 환히 웃어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사진은 여기서 끝이 난다. 이게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의 장면들이다. 문득 언젠가 나도 아이를 낳아 입학식에 가게 된다면 창밖에서 손을 힘껏 흔들어 줘야지, 하는 다짐을 했던 게 생각이 났다. 8살짜리 아이의 눈에는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좋은 엄마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내 딸의 눈에 나는 어떤 엄마로 보이게 될까, 첫 입학식 날의 장면을 어떻게 기억할까' 이런 생각들로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연년생 오빠의 입학식을 경험한 터라 좀 여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딸이라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보냈을까. 궁금하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는 이 마음. 아직은 그런 대화가 어색한 사이라 나는 조급한 마음을 붙잡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다 나는 8살이었던 내 옆에 앉아 꼭 안아주는 영상을 천장에 빔으로 쏘아봤다. 짝꿍이 된 나는 '입학을 축하해. 학교는 즐거운 곳이야. 새로운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한대. 6년 동안 즐겁게 지내길 바라' 하며 두 판을 크게 벌려 축하해 줬다. 엄마가 해주지 못한 말들을 어른이 된 내가 8살의 나에게 해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칼 라손_꽃을 든 소녀



코로나로 인해 학부모들은 복도까지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운동장에서 딸을 꼭 안으며 '즐거운 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축하해'라고 말해줬다. 딸은 '응'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씩씩하게 걸어갔고 나는 아이의 뒤통수를 보며 끝까지 손을 흔들었다. 거친 바닷가로 시집와 외로워했던 어린 내 엄마가 나에게 손을 흔들어줬던 것처럼, 나도 내 딸이 보든 안 보든 그렇게 연신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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