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바이 편 게이트로 매니저 빨리 와 주시기 바랍니다. “
무전기가 시끄럽게 매니저를 찾아댄다.
극성맞을 정도로 공항은 극성수기로 접어들었다.
넘쳐나는 승객들을 태우려는 비행기들의 열기로 공항은 가득 찼다.
나라는 누가 지키는지 8월 초의 인천공항은 전 세계로 떠나고 있었다.
유도로(Taxiway)의 항공기들은 밀려 있고, 항공기의 궁둥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8월의 햇살에 익어버린 활주로의 열기가 섞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든 게 더운 공항이었다.
승객이 많다는 것은 매니저 박 차장이 호출을 많이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차장은 남들보다 작은 키를 감추기 위해 회사에서 제공한 3센치도, 5센치도 아닌 7센치 구두를 신고 뛰어다닌다.
무전기에서 불러대는 탑승구는 뛰어다니다 보면, 발가락이 아프다 못해 허리통증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깔린 넓은 공항을 뛰어다녀 본 사람들은 눈알까지 올라오는 통증이 뭔지 알 것이다.
승객이 없는 구석진 아지트를 찾아 스타킹과 버무려진 발 꼬린내를 참으며 혹사당한 양족에게 휴식을 주고 있었는데,
젠장 또 호출이라니.
“ 롸저, 5분 안에 도착합니다. “
양족이 쉴 틈도 없이 다시 신고, 두바이 편 탑승구로 뛰었다.
두바이 편 탑승구에서는 이미 비즈니스석까지 만석으로 승객들은 모두 탑승을 완료하였고,
비행기를 마주 보고 있는 토잉카도 Push Back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게 순조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내에서 승무원이 다급하게 좌석에 대한 불만 승객이 항의를 하고 있으니, 빨리 매니저가 와달라는 것이었다.
‘ 여유 좌석도 없는데 어쩌라는 거지? ‘
5분 뒤면 출발을 해야 하는 비행기다.
박 차장은 승객 정보를 확인할 여유도 없이, 일단 3층 탑승구에서 2층 계단으로, 기내로 뛰어 들어갔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극성수기인 요즘 항공기들이 제시간에 나가지 못하면, 뜨거운 유도로에서 순서를 뺏겨 언제 이륙 허가를 받을지 모른다.
기내에서 도어 클로즈를 못하게 하는 승객은 중동의 석유 부자 같은 순백색의 옷차림에 오십은 너끈히 넘어 보이는 아랍 승객이었다.
외할머니의 옥반지처럼 큼지막한 금반지를 끼고 오버액션을 해가며 승무원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승무원은 죄인이 되어 두 손을 모으고 경청만 하고 있었다.
박 차장을 본 승무원은 구원자처럼 반기며 뒤로 물러났고, 박 차장은 승무원과 바통 터치한 죄인이 되어 자진해서 조아렸다.
뛰어서 헐떡대는 심장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오직 남은 3분 안에 항공기 문을 닫겠다는 각오로 그저 ‘쏘리 쏘리’ 하며 조아렸다.
생각해 보라!
만석인 좌석을 다른 좌석으로 바꿔 줄 수 없고,
승객의 불만을 찬찬히 경청할 시간 또한 없다.
‘죄송하다’는 답이 아니지만 당시의 최선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공항에 근무하는 항공사 직원들은 서비스 못지않게 시간에 민감하다.
약속된 시간 안에 항공기의 문을 닫고 토잉카가 비행기를 뒤로 푸시하는 순간이 그 업무의 마무리인 것이다.
“ 고객님, 죄송하지만 여유좌석이 없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탑승수속 때 받은 좌석으로 타셔야 합니다. 다시 한번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박 차장은 더 이상 정중하고 공손할 수는 없는 자세로 말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 내 와이프 옆 좌석에 낯선 남자가 앉아있다는 것은 용납될 수가 없어. “
박 차장은 그때까지 몰랐다.
그가 네 명의 와이프를 거느리고 함께 타고 있었다는 것을.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얼굴만 쏙 내놓고 같은 열에 앉아 있는 것을 그제서야 보게 되었다.
비즈니스석은 창가 쪽으로 두 좌석, 중간에 두 좌석, 또 창가 쪽으로 두 좌석이 붙어있는 보잉 777-300이었다.
네 명의 부인은 나이 순으로, 아니면 첫째 부인부터 남편옆에 앉은 것 같았다.
그중 제일 어려 보이는 미모의 부인 옆 좌석에는 40대 한국인 남성 승객이 넥타이를 풀고 짜증 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문득 뜬금없이 어린 부인을 보니 예전에 읽었던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이 떠올랐다. 그냥 문득.
옆 좌석의 한국인 남성 승객은 왠지 본인이 한 달 전에 항공권을 구매하면서 예약한 창가 좌석이 불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두바이는 관광보다는 비즈니스로 가는 남자 승객들이 많다.
이코노미 좌석보다 비즈니스 좌석의 예약이 더 많을 정도로 돈 잘 버는 비즈니스맨들이 많이 타는 비행기이기도 하다.
그런 비행기가 만석인데 옆좌석에 남자 승객이 앉으면 안 된다니, 출발시간은 이미 지나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 고객님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만석이라 바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그냥 타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출발시간 이미 지났다고, 제발 그냥 타라고~~~.’
박 차장의 간절함이 부족했던 건지 그는 비행기가 지연이 되든 말든 내 알바 아니라는 듯 없는 좌석을 내놓으라며 또 금반지를 낀 두 손을 들며 항의를 해댔다.
흔들어대는 그의 손목의 황금 시계에서는 수갑 같은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이 상태로 계속 실랑이를 해봤자, 항공기만 더 지연시킬 뿐이다.
박 차장의 강단이 필요한 찰나가 왔다.
“ 고객님, 계속 이러시면 이 비행기를 타실 수 없습니다. 이미 설명을 드렸는데도 좌석을 바꿔 달라고 하시니 항공사에서 방법이 없으므로 그냥 이 좌석으로 타고 갈지, 하기 하셔서 다음 비행기로 가실지 선택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항공기는 더 이상 고객님으로 인해 지연을 시킬 수 없습니다. “
그리고 무전기를 집어든다.
“ 두바이행 게이트. “
“ 고어헤드. “
“ 좌석 문제로 10A 일행 총 5명 오프로드 합니다.
위탁수하물 위치 파악해서 하기하세요. “
“ 카피 ~ ”
승객의 짙은 큰 눈이 커졌다. 어마하게 커졌다.
그 눈이 박 차장에게 ‘‘감히 니가 나에게’라고 말하고 있었다.
관심 없는 표정으로 있던 승객들도 출발시간이 10분이 넘어가자 귀를 세우고, 시끄럽게 지직대는 무전기에서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목을 빼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박 차장은 아랍 승객이 남들의 이목이 불편해서라도 그냥 여기서 멈추고, 조용히 타고 가길 바라는 마음에 무전기 볼륨을 살짝 올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미모의 넷째 부인 옆에 앉아있는 한국인 승객은 잘못이 없음에도 점점 좌불안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랍 승객은 짙은 눈썹만큼이나 진짜 고집이 센 것 같았다.
그래도 주변의 시선은 불편했는지 박 차장을 조용히 손짓으로 가까이 오라고 부른다.
그러더니 귓속말로 속삭인다.
“ 니가 종교를 알아? “
“ … “
순간 박 차장은 멍해졌다.
생각에 따라 무서운 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타인의 종교를 존중해 달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종교로 인해 항공기 테러까지 위험을 받는 시국에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넷째 부인 옆 좌석의 한국인 남성 승객이 박 차장을 부른다.
“ 저기요, 그 사람이 귓속말로 뭐라고 하길래 표정이 그럽니까? “
“ 니가 종교를 아냐고 묻네요. “
“ 나 참, 어이가 없네. 비행기를 전세를 내던지. “
“ 저기요, 내가 다른 좌석으로 갈 테니, 다른 여자 승객을 찾아봐요. “
승객은 기분 나쁜 얼굴로 케리어를 챙겨 일어났다.
박 차장이 내심 바라고 있던 바였다.
한국인 승객에게 차마 다른 좌석으로 바꿔달라고 말을 못 하고 있었을 뿐인데, 승객이 자진해서 바꾸겠다니.
수하물을 하기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으니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일분일초가 미친 듯이 아쉬운 상황이 아닌가.
박 차장은 냅다 아까부터 눈여겨봐 둔 혼자 여행하는 것 같은 여성 승객에게 솔직하게 동정을 구해본다.
“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히잡을 두른 저분들이 종교적인 문제로 남성 승객과 나란히 앉을 수 없다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10J 창가 좌석으로 변경이 가능하신지요? “
아랍 승객의 떠들어대는 소리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11D 복도 좌석에 있던 덩치 좋은 외국인 여성 승객은 쿨하게 창가 쪽 좌석으로 이동해 주었다.
“ 두바이행 게이트. “
“ 고어헤드 “
“ 캐빈 상황 클리어 됐으니, 수하물 재탑재 하세요.
도어 클로즈 하겠습니다. “
박 차장은 좌석을 양보해 준 승객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랍 승객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소심한 복수로 굽신거렸던 자존심에 약간의 위로를 주며, 기내에서 나왔다.
그렇게 두바이행 항공기는 출발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문이 닫혔다.
정말이지 멀쩡한 비행기를 단순히 승객 한 명의 불편으로 지연이 되는 건 매니저로서 정말 부담스럽다.
물론 불편하니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알겠지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죄송하다는 말로 정리를 해야 하는 매니저의 위치가 초라해진다.
은행이 사준 아파트도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자존감이 훅하고 떨어진다.
하지만 현실을 금방 수긍해야 하는 게 현대인 아닌가.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발가락이 다시 아프다.
내일 당장 3센치 구두로 신청해야겠다.
참, 이슬람 종교를 알아둬야 하나???
면세점 에르메스 매장 안에 히잡을 두른 승객이 두 개의 가방을 거울에 비춰보고 있다.
가방은 갖고 싶지만, 넷째 부인은 되고 싶지 않은 독신의 박 차장은 지금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양이 감당할 수 있는 질량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