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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Dec 05. 2023

다이어터 or 유지어터

긴 겨울로 접어드니, 동면에 들어가려는 곰처럼 뚱마의 몸도 월동 준비를 하려고 한다.

많이 먹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자꾸 찌는 건지, 아마 나잇살인 것 같다. 진짜다.

뚱마는 폭식은 가끔 해도 과식은 하지 않은데, 참 이상하단말이다. 진짜다.


 회사 유니폼 재킷의 단추가 터지려고 한다. 오른쪽 팔뚝이 더 굵어 단추가 한쪽으로 쏠려있어 몹시 흉하다.

더 이상 나에게 맞는 유니폼은 없다. 조만간 유니폼 안 맞아서 퇴사해야 하는 행운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유지어터는 안된다.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유니폼이 숨 쉴 공간이 시급하다.




실행 가능한 계획, 딱 2주만, 보름만 해보자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무조건 굶는 다이어트는 기운 딸리고, 금세 요요현상이 일어나니, 건강하고 간단한 식단으로 도전해 봐야겠다.


메인 식사는 오트밀에 무가당 요거트와 바나나, 블루베리를 넣어 먹는 것으로 정하자. 물론 하루에 딱 한 끼만 먹어야 한다.

단백질도 중요하니, 삶은 계란을 준비하자. 완숙은 퍽퍽하니 반숙으로 주문해야겠다.

소식으로 변비가 생길지 모르니, 사과는 넉넉하게 한 상자 주문해야겠다.

아몬드는 빼먹으면 안 되지. 나이 들면 오메가가 참 중요하단 말이지.


완벽한 구성이다.

그럼 주문을 시작하자

한시가 급하니 로켓배송으로 주문한다.

오트밀은 유효기간이 간당간당한 새것이 그대로 있으니 패스, 유통기간 지난 아몬드는 그냥 먹자.

짬쪼롬하니 맛있는 반숙계란 한 판,

가격대비 양 많은 미국산 냉동 블루베리 한 봉지,

바나나 한 묶음,

사과 한 상자, 그리고, 또 뭐 없나? 오케이 요기까지 주문완료.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댔는데 , 뚱마의 새벽 출근에도 오지 않은 배송은 로켓이 경로를 이탈했나 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공항에서 다양한 고객을 오랜 세월 대항해 온 뚱마는 웬만한 것에는 컴플레인을 하지 않는다. 약간 열받는 일이 생기더라고, 살짝 억울한 일이 생기더라도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스스로를 누르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 뭐 그럴 수 있지 ‘ 하며  몸매만큼 마음도  넉넉하려는 노력파이다. 세상사 낱장도 손해 보기 싫어하면 승질만 더러워지고, 딱히 남는 것도 없더라.


완벽한 식단조절의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 위장을 달래주는 선 치팅데이를 먼저 하고 , 내일부터 건강한 식단의 다이어트를 실천하자.

치팅은 치킨이지~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중간한 시간에, 아점으로 핫크리스피 버거와 웨지 감자를 먹으며 콜라를 쪽쪽 빨고 있는데, 경로를 이탈했던 로켓이 잘 귀환했다는 알림을 받는다.

드디어 시작인가, 대단한 각오로 퇴근을 했는데, 어라 택배 상자들이 없다.


뚱마보다 먼저 하교한 쌍둥이에게 묻는다.

" 호, 한아~ 배달 온 거 봤어?"

" 네 엄마, 제가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어뒀어요."

역시 착한 지한이다.

어쩜 저리도 자상할까, 착하고, 키도 크니, 공부만 잘하면 참 좋은데, 아까운 인재다.


" 엄마, 그거 먹는다고 살 안 빠져요. 코끼리도 풀만 먹는대요. 너무 많이 시킨 것 아녜요?"

까칠이 지호가 시비를 건다.


고기보다는 야채와 과일을 잘 먹는 뚱마를 보고 지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 엄마, 코끼리랑 브라키노랑 엄마랑 닯은게 뭔지 알아요?"

"뭔데?"

" 다아 풀만 먹는데 양이 엄청나요. 그리고 다아 커요."

"..."


냉장고에 시킨 품목을 확인하는데, 어라 반숙 한판과 사과 한 상자가 보이지 않는다.


" 지한아, 계란하고 사과는 어딨어?"

" 아 그거 계란은 계란 칸에 넣었고요, 사과는 아래 칸에 넣었어요."


헉! 반숙이가 생계란이 꽉차 있는 칸에 섞여 있었고, 사과는 한 상자 전부를 아래 냉동칸에 넣어, 돌멩이로 변신 중이었다.


" 야~ 서지한! 너! 진짜! 계란을… 섞으면… 사과.. 냉장 아니 냉동에...‘

"... 죄송해요."

뚱마는 너무 놀라서 말도 버벅댔다.


“엄마, 금방 포기할 거면서 지한이한테 화내지 마요.”

이럴 때만 형 역할을 하는 얄미운 지호 녀석이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는 내 몸을 생각해야한다.

예전처럼 계획만 거창했던 다이어트가 아니라,

실천가능한 건강식단으로,

약간의 숨구멍만 늘리기 위한 가벼운 다이어트란 말이다.


계란은 한 알 한 알 흔들어 반숙을 찾아내서 분류하고, 사과는 뭐 답이 없으니, 일단 냉동고에 그대로 두기로 한다.



나름 궁합이 맞아야 뚱마는 다이어트를 시작할 수 있다.

변비의 고통은 위험하니, 다시 사과를 주문한다.

생각해 보니, 낱개 포장되어 있는 세척 사과를 주문을 해서, 식사대용으로 먹는 게 좋을 것 같다.

공항에서 일하다 보면 식사시간이 불규칙하다. 늘 때를 놓쳐 허겁지겁 먹는데, 잠시 짬이 있을 때 사과로 진정시켜 폭식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무가당 요거트도 추가해서, 다시 로켓의 배송을 믿어본다.


" 지한아, 아랫칸은 냉동칸이야. 내일 사과 다시 배달 오면 위칸 냉장칸에 꼭 넣어줘, 알았지?"

" 네~ 걱정 마요. 이젠 안 그래요."

역시 착한 지한이다.


다음 날 잘 도착한 사과들은 다행히 냉장칸에서 개별 포장지가 전부 뜯긴 채 수줍게 모여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멍하니 서 있는 뚱마의 뒤통수에, 착한 지한이가 기분 좋게 날린다.


" 엄마, 이번에는 제대로 넣었죠? 제가 엄마가 드시기 편하라고 비닐도 다 벗겨내고 잘 넣어놨어요. 비닐은 재활용으로 분류했어요 잘했죠? “

"..."



느낌이 좋지 않다.

아군이 없다.

아~ 스트레스! 급 뭐가 땡긴다.

얼큰한 국밥에 맑은 새로 한잔 생각나는 기나긴 겨울을 유지어터라도 할 수 있을런지.

난 사실 처음부터 다이어트를 할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닐까?

자신이 없어진다.


현명하게 내일 출근하면, 일단 외국인 마담 사이즈로 유니폼 신청은 해 둬야겠다.

돈을 벌어야지, 벤츠안에서 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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