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이 Dec 08. 2023

단체 목욕날~


양손 가득 쌓인 쓰레기봉투를 들고 겨우 현관문을 겨우 열었는데,

뭐가 발 밑으로 휙 지나간다.


다람쥐 같은 녀석 쫑이가 탈출에 성공해서 개 신나하며 엘리베이터 앞에 먼저 가 있다.

어찌나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지, 저러다가 조만간 혼자 엘리베이터 버튼도 누를 것 같다.

양손 모두 쓰레기 봉투를 잡고 있는 뚱마가 발로 휘휘  훌치며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녀석은 요리조리 잘도 피하더니, 결국 뚱마보다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오늘도 뚱마가 졌다.

개끈 없이 자유를 만끽하며 아파트의 잔디밭에서 신나게 뛰고 있는 녀석을 지켜보고 있다가, 진짜 아주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녀석이 사라졌다.





놀란 뚱마는  쫑아~ 쫑! 하며 잔디밭을 쿵쿵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대니,  녀석이 분수대에서 얼굴을 쏙 내민다.

안심되는 마음도 잠깐이고, 빠진 녀석을 보니 꼬시다 싶었다.


다행히 물은 없는 분수대였지만, 쫑이에게는 너무 깊은 곳이라, 뚱마에게 SOS 치는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한컷 찍어둔다.

빠져서 낑낑대는 모습이 안쓰러워야 하는데 귀여워서 잠시 내버려둔다.

손자도 아닌데 핸드폰에 이 녀석 사진이 너무 많다. 막내라서 그런가?

미운 짓을 해도 결국 뚱마를 미소 짓게 만드는 녀석이다.

커피콩만 한 똥도 귀엽고, 쉬 하는 모습도 귀엽다.

전생에 손자였나?


개 신나게 뛰다가 붕~ 날아서 퐁 빠졌을 모습을 상상하니, 쓰는 이 순간에도 웃음이 나오지만,

사람이나 개나 새끼는 한시도 눈을 떼면 안 된다는 걸 새삼 깨우친다. 다치기라도 했으면, 그 죄를 뚱마는 어찌했을까.






녀석을 건져? 안고 있자니, 꼴이 꼬질꼬질한 게 아무래도 오늘은 꼭 목욕을 시켜야겠다.

녀석들 추울까 봐 안 씻기고,  꼬리꼬리한 냄새도 외면하며 미루었던 단체 목욕을 오늘은 꼭 해야겠다.


오래간만에 보일러 작동시키고,

발바닥 털과, 똥꼬 주변 털을 바리깡으로 밀고,

따순 물에 단체로 담궜는데, 역시나 단체로 싫단다.

괜히 호기롭게 네 마리 다 물에 넣었나 보다, 개판되기 전에 빨리 건져내야 한다.


작은 놈들부터 순서대로 멍이까지,

똥꼬 짜고, 씻기고, 말리고, 똥꼬 짜고, 씻기고, 말리고, 또, 또 하고 나니 정신이 혼미하다.




 



다 씻기고 나니 녀석들 털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나른해서 모두 개 뻗으셨고, 뚱마는 체력이 방전되어 저녁 밥 할 기운도 없다.

탱이 사진은 왜 없는지...


“아들, 탱이 사진은 왜 안 찍었어?”

“목욕도 도와주고, 사진도 찍으라고하면 너무 정신 없어요. 몰라요 탱이는 이불 안에 있어요. 엄마가 찍어요.”

“ 맞아요 네 마리를 왜 한꺼번에 씻겨요?”


쌍둥이가 또 쌍으로 항의한다.

그래,  네 마리의 단체 목욕을 도전했던 뚱마의 실수를 인정한다.

목욕 도우미들에게 특별식을 시켜줘야겠다.


“ 아들~ 오늘 저녁은 국밥 시켜 먹자!”

“ 네, 좋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뚱마는 쫑이의 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