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받았다.
"독일 유학은 정말 입학하기 쉽고 졸업은 어려운가요?"
나도 유학을 떠나기 전,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한국 대학 리포트는 미국 고등학교 수준이고, 미국 대학 리포트는 독일 고등학교 수준이다"라고 극단적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먼저 나는 독일에서 석사만을 경험했기 때문에 학사과정은 어떠한지 전혀 알 수 없음을 밝힌다. 한국도 학부와 대학원이 위상과 내용에 있어서 같은 대학일지라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쉬이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 대학원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먼저, 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독일 유학에서 생존해온 사람으로서 위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마디로 요악하자면 "입학하기는 쉽지 않고 졸업은 더 어렵다"이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사람의 경험이라는 것이 객관적이지가 못할 때가 많아 다소 저 표현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다.
입학을 위한 과정은 바로 앞 글에서 상세히 적었다. 준비할 것도 많고 시간도 그만큼 오래 걸린다. 대학 입시에는 다소의 경쟁이 있다. 유명 대학 인기 학과일수록 당연히 입시 경쟁률도 높다. 특별히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뽑는 풍토도 독일 대학 내에서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우리 학교의 경우 데이터에 의거해 학위 과정 25명을 뽑는데 183명이 지원했다고 돼있다. 정확히 몇 년도 데이터인지는 모르겠으나 7:1은 넘는다. 외국인의 비중은 절반 정도이고, 내 동기들의 경우 그들 중 대부분이 DAAD 혹은 정당 장학생이었다. 고로, 인풋(input)이 상당히 높다.
나 또한 유학을 준비하기 전 그런 안일한 생각에 뮌헨대학교에 지원했으나 현장에서 입학시험을 치른다는 초유의 예외 사태를 만난 뒤 고배를 마셨다. 기본적으로 수학이 나오면서 많은 점수를 잃었다. (여기서 미분을 배우지 않은 한국의 7차 교육과정의 한계를 여지없이 느꼈다.) 그 후 진지한 마음으로 입시 준비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 졸업은 쉬운가? 마찬가지로 데이터에는 79%의 학생들이 2년 만에 졸업을 한다고 돼 있었다. 25명의 학생 중 약 18명 미만의 학생이 졸업을 한다는 말인데, 이는 내 동기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듯하다. 졸업을 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 사유는 보통 공부가 어려워 중도에 학위과정을 포기하거나, 원하는 곳에 취직이 되어 공부를 그만두거나, 그것도 아니면 휴학을 하거나 학 학기 미뤄 논문을 좀 더 여유롭게 쓰고자 함이다. 1학기 이후 공부가 힘이 들어 두 명의 동기들이 자퇴를 했다. 공부의 양이 너무 많아 부담을 줄이고자 한 학기 졸업을 유예함으로써 분산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학사과정을 충실히 따라 학점을 채우며 제 때에 졸업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가 독일 내 정치학 대학원 순위 1위를 수년간 놓치지 않고, 공부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것을 감안할 때 다른 학교와 다소 차이가 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독일은 공통적으로 공부를 따라가기 쉽지 않은 특성을 가진다.
첫째, 독일은 한국과 달리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대학에 온다. 국가의 시스템이 대학을 가는 고등학교와 그렇지 않고 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도록 교육하는 고등학교로 나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독일의 고등교육 수혜자가 20%가 조금 넘는 수치였다. 거의 대부분이 수능을 치고 대학을 가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분위기다. 이를 통해 독일 대학 구성원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상향 평준화돼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둘째, 독일 대학의 공부 방식은 공부 자체의 스탠더드를 따른다. 한국의 명문 대학들도 학부생들에게 편의를 이유로 졸업 논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학원에 비해 학부생들에게 '뭐 그런 것까지 요구하냐'는 생각이 팽배한 듯하다. 그러다 보니, 논문의 주석도 달지 못하는 학부생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반면, 독일은 학부생들도 학자(scholar; scientist)라는 의식을 스스로 가질 정도로 공부 자체를 틀에 맞추어 제대로 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학부과정의 난이도가 대학원보다 낮은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리포트가 적당히 짜깁기해 적당히 논리적인 글을 만드는 것이 주라면 독일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술적 글쓰기의 틀을 정확히 준수하는 것이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공유돼 있다. 여담으로 학부 때 뮌헨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함께 수업을 들은 친구가 리포트를 잘 내고도 '표절'을 이유로 F를 받은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표절을 한 것이 아니라 각주를 제대로 달지 않아 그런 사달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한국보다 독일에서 훨씬 더 글 자체의 구조와 논리를 더 강하게 강조하며 실제 평가에서도 기초가 된다.
셋째, 유학 자체가 고통이다. 언젠가 브런치에 썼던 말인데, 유학은 공부 자체와의 싸움 중 모든 익숙하지 않은 것과의 싸움이라고 비유했다. 해외 유학은 그 자체로 외롭고 힘든 과정이다. 나를 교환학생에 추천하셨던 학부시절 교수님께서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네, 되도록이면 한국에서 석사를 하고 독일로 가 다시 석사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한국에서 석사를 하고 미국으로 정치학 박사과정을 하러 간 한 선배의 말도 비슷했다. 그 이유는 한국 석사과정에서 우리말로 편하게 먼저 많은 토론을 하면서 내용을 배워야 해외에 가서도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 독일에서 공부를 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영어든, 독일어든 대학원 과정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모르는 것을 찾고 논리를 뒤집어 보기도 하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며 토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의 의미도 없을뿐더러, 자기만의 탄탄한 논리를 구사하는 글을 써내기 어렵다. 하다 못해 통계기법을 사용할 때에도 그 방법론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바로 독일로 떠났다. 그리고 해냈다. 어떻게든 버티면 버텨지는 것이 또 유학 생활이다. 비록 그 후유증이 체력과 정신력에 다소 남아 휴식과 재충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 자가격리 중인 나의 심정이다.
독일로 떠나기 전 베를린 자유대 출신의 한 박사님과 식사를 했다. 연구소에서 일하시며 우리 학교로 강의를 나오신 분이셨는데,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여전히 뇌리에 박혀있다.
"수업 때처럼 공부하면 독일 가서 공부하는 거 큰 문제없을 거예요."
따라서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쉽지 않은 요소들이 도처에 깔려있지만 버티고 버틴다면 버텨지는 것이 또 유학이기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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