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상남 Oct 20. 2019

독일의 헌법 기본 구조를 엿보자

Verfassung? Grundgesetzt! 

헌법의 한 국가의 통치이념과 기본적인 법치에 관한 골조를 담는다. 헌법은 그 국가의 최상위 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 법률, 령 > 조례 등 그 위계질서가 정해진다. 만약 법률이 제정되면서 헌법의 규정이나 헌법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 심판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다. 사실상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헌법을 'Grund+Gesetzt = 기초 + 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유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도 일컬어지는 독일은 어떨까? 우리나라가 대륙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인지 그 구조가 대동소이하다. Verfassungsgericht (헌법재판소)를 필두로 그 위계질서가 정해진다. 종종 신문기사에도 우리나라처럼 헌재의 중요 판결들이 소개되곤 한다. 독일은 정치교육이 정말 잘 설계돼 있다. 어릴 때부터 정치를 배우고 실천한다. 우리나라처럼 가족들에 의해 이념이 전해지고, ~카더라에 의해 정치적 소신이 얼떨결에 생성되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배운다. 치열한 토론과 실천을 통해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실생활에서 배운다. 그 일례로 독일 연방정부 산하에는 Bundeszentrale fuer politische Bildung (BPB)라는 부처가 존재해 각 정당 및 종교 재단과 더불어 정치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헌법은 그 국가의 기본적인 구성 원리와 통치이념 등 정체성을 담고 있다. 한 번 우리 과거를 돌아보자. 우리는 헌법을 배운 적이 있는가? 아마, 사회시간에 배운 기본권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헌법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라, 그저 어느샌가 존재하는 기본원리라고 나열하며 소개한 것이 전부다. 따라서 특별히 없다. 불과 3-4년 전부터 국가고시에서 헌법이 의무 과목으로 지정되면서 그나마 2030 청춘들이 헌법 전문을 들여다보고 조항들을 공부하며 내재된 원리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반면에 독일은 BPB에서 헌법 전문과 조항들을 담은 책자를 주기적으로 출판해 사회 이곳저곳에 배포한다. 나는 그들과 학창 시절을 공유하지 않아 정확한 커리큘럼을 알지 못하나, 분명 직관적으로 판단해도 우리나라보다 정치 전반에 대해 관심이 높다. 그러므로, 현실정치의 담론도 그만큼 체계적이고 이념적으로 뒷받침되며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독일 헌법의 기초를 조금 엿보도록 하자. 역시나 우리나라의 구조는 독일 헌법과 구조가 비슷하다. 전문(Präambel)으로 시작되는 독일 헌법은 주요 분야별로 I. Die Grundrechte와 같이 나뉘고 그 이하에 조항 (Artikel)이 몇 가지 존재한다. 



먼저 기본법 이하의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조항을 살펴보자. 

Artikel 1
(1) 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Sie zu achten und zu schützen ist Verpflichtung aller staatlichen Gewalt.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모든 국가 권력의 의무다."


두 번째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내용도 있다.


Artikel 5 
(1) Jeder hat das Recht, seine Meinung in Wort, Schrift und Bild frei zu äußern und zu verbreiten und sich aus allgemein zugänglichen Quellen ungehindert zu unterrichten. Die Pressefreiheit und die Freiheit der Berichterstattung durch Rundfunk und Film werden gewährleistet. Eine Zensur findet nicht statt.
"모든 이는 자신의 의견을 말로, 글로, 사진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소에서 방해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 출판의 자유와 방송 및 영상을 통한 보도의 자유는 보장된다. 검열은 일어나지 않는다."


8항에는 집회의 자유 (Versammlungsfreiheit)도 언급된다.

Artikel 8
(1) Alle Deutschen haben das Recht, sich ohne Anmeldung oder Erlaubnis friedlich und ohne Waffen zu versammeln.
"모든 독일인은 등록과 허가 없이도 평화롭게, 그리고 무기가 없이 집회를 할 수 있다."


조금 더 독일 연방의 통치 이념에 대해 깊이 들어가 볼까? 


II. Der Bund und die Länder (연방과 주)


Artikel 20
(1)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ist ein demokratischer und sozialer Bundesstaat.

"독일 연방은 민주적이며 사회적인 국가다" 


-> 여기서 핵심 이념은 '민주적'과 '사회적'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사회민주주의라고 일컫기도 한다. 독일에서 만난 헌법학자들에게 이야기를 물어보면, 이는 단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경제적인 조치가 정부에 의해 취해지는 수준의 '사회적'인 요소와 자유민주주의가 혼합된 형태라고 한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자유민주주의라고 명시되지 않았는데 어디서 자유를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자유가 명시되진 않았지만 모든 이하 조항들과 원리들 (예컨대 위에서 알아본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통해 자유의 원리를 추론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좀 더 강력하게 '자유'를 적음으로써 그 의미를 뚜렷하게 못 박았다 볼 수 있다. 


(3) Die Gesetzgebung ist an die verfassungsmäßige Ordnung, die vollziehende Gewalt und die Rechtsprechung sind an Gesetz und Recht gebunden.

"입법은 헌법질서에 의해 이루어지며, 행정부의 권력과 사법부는 헌법과 법률에 의거한다."

->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Artikel 79

(3) Eine Änderung dieses Grundgesetzes, durch welche die Gliederung des Bundes in Länder, die grundsätzliche Mitwirkung der Länder bei der Gesetzgebung oder die in den Artikeln 1 und 20 niedergelegten Grundsätze berührt werden, ist unzulässig.


마지막으로, 헌법 개정은 독일의 상하원의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이루어진다고 한다. 사실상 Bundestag과 Bundesrat의 양원제로 이루어지다 보니 우리나라에 비해 그 절차가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die grundsätzliche Mitwirkung der Länder bei der Gesetzgebung oder die in den Artikeln 1 und 20 niedergelegten Grundsätze berührt werden, ist unzulässig."라고 적은 부분이다. 


직역해보면, 헌법 개정에 있어서도, 헌법 1조와 20조의 내용은 불변하다고 못 박은 것이다. 대단히 강력한 조항이 아닐 수 없다. 그럼 1조와 20조는? 위에서 알아본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 보장과 통치이념인 자유민주주의 및 사회적인 국가 원리는 헌법이 존재하는 한 불변한다는 것이다. 


그럼 다시 전문(Präambel)을 보자.


Die Deutschen in den Ländern Baden-Württemberg, Bayern, Berlin, Brandenburg, Bremen, Hamburg, Hessen, Mecklenburg-Vorpommern, Niedersachsen, Nordrhein-Westfalen, Rheinland-Pfalz, Saarland, Sachsen, Sachsen-Anhalt, Schleswig-Holstein und Thüringen haben in freier Selbstbestimmung die Einheit und Freiheit Deutschlands vollendet. Damit gilt dieses Grundgesetz für das gesamte Deutsche Volk.


전문에는 다음과 같이 "바덴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 베를린, 브레멘, 함부르크 등등 (여러 주 지도자들이) 모여 자유로운 의사표현 속에서 자유와 통일의 독일을 완성했다"라고 언급됐다. 




나는 전공 수업으로 우리 헌법에 대해 대학에 와서 그나마 배울 수 있었다. 그 배경지식으로 독일 헌법을 보니 사뭇 유사하면서도 조금씩 다름을 이해했다. BPB 책자 속의 독일 헌법 개정 역사를 보니 우리의 개정 역사는 비교도 안될 만큼 자주 있었다. 심지어 동물권에 대한 새로운 조항도 헌법에 추가됐으며, 국제화에 대비할 수 있는 EU 및 국제법과 합치할 수 있는 조항들도 있었다. 대단히 유기적이면서도 능동적이다. 


마지막으로 세미나 말미에 헌법학자에게 물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과 여당 주도로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한다는 언론 기사가 났다. 그리고 종종 독일의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가 답했다.


"사회민주주의가 명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국가를 명시한 것이다. 조항에서 본 것처럼 자유민주주의를 보완하고, 단지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사회적 국가 원리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이 존재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덧붙였다. 우리나라 신문기사에 대해 한 마디를 던지며..


"굳이 왜 빼는데?"


그러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 정치인인 콘라드아데나워 초대 서독총리의 의회연설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노예와 자유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우리는 자유를 선택합니다!   -콘라드 아데나워-






p.s. 관련 기사를 아무거나 가져와 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