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코로나 악재 속에서 운동을 쉰 지 반년이 됐다. 코로나 전후 나의 체중은 4킬로가 쪘다. 어렵사리 14키로를 뺀 나의 살이 다시 도로묵이 될 판이다. 그나마 논문을 쓰며 주기적으로 산책을 했던 나의 몸은 자가격리와 한국의 장마로 더욱 퍼지고 있다. 육체의 건강은 다행스럽게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귀국 후 간단히 피검사를 한 덕분이다. 그러나 지금 내 문제는 정신력에 있다. 알 수 없는 두통이 나를 따라다니고 몸이 온도조절을 못하는 것은 스트레스 탓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쉽게 교과서에서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땀을 흘림으로써 스트레스가 발산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특별히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았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등 활동이 많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현대인의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는 것 같다.
나는 자가격리를 마치고 가족들과 짧은 시간을 보낸 뒤 서울에 정착했다. 이것저것 의욕적으로 일도 시작했고, 내 몸상태를 감안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지 않도록 여유를 가지고자 했다.
요즈음 예민한 나 자신을 보고 있다. 작은 외부의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나의 반응이다. 예전 같으면 인지하지도 못하고 넘어갈 집 안팎의 소음이 대단히 거슬린다. 무슨 징크스라도 걸린 걸까? 독일에서도 그렇고 서울에서 잡은 새집에서도 집이 아주 낮은 저음의 기계음이 울리는 소음에 시달린다. 애매하게 미세한 이 낮은 기계음은 주기적으로 울린다. 두-웅. 마치 세탁기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의 둥둥거림은 특히 예민한 나의 정신을 때리는 듯하다. 이 소리를 피하고자 그토록 노려했건만, 집을 구할 때 들리지 않더니 꼭 입주하고 나니 들린다. 화가 난다. 지금도 새벽에 잠을 잘 자다가 깼는데 새벽의 조용함을 틈타 기계음이 연일 때리고 있었다. 이 낮은 기계음이 한 번 들리기 시작하면 온 몸이 울리는 듯이 짜증스럽다. 다른 사람들이 컴플레인 없이 잘 사는 것을 보면 분명 내 몸과 마음의 상태에도 문제가 있긴 한 것 같다. 혹은 내가 독일에서 너무나 조용한 삶을 보내고 온 나머지 그런 환경에 익숙해 소음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 자신이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외롭거나 힘든 생각이 들 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이토록 아파가면서 정진하는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다 할 커다란 업적을 달성한 것도 아니다만.
나는 육체의 휴식보다는 정신의 휴식이 필요하다. 가족들과 있듯 무언가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포만감이 필요하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서 즐거움과 보람도 얻어야 한다. 연애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쫘악 갈라진 바닥과 같이 내 마음이 그렇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내 마음의 상태를 나는 알 수 있다.
당장 이 모든 요구사항들이 충족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방 어디선가 기계음이 둥둥거리며 울리고 있고 그 예민함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으며 이성친구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빨리 긍정의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운동밖에 없어 보인다.
땀을 흠뻑 빼며 다이어트도 하고 스트레스도 발산해야 할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절실함에서 비롯된 처방이다. 매일 걷기 1시간과 헬스 40분을 통해 하루를 위한 에너지를 얻었던 독일에서의 경험이 떠오른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할 때가 됐다. 한 달 정도 열심히 운동을 한 뒤 후기를 올려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