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주간의 자가격리를 했고, 다시 열흘이 지났다.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래서 그런지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며 지냈음에도 벌써 시간이 7월 말이 됐다. 나는 내일모레면 다시 서울로 향한다. 새로움을 불어넣기 위하여.
자가격리까지는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편안한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정신적, 육체적인 피로를 극한으로 느꼈던 나였기에 휴식이 휴식답지 못했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외출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종종 사람들을 만났다. 코에 바람을 넣기 시작하니 드디어 한국에 온 실감이 났다.
독일 유학을 하면서 부모님과 참 많은 통화를 했다. 이따금씩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기도 하고 전화도 했지만 직장생활에 치이며 바쁜 생활을 하는 몇몇 친구들을 내 생각만 하며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역시 가족은 최후까지 내 곁에 있는 존재다. 부모님께서는 농담 삼아 내가 서울에 가면 독일에 있는 것보다 더 멀어질 것 같다고 하셨다. 서울에 있으니 전화를 적게 할 것이고 그만큼 멀게 느껴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나는 자주 가족들과 전화를 했다.
고백하자면 그것이 내 유일한 돌출구였다. 나의 공부는 단순히 멍하게 앉아 시키는 것을 생각 없이 따라가는 공부가 아니었다. 여느 대학원이 다 그렇겠지만 독일의 교육이 괜히 한국 사람들에게 악명 높게 인식되는지 실감했다. 나 스스로는 아무리 그 생활이 적응이 됐다 해도 객관적으로 지쳐가는 스스로를 목격했다.
오늘 큰 집 식구들과 라운딩을 다녀왔다. 차를 타고 골프장으로 이동하며 사촌 형이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포함해 3년 반을 넘는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를 하니 깜짝 놀란 사촌 형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외로움도 사무치게 느꼈을 것이고 그런 이유로 일탈도 무지했겠네. 그렇지만 그만큼 많이 시련을 겪었으니 너는 크게 성장했을 거다."
사실 독일에서의 삶이 무진장 심심했던 탓에 일탈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쌓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유학생활을 회상하며 그것을 잘 마무리했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자문할 때가 있다. 물론, 스스로에 대해 목표하고 노력하며 버티고 성취했다는 점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의미이지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했다. 어려웠지만 그것은 누구나 겪는 것 같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에서 우러나와 내가 보낸 시간을 인정해주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으면 마음속 응어리 졌던 고뇌와 슬픔들이 치유되는 것 같은 짧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유독 이번 고향에서의 시간은 내게 그랬다. 처음 엄마와 테라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지막 학기 동안 행했던 내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공유했다. 참 재밌었다. 중학교와 대학교 동창인 친구를 만나 밥을 먹으며 직장인의 애환을 느꼈고,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을 궁극적으로 더 꽃 피우는지를 공유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치유받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에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요소가 내포돼있다. 하나는 인정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들어보았을 것이다. 작든 크든, 입에 발린 말이든 진심이든 나를 인정하는 말을 들을 때 누구나 기쁘다. 그것이 단순한 사람의 심리므로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단순한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이가 서른이 넘고 참을 수 있는 것은 참아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면서부터 오히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 해결력이 느는 만큼 더 큰 문제들이 다음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의 삶은 그 굴레에 있다. 누군가 진심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위로받는 것이고, 위로를 받기에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희망차게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관계는 필수다. 그 인정의 말도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나는 내 사람, 내가 속한 곳, 내가 조건 없이 환영받는 공동체가 있음을 느낄 때 안정감을 느낀다. 독일에서 학교를 다녔고 장학생 모임과 청년 정치모임도 열심히 나갔지만 알 수 없는 벽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친화력이나 언어와는 별개의 무언가였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외로움을 달래며 어색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있는 것도 결국은 마음 편한 곳에서 마음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생활로 나의 내공이 또 한 번 상승했다. 아직은 한국에서의 생활이 무언가 어색하지만, 내 눈높이와 시련에 대한 면역력 등은 분명 2년 전과 비교해 괄목할 만큼 성장해있다. 그것이 성공적인 유학을 통해 진정으로 얻은 값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예상치 않은 유예 기간이 다시 주어졌다. 나는 채워진 이 가슴을 부여잡고 새로이 일상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