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상남 Feb 13. 2019

방과 후 서비스(2)

의지의 소녀 -상

2010년의 일이다. 스마트폰이 갓 소개되는 시점이 이라, 연락은 아날로그 핸드폰의 문자나 전화를 여전히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첫 윈터스쿨을 마치고 나도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고3이 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연락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첫 학생을 맞이했던 나는 먼저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공부하기 바쁜 아이들을 혹여나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내적 갈등이 참으로 컸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오는 아이들을 막지도 않았다. 내가 무척 기다렸던 아이들의 연락이기 때문이다. 수십여 명의 학생들을 만났다. 개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연락을 하는 아이도 있었고, 시험을 칠 때마다 전화를 하는 아이, 뜬금없이 연락해서 '심심해서 해봤다'는 아이도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전화기를 들 때마다 느낀 그 반가움은 형용하기 어려운 기쁨이었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찾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감동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작은 노력으로도 커다란 감동을 줄 수 있다. 






내게는 고질적인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고군분투하는 학생이 있었다. 윈터스쿨 때 나에게 상담을 많이 해온 아이들 중 기억에 남는 학생이며, 원장님 특명으로 진행한 심야 과외에도 종종 참여하기도 했다. 그 아이의 속사정은 이러했다. 본인의 성적에 맞지 않게 우연히 높은 반에 왔고, 그로 인해 지속적으로 다른 학생들과 비교가 되어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문제는 그 인식 때문에 지속적으로 행해야 할 본인의 노력까지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5주 동안 그녀의 부정적 사고와 습관을 고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자신의 생각을 고치는 연습과, 작은 노력들을 부담 없이 꾸준히 행하는 것들을 실천했다.  그녀는 5주의 시행착오 끝에 나름 스스로에 대한 각오와 자세를 재정비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친구가 학원 퇴소 날 나에게 준 손편지에 적은 그 환희에 찬 자신감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아이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윈터스쿨 후 고3이 되면서 꿈을 갖게 되었고, 그 꿈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5주간의 윈터스쿨은 이 당찬 소녀에게 큰 터닝포인트임에 틀림없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연락을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잠깐씩 통화를 했기 때문에 항상 안부를 서로 묻고,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재미는 있는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특별히 그녀에게 큰 걱정을 느끼지는 않았고, 늘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격려의 한 마디를 해줄 뿐이었다. 


퇴소 후 4개월이 지나 2010년 6월이 되었다. 고3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6월 모의평가가 있는 날이었다. 덩달아 나도 괜히 긴장이 됐던 날이었다. 주말마다 학원에서 재수생들을 맡은 조교로 일을 했으므로, 분명 많은 상담과 질문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윈터스쿨 동생들의 생각도 떨쳐낼 수 없었다. 역시나 6월 평가원 전 후로 많은 전화가 왔다. 그중에 그녀도 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나에게 수화기 너머로 외쳤다. "쌤!! 저예요!!" 그리고는 나에게 자신의 성적 향상의 소식을 알렸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포자에 가까웠던 그녀가 수학에서만 무려 50점을 올렸고, 나머지 과목들에서도 40점을 올려 총점 90점을 올렸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약 4개월 만에 이룩해낸 일이다. 그녀가 바닥을 치던 자존감을 끌어올린 뒤 열심히 하고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단기간에 많은 점수가 오를 줄은 몰랐다. 정말 대단한 향상폭이다. 소녀는 내게 자신이 그간 어떤 공부의 과정을 겪었는지 길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학원에서 배운 습관대로 철저히 실천을 해왔다고 했다. 밥 먹는 시간에 단어장을 읽었고,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접촉도 최소화했다. 때문에,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에 공부를 하려고 하는 본인은, 학원만큼 따라와 주지 못하는 시끌벅쩍한 학교 때문에 속상해하기도 했다. 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혔던 아이가 이렇게 강단 있고 소신껏 공부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니, 나는 속으로 괜히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많은 점수를 올린 것도 대단하지만, 자신의 심리상태를 극복해가면서 우직하게 노력하는 모습은 나조차도 놀랍고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슬슬 많은 수험생들이 체력적인 한계를 부딪혀가면서 지치는 시즌이 되었다. 학원에서 늘 코피가 나서 막고 다녔던 그 소녀. 과연 잘 지내고 있을까? 


여름방학이 한 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여름밤 집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며 쉬고 있던 날이었다. 그때 웬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oo 엄만데요, 자상남 선생님 맞으신가요?"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다. 여전히 어린 마음에 웬 학부모가 전화를 걸었나 싶어 순간 긴장했지만,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녀의 어머니였다.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사정은 이러했다. 소녀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분명 부모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녀를 보면 뿌듯하고 걱정이 없기 마련인데, 이 집은 특이하게도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너무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잠을 적게 자고 밥 먹는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를 하는 모습은 참 이상적일 법도 한데 말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 심각해 보이긴 했다. 잠을 적게 자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밥을 먹지 않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어서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법도 한데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생활리듬을 수개월 동안 지속해오다 보니 결국 몸이 버티질 못하고 자주 쓰러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굳세게 일어나 같은 패턴으로 공부를 지속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제발 밥이라도 잘 먹고 공부해달라고 간청해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과 의사들이 나서서 몸 관리를 당장 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도 듣지 않았다. 공부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것이다. 무서운 집중력과 의지다. 사람이 바뀌어도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윈터스쿨 전과 후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참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밥도 안 먹고 몸이 버티질 못해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면서까지, 그 생활을 유지하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어리석은 것이다. 공부라는 것도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결국 체력관리, 집중력 유지 등 부수적으로 필요한 것들도 '실력'에 포함이 되는 것을 수험생들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머님께는 자신의 딸이 쓰러져 가며 공부를 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근데 왜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하신 것일까? 어머님께서 마지막에 나에게 울먹거리시며 부탁을 하셨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이럴 거면 공부를 안 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부모 말도 안 듣고, 학교 선생님이나 의사 선생님 말도 안 듣는 아인데 이상하게 선생님 말씀은 항상 잘 듣습니다. 제발 밥이라도 좀 먹어라고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나도 간헐적으로 연락을 취하면서 어떻게 공부를 해오는지를 본인에게서만 들어온 터라 '아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만 했지, 사태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수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은 있어도 자기 확신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어머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간곡히 하시니, 내가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소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나 그렇듯, 안부를 묻고, 공부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물었다. 학생들은 항상 내게 자신들의 관심사를 이야기해주거나 공부에 대한 궁금한 것들을 묻거나, 속 마음 한편에 고이 접어두었던 이야기보따리들을 마구 풀어낸다. 


당시 나는 꽤 심각한 이 상황을 조심스럽게 풀어보고자 했다. 단순히 전화로 이야기를 듣고 말을 전하는 것보다는 직접 만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방해가 되지 않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멘토링 생활 처음으로 '가정방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과 후 서비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