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에피소드

흘러가는 의식대로

by 자상남

1.

학기의 절반이 지났다. 세상에 시간이 이렇게 빠르다니. 지난 학기에 비하면 3배? 아니 5배는 빨리 시간이 흐른다. 분명 지난 학기에는 아직도 두 달 남았냐며 어처구니없어했는데, 이번 학기는 이대로라면 정말 방학이 금방 올 것 같다. 나름대로 공부의 끈을 놓지는 않고 있는데 역시 중반쯤 되니 이래저래 무언가 나사가 빠지는 느낌이다. 봄이 와서 그런가. 그렇지만 채찍질은 안 하기로 했다. 해봐야 소용없다. 스트레스만 더 받을 뿐. 그저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면 언젠가 속도가 또 붙기 마련이다. 꼭 해야 할 것들을 기한 내로 해낸다면 나는 만족한다.


2.

만우절이 됐다. 한국 SNS에서는 만우절이라고 난리인데 가상공간을 벗어난 내 현실에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저, 오늘 하루는 맑구나.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아란 하늘이구나. 그런 생각에 젖어 학교 본관 광장에서 경치를 즐기며 점심을 먹을 뿐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노륀과 모데스타스가 대뜸 'fool day'를 아느냐고 물었다. 아하! 만우절 이야기로 구만? 우리는 자기네 나라에서 어떤 거짓말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우절이 외국에도 있는 줄 처음 알았다.


3.

살이 안 빠진다. 정확히 말하면 열심히 빼다가 최저치에서 1kg이 다시 쪘다. 내가 생각해도 초기처럼 절제하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최소한의 건강을 위한 식단을 선택하지만, 점점 나태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음식을 하고, 운동을 나가는 것은 부지런해야 한다. 지난달 10번밖에 가지 못해 이번에는 '적은 시간이라도 출퇴근하듯이 가자'를 모토로 다시 삼았다. 확실히 헬스장으로 가기 전 무거웠던 몸이 조금이라도 땀을 흘리면 가벼워진다.


4.

2주일만 버티면 2주일의 방학이 주어진다. 부활절은 이곳 최대의 명절이다. 부활절 계획은 따로 없다. 이번 학기 제출해야 할 3개의 페이퍼와 2번의 시험 중 1개의 페이퍼를 완성하는 것이 내 목표다. 계획과 자료를 수집하는 도중 멈췄다. 학기 초에 방학을 즐기겠다고 발표를 부활절 직전에 몰아둔 탓이다. 왜에에에에에에에에!


5.

요 근래 많은 행정처리가 이루어졌다. 거주 허가증 연장, 장학재단 연보고서, 교환학생 등. 내가 이걸 홀로 문제없이 해내고 있구나를 생각하면 스스로가 대견하다. 언제 이렇게 적응을 한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라디오 수신료 안내문이 아닌, 계좌 해지 메일이 와 수소문하다 결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직도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 안 되지만 새롭게 주소를 등록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어 신경을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전화 독일어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된다. 막상 전화 걸면 어떻게든 알아낼 정보는 다 알아내는데 말이다. 궁금한 것은 몇 번을 되물어 확실한 답을 얻는다. 첫 상담원은 매우 친절했는데, 두 번째 상담원은 성격이 급한지 짜증을 대놓고 냈다. "그래서 질문이 뭐란 말입니까!" 질문을 하기 전에 설명할게 많았을 뿐인데. 이런 일에 하나하나 의미를 두고 신경 쓰면 나만 복창 터진다. 마음 수련은 잊을만할 때 즈음 지속된다. 하하.


6.

드디어어어어어 브런치가 빛을 발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흥미로웠던 것은 브런치가 출판할 수 있도록 여러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한 기업에서 내게 글을 의뢰했다. 두 개의 원고를 보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필요로 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나도 내 이름으로 된 근사한 책을 내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이 시작은 매우 중요하다. 늘 시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씩 진보하면 된다. 독일어 동화책을 비공식적으로 번역해 한 극단에 연출용으로 보낸 것이 첫 번째였고 이번이 두 번째 작업인 셈이다. 즐거웠다.


7.

사람은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해야 언젠가 잘하게 된다. 두 가지를 모두 가지면 가장 행복하다. 내게 글을 의뢰한 기업을 보면서 생각했다. 대단하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가능성이 많은 행복한 나라다. 틀에 박힌 아이디어로 자웅을 겨루는 경쟁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 창의성이 극대화되고, 그 창의성이 곧 기회를 만든다. 알면서도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극복이 되는 게 아닐까? 미친 듯이 하고 싶고 좋아하면 어찌 되었든 그 두려움은 가려지기 마련이니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8. 11시가 되었으니 자야겠다. 오늘 안 한 공부는 우짜노. 내일 열심히 해야지.